▲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

종이신문도 인터넷도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 소식들로 분주하다. 선거라는 이벤트는 본게임도 재미있지만 본게임에 올라갈 선수 선발을 둘러싼 쟁투가 더 흥미진진해서일까. 보수정당들의 후보 공천 쟁투가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올라오니, 욕하면서도 보게 된다는 막장드라마를 기다리는 심정을 알겠다. 생과 사를 가르는 잣대부터가 시빗거리가 되니 칼을 휘두르는, 이른바 ‘공천심사위원’들의 꿈자리도 편치만은 않을 것 같다. 공천 탈락자들이 뿜어내는 독기와 저주의 어휘도 야릇한 중독성이 있다. 오늘 저주를 퍼붓는 대상이 어제 그토록 갈망하던 그곳이었다는 기억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보내 버렸다. 신속함과 용감성에 무릎을 친다. 역시 범인(凡人)은 정치한다고 나설 일이 아니런가.

웃자고 한 소리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생각 있는 일부 언론들이 선거의 내용을 채워 보고자 토론회다, 전문가 좌담이다 자리를 만들고 애를 쓰지만 밥벌이에 바쁜 국민들이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뉴스라도 챙겨 보려고 겨우 TV 앞에 앉으면 날이면 날마다 같은 선수들이 나와 입으로 치고받는 그림만 나오는 게 선거철 뉴스니 말이다.

내가 일하는 단체도 일찍부터 올해 예정된 거대한 정치일정 속에서 한 점 존재감을 획득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 토론과 회의를 이어오던 차다. 문건이 수차례 나오고 간담회·토론회·설명회가 열린다. 자리는 달라도 공통점은 마무리하는 시점에서의 한숨이다. 방대한 노동의제 안에서 건강권이니 산재니 하는 의제가 어디 옆구리에라도 걸칠 수 있겠는가 하는 무력감이다.

산재니 건강권이니 하는 의제가 전문가들의 전문용어로만 서술되고 노조 안에서도 소수 활동가들의 영역으로 굳어진 데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제도는 공급자 마음대로 설계돼 있고, 노동자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장애물과 지뢰밭이 곳곳에 있다. 장애물을 걷어내고 지뢰를 제거해야 노동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데, 장애물과 지뢰밭을 그대로 두고 요리조리 피해 가는 활동만 궁리하니 말만 어려워진다. 기자들 만나면 ‘너무 어려운 분야’ 라면서 취재를 회피하거나 아예 통으로 ‘기획도 해 주시고 기사도 써주세요’ 한다. 전문가도 아니요, 그저 노동문제의 일부이기에 일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상황에 화가 난다.

사정이 이러하니 노동자 건강문제나 산재 문제가 어느 세월에 햇빛을 볼까 시름하던 차에 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고, 연대기구인 이름으로 문을 두드렸다.

“기억! 약속! 심판!” 슬로건 아래 총선에서 꼭 다뤄져야 할 이슈를 망라하는 자리다. 한미FTA 폐기·언론악법 폐지·4대강 재자연화·검찰개혁·남북관계까지 한국사회 쟁점이 다 들어와 있고, 활동 많이 하고 언론 많이 타는 덩치 큰 단체들, 연대기구들이 대부분 참여하고 있다. 섬마을 살다 서울로 이사 온 전학생 모양으로 잔뜩 기가 죽었다.

내가 들고 간 의제는 두 개였다. 하나는 산재보험 개혁이고, 또 하나는 일명 기업살인처벌법(산재사망에 대한 기업처벌) 제정이다. 단체별로 조직별로 두세 개만 들고와도 수십 개가 되니 이를 압축하고 정리하는 회의가 계속됐다. 의제가 너무 많으면 집중점이 없어 총선 출마자와 유권자들에게 관심을 받기 어렵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내 의제를 먼저 포기하겠다 할 수도 없다. 산재 문제는 노동카테고리 안에서도 위태로운 의제다. 비정규직·정리해고·노조법·최저임금에 이르기까지 어느 의제가 산재보다 우선하지 않겠는가. 결국 산재문제는 거의 막바지에 손도 써 보지 못하고 운명했다. 며칠 후 다시 열린 최종 회의에서 겨우 부활하긴 했지만 비장하고도 비굴한 심정으로 앉아 있던 그 자리를 생각하면 두 번은 사양하고 싶다.

왜 산재보험 개혁과 기업살인처벌법 제정이 총선의제가 돼야 하는가. 산재보험은 말이 사회보험이지 대다수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자를 배제하고 있다. 산재보험 혜택이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자에게 돌아가면 기업이 비정규직 써야 할 이유가 하나 줄어든다. 노동자가 조금이라도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기업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굴욕이다. 산재사망에 대한 기업처벌을 획기적으로 강화하자는 기업살인처벌법은 기업들이 노동자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극적으로 보여 준다. 특히 많이 죽고 같은 원인으로 자주 죽는데도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것은 기업운영에 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일하다 죽는 노동자가 많다는 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사회 전체가 무감각해지고 있다. 13일부터 총선의제 30개에 대한 정책 콘테스트와 유권자 투표가 진행된다. 해당 사이트(RememberThem.kr)에 접속한 뒤 유권자위원회 등록하시기 바란다. 소중한 한 표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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