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2012년을 열었습니다. 마야문명에서는 2012년 12월 동짓날 세상이 끝나는 달력을 남겼다고 하는데, 그 달력의 연유야 알 수 없어도 한반도와 지구사회 운명이 2012년에 거대한 변화의 기로에 선다는 것만은 분명해보입니다. 개인이나 공동체나 올해는 변화의 큰 물결에 함께 노 저어 가며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봐야 하겠습니다.
새해가 시작되니 TV나 라디오에서 올해는 밝은 소식, 행복한 소식만 전하고 싶다, 착한 뉴스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들 하는군요. 그러나 생각해 봅니다. 지난 연말에만 해도 철도선로를 고치던 하청노동자들이 죽었고, 조선소에서 배 만들던 하청노동자들이 죽었고, 자동차공장에서 밤샘노동을 하던 청소년이 쓰러져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망 또는 의식불명으로 사회면 뉴스를 채웠지만 행복하고 싶었던 보통사람들이었습니다. 착한 뉴스만 찾아보고 싶다는 소망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고투하는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어찌 할 수 없는 어둠의 세계에서 삶을 지켜내야만 하는 이웃들을 모독하는 어리석은 생각임을 모르는 것일까요.
겨울호, 인터뷰기사가 많습니다. 사람이 가장 관심을 갖는 대상은 ‘사람’ 이라고 합니다. 다달이 큰 차이도 없어 보이는 각종 여성월간지의 표지들,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TV 프로그램들이 얼굴표정을 클로즈업 하면서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이유, 다 사람으로 사람이야기로 장사하는 문화상품들이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이번 에는 팔릴 만한 상품들이 즐비합니다.
1895일이라는 경이적인 나날을 자본과 정권, 사회적 시선에 맞서 싸워온 기륭 여성노동자의 이야기 속에서 1970년대부터 노동운동의 주체였지만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적 약자’ ‘주변부 노동자’로 호명되어 오는 여성노동운동의 맥박과 기운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다국적 자본에 맞서 전자산업 노동자의 건강권을 매개로 전투를 벌여온 미국과 대만 두 나라 활동가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분절되어 있던 관점이 통합되고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농민과 노동자 진료운동의 경험을 한국의 후배들에게 나누어준 텐묘 선생의 이야기에는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애정이 묻어납니다.
회원들이 쓴 생활 글들도 사랑스러운 소품들입니다.
의 버팀목인 연중기획과 특집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사회안전망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고민과 지난 해 우리에게 벌어진 문제 중에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건들을 담았습니다. 특히 일본 후쿠시마의 재앙이 노동의 영역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 읽다 보면 ‘반핵’ ‘탈핵’ 은 말 그대로 생존의 영역이라는 깨달음이 옵니다.
지난 한 해 원고료도 감사인사도 없는 에 필자로 일러스트레이터로 디자이너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 2012년에는 염치를 차려 감사인사만은 확실히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새 단장한 노동건강연대 홈페이지를 통해 종이책으로 묻히기에는 아까운 필자님들의 옥고가 널리 퍼지도록 애쓰겠습니다.
2012년, 노동자의 정치가 살아나길 바라는 임준 집행위원장의 절절한 바람을 함께 읽어주시기를 권하면서 토론과 투쟁의 현장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