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간절히 간절히


어김없이 또 한 해가 지나갔다. 그리고 새로운 한 해가 부끄러운 내 얼굴에 인사를 한다. 열광했던 그래서 그만큼 미움이 많았던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다. 김근태 선생님, 그 분도 또 그렇게 떠나갔다. 인간임을 포기한 자들은 호위호식하면서 살고 있는데, 인간의 권리를 온몸을 던져 구현하고자 했던 분들은 그 토록 아프고 서럽게 염원했던 그 세상을 보지 못한 채 속절없는 죽음에 입맞춤을 한다.


그리고 노동자.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불러보아도 가슴 한 복판에 뜨거움을 불러일으키는 노동자, 평등한 인간이기를 간절하게 염원한 그 노동자도 오늘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잔인하고 탐욕으로 눈이 먼 이마트의 지하실에서 숨조차 쉴 수 없어 죽어간다. 자본을 위한 자본의 속도전에서 한 많은 육신이 땅에 떨어져 흩어진다. 육신의 한자락 조차 기억할 수 없는 그 뜨거운 용광로에서 한 노동자가 사라진다. 철로에서 병실에서 그렇게 노동자들이 죽어간다. 그리고 삼성. 어제도 오늘도 그 탐욕의 공간에서 노동자가 죽어간다. 이유도 모른 채.


언제까지 우리는 이러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해야 하나. 역사가 반동으로 점철되고 노동의 권리, 인간의 권리가 짓밟히는 속절없는 세상을 한탄만 하고 있어야 하나. 사람이 죽어가고 민주주의가 죽어가는 이 세상을 왜 우리는 참고만 있어야 하나.


분노하자. 손을 잡고 길을 나서자. 함께 가자. 냉소와 무관심, 의심과 불안감을 뚫고 전진하자.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길, 노동자의 인권이 보장되는 길, 노동자가 정치의 중심에 서는 길, 민주주의와 노동해방을 실현하는 길에 함께 가자.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냉정하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보수와 자유주의 정치인들이 불평등한 사회를 비판한다. 혁신을 이야기한다. 또 다시 거짓 사탕발림으로 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 비정규 노동자의 아픔을 아는 듯이 복지와 인권을 입에 올린다. 모두들 과거를 반성하고 마치 모든 잘못이 몇 몇 탐욕스러운 국제금융자본과 몇 몇 정치인에게만 있는 듯 비판한다. 하물며 그 공격에 신자유주의의 돌격대를 자임했던 여당조차 비판 대열에 합류한다. 또 다시 정치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정치도 비껴가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지금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노회한 술수인 것일까? 신자유주의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민주당의 변신은 더욱 놀랍다. 거침이 없다. 특정 세력은 진보정당에 합류하기조차 한다. 또 다시 진보세력이 흔들린다. 신자유주의 종언의 시대, 거대 자본에 맞선 전 세계 민중이 스스로 절대 다수임을 자각하고 연대를 선언한 시대, 그 시대를 위해 노동자의 죽음 앞에 절망 대신 희망을 품에 안고 목숨을 걸었던 진보세력은 보수와 자유주의 세력의 역동적인 정치 공세에 또 다시 흔들린다.


오늘도 죽어가는 노동자, 그 곁에서 눈물을 머금고 절망을 딛고 희망을 내딛는 수많은 노동자에게 정치가 얼마나 큰 고통인지,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 정치가 희망을 향한 절체절명의 큰 도전이 될 수 있는지를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신자유주의 종언의 시대,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고통스럽게 다가오는 시대, 민주주의를 훼손해도 결코 알갱이를 없앨 수 없다는 사실과 그 알갱이는 정치를 넘어 경제민주화와 삶의 민주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촛불로 희망버스로 확인한 시대, 우리는 그 시대가 노동자에게 절호의 기회이자 도전임을 자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이 어떻게 가능할까? 한 번도 정의가 정의의 순수한 모습으로 드러내본 적이 없었던 상황에서 한 번도 진리가 진리의 결정체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던 상황에서 이를 분간하고 정의와 진리를 향해 연대운동을 진보정치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또 다시 정치가 보수와 자유주의세력의 전유물이 되어 버리고 진보세력은 그 길을 찾지 못한 채 타협과 비타협, 자유주의와 혁명주의의 갈등구조에서 머뭇거리고 스스로를 닫힌 존재로 역사에 기억되는 것은 아닐까?


2012년 새해 벽두에 난 간절히 희망한다. 노동자의 죽음을 방조, 조장하는 탐욕의 생산 장치와 구조가 멈추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노동자의 건강권, 노동권이 보장되는 사회, 더 나아가 생산과정의 진정한 주인으로 나아가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의 정치, 진보정당의 정치가 구현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그리고 그 희망을 위해 두 눈 똑바로 뜨고 힘찬 한걸음을 내딛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