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이면

한미 FTA는 노동자 권리를 침해한다

박노준 / 공인노무사

2011년 10월 12일 미국 상·하원 본회의 한미 FTA 이행법안 통과 → 10월 21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 한미 FTA 이행법안 서명 → 11월 22일 한미 FTA 비준안 국회 통과 → 11월 29일 이명박 대통령이 한미 FTA 14개 이행법안 서명. 이로써 한미 양국에서 한미 FTA 발효를 위한 형식적인 절차가 모두 완료되었다.

§ 한미 FTA의 ‘지위’

한미 FTA가 발효되면 한국에서는 한미 FTA 그 자체가 ‘법률’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대한민국 헌법 제6조 제1항이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원의 적용순서를 정하는 일반원칙인 ‘상위법 우선의 원칙’과 ‘신법 우선의 원칙’ 및 ‘특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한미 FTA와 저촉되는 한국의 기존 법률, 명령, 규칙,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는 사실상 효력을 잃게 된다.


반면에 미국에서 법의 지위를 갖는 것은 한미 FTA가 아니라 미국 의회가 제정한 한미 FTA 이행법이다. 그런데 미국의 한미 FTA 이행법에는 ‘이행법에서 특별히 규정된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미국 연방법도 개정되지 않으며, 한미 FTA가 미국 연방법과 충돌하는 경우에는 효력이 없고, 각 주의 법률이나 규정이 한미 FTA에 위반되더라도 그 적용을 무효로 할 수 없다’는 내용이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미국 연방법 > 주법 ? 한미 FTA 이행법 (≒ 한미 FTA) > 국내법’이라는 부등식이 성립한다. 따라서 미국기업은 한미 FTA에 기초하여 한국에서 소송을 통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한국 기업으로서는 미국에서 소송을 통한 법률적 문제 해결의 여지가 별로 없다. 한미 FTA는 내용 상의 불평등과 더불어 한미 양국에서 가지는 법적 효력 측면에서도 심히 불평등하여 주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 투자자-국가 간 소송제도와 노동권

원래 FTA (free trade agreement)란 국가 간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무역장벽(관세)을 제거하는 협정이다. 그러나 한미 FTA는 단순히 무역조건만이 아니라 법과 제도의 직접적인 변경을 요구하는 포괄적인 협정으로서 일반적인 통상협정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아가 협정문에 규정된 투자자-국가 간 소송제도 (Investor-State Disputes, ISD)에 의해 한국 정부의 정당한 노동정책 자율권이 침해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ISD는 외국에 투자한 기업이 상대방 국가의 정책으로 이익을 침해당했을 때 해당 국가를 국제중재기관에 제소하여 손해배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제소국은 패소한 상대국의 불이행에 대해 관세보복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한국 정부가 노동계의 의견을 수용하여 현재 OECD 최저수준인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한다든지, 선진국 수준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휴일과 휴가를 늘린다든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정규직화 한다든지, 사용자가 노조전임자에게 급여 지급을 허용하는 등의 정책을 입안하려 하더라도 미국으로 대표되는 외국인 투자자나 합작 투자로 들어온 국내 대기업 자본들이 자신의 이익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ISD를 활용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그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스스로 포기하거나 국제중재기관의 결정에 따라 적법한 정책의 실행이 좌절될 수도 있다.


이러한 부담은 한국의 노동계, 특히 노동정책의 형성, 변경과 관련하여 경영계 및 정부와 힘겨루기를 해야 하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조합 총연합단체에 고스란히 전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노동조합은 정부의 친기업적 관행과 노동관련 대법원 판례의 보수적인 시각 및 조직의 압력에 억눌린 낮은 노동권리 의식 등 비우호적 환경에 직면해 있다. 이를 극복하고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과 사회적·경제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미 FTA라는 든든한 지원군으로 보강한 기업 자본을 상대로 13대 330의 명량해전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 노동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처럼 한미 FTA는 한국 노동계에 득보다는 훨씬 큰 손실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한미 FTA에는 노동의 장을 따로 두어 국제노동기준의 준수노력, 공중의견제출제도의 도입·운영, 분쟁해결절차의 도입·운영, 노동분야의 협력사업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의 보호를 위한 현행 노동법의 효과적 집행에 일부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노동환경을 가진 한국의 생산비용을 증가시켜 보다 나은 조건에서 경쟁하자는 미국의 의도가 숨어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노동권의 확대와 개선이라는 측면에서는 별로 의미가 없다고 하겠다.


한미 FTA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가 체결된 이후 멕시코에서는 공공부문 민영화로 인한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가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약 1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등 FTA가 수출증가로 인한 고용증대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고용불안을 가속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결과이다. 이를 한국 상황에 비추어보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동시장의 불안정화 및 노동권의 축소를 떠올릴 수 있다. 수출이 증가하는 데도 고용이 늘어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 갈수록 심해지는 사회적·경제적 양극화는 한미 FTA 발효 이후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따라서 한국 노동계로서는 재협상으로 한미 FTA를 폐기하는 것이 최상책이고, ISD 조항의 폐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상책이며, 여의치 않으면 초국적기업의 자본이 노동정책에 관여할 수 없도록 ISD 제소범위를 최소화하는 것을 양보할 수 없는 방책으로 삼아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