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고에서 질식사한 노동자, 그러나 회사는 무죄”

[위험 양극화, 대책은?·②] 임준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 인터뷰

기사입력 2012-04-11 오전 8:29:57

 

 

한국은 비겁한 사회다. 위험한 일은 온통 만만한 약자에게 떠넘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다 마찬가지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19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의 결과, 노동자도 ‘사람’이 됐다. “내 품 속의 정형 손은 / 싸늘히 식어 푸르뎅뎅하고 / 우리는 손을 소주에 씻어 들고 / 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라던 박노해 시인의 절규(‘손무덤’)는 조금씩 옛말이 되는 듯 했다. 민주적인 노동조합이 있는 일부 대기업의 정규직만 놓고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정규직은 점점 줄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늘어난 비정규직은 여전히 ‘손무덤’의 시대를 산다.

사 람이 죽거나 다치게끔 하는 위험한 일은, 아예 사라지게 하는 게 옳다. 그래도 누군가가 위험한 일을 굳이 해야 한다면, 그 자리에 ‘정의(正義)’가 서야 한다. 억울하게 다쳐도 항변할 수 없는 이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현실은 옳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일터에선 끊임없이 산업재해가 터진다. 희생되는 건 늘 약자다.

우선 급한 것은 이들을 위한 안전망이다. 대표적으로 산재보험이 있다. 그러나 일터에서 사장 눈치를 특히 심하게 봐야 하는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등에게는 산재보험의 문턱이 너무 높다. 은 조선소 체험 르포를 통해 비정규직 등 약자에게 산재가 몰리는 ‘위험 양극화’ 현상을 고발한 데 이어 현행 산재보험의 문제점을 짚고 개선책을 찾아봤다.

○ 위험의 양극화, 산재는 왜 비정규직에 몰리나
연재를 시작하며: 기자는 왜 조선소 하청으로 취업했나

– 기자가 체험한 조선소 하청 노동
취업 면접 때 묻는 건 딱 하나, “버틸 수 있겠나?”
“목숨 갉아먹는 유리 먼지, 여기가 지옥이다”
점심시간 1분만 어겨도 욕설에 삿대질, 경고까지
“6미터 추락 반신불수, 책임자는 알 수 없어”

– 조선소, 한국사회의 축소판
발 헛디뎌 죽은 다음날, 회사가 한 말은?
노동자도 아닌, 사장도 아닌, 넌 누구냐?
저녁 먹자던 아버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더니…
“5년동안 몰랐는데 내가 바로 불법파견이더라”

– 위험의 양극화, 대책은?
폐암 진단, 길고 긴 소송, 얻어낸 건 장례비

한국에서 일하다 죽는 노동자는 얼마나 될까. 최근 들어 사망률은 조금 떨어졌으나 여전히 세계 1위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10년 발간한 OECD국가의 산업재해 비교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도 한국의 산업재해 사고사망 10만인율(10만 명 당 사망률)은 20.99명으로 21개 OECD 회원 국가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 는 OECD 평균에 비해 3배나 높은 비율이다. 주목할 부분은 업무상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산업재해율은 선진국보다 한참 낮다는 점이다. 2008년 기준으로 한국의 산업재해율은 0.69%에 불과하다. 독일(2.87%), 미국(3.46%)보다 낮은 수치다. OECD 평균의 5분의 1수준이다.

사망률이 높다는 건 그만큼 작업현장이 위험하다는 걸 방증한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사망률에 비례해 업무상 사고나 질병 발병률이 증가한다. 재해율이 낮은데 사망률만 높다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런 상식이 안 통한다. 왜 그럴까. 임준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가천의대 예방의학과 교수)은 “산재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통계에 잡히는 사망, 사고는 산재보험 적용을 받는 경우에만 수치로 잡힌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면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 망이나 중대재해 등 업무상 사고는 인과관계가 선명하기에 산재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지만 업무상 질병의 경우, 산재보험 적용을 받기 어렵다. 인과관계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산재보험 적용을 받으려면 재해를 당한 노동자가 직접 업무 때문에 병을 얻었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이 때문에 직업성 질병으로 산재 요양을 신청한 노동자 중 50% 이상이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업무상 사고가 발생해 비교적 가벼운 부상을 당했을 경우, 대부분 노동자는 산재보험 적용을 위한 산재 신청을 하지 않는다. 사업주가 싫어하기 때문이다. 산재 신청을 하려면 회사를 잘릴 각오까지 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한국은 OECD국가 중 사망률이 높은 반면, 재해율이 낮다.

지난 5일, 가천의대 연구실에서 만난 임준 위원장은 “지금이라도 산업재해를 인정받는 조건을 완화하고 산업재해가 재발되지 않게끔 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래는 그와의 인터뷰 전문.

▲ 임준 집행위원장. ⓒ프레시안(허환주)

“위험이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전달됐다”

프레시안 : 조선소에서, 특히 하청 노동자들에게 사망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임준 : 조선업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사망 사고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산재 문제는 이것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아니라 위험이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전달되는 방식으로 가고 있다. 사업장 내 위험 요소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다. 물론 이전에 비해 줄어들기는 했다. 위험요소는 중국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사양 산업으로 없어지기 했다.

위험물질이 있으면 이를 사용하지 말고 안전한 물질을 사용해야 한다. 공정에 문제가 있다면 새로운 공정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업무자체 특성으로 근력을 과도하게 사용하거나 과중한 노동 시간으로 문제가 생기면 인력을 보강하거나 업무 시간을 재배치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돈 때문이다. 이런 구조를 바꾸는 건 당연히 자본이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자본가는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그들은 위험요소가 발생해 노동자가 항의하거나 진정을 넣으면 ‘그럼 너희가 일하지마’ 이러면서 노동자를 해고한다.

노조가 있는 정규직이 이런 문제를 제기하면 그들에게 이런 일을 맡기지 않고 아무 항의도 하지 못하는 하청, 파견 노동자에게 일을 맡긴다. 그렇게 위험은 사업장에서 사라지지 않고 전달된 채로 이어왔다.

프레시안 : 한 마디로 정규직이 작업장의 위험을 문제 삼으면 이를 개선하는 게 아니라 그 밑에 있는 하청 노동자에게 위험 작업을 맡기는 식인 듯하다. 그렇다보니 시간이 흘러도 위험 요소는 작업현장에 늘 존재한다. 하지만 유독 조선소에서 사망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업종의 경우는 다른가.

임준 : 조선업 하청 노동자는 어떻게 보면 파견 노동자와 똑같다. 하청업체가 전문업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인력만 가지고 조선소에 들어와 일하는, 일종의 파견업체와 비슷하다. 기자재나 도구 등은 모두 원청 조선소에서 받아쓴다. 그런 업체에게 노동자의 안전관리를 맡기니 어떻게 되겠나. 문제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 리고 안전보건관리라는 게 사실 공정별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체 공정을 전반적으로 감독해야 해결된다. 조선소에서는 밀실에서 작업을 하다 죽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질식사다. 하지만 정작 밖에서는 그들이 죽었는지도 모른다. 작업시간이 끝났는데 돌아오지 않으면 그때야 알게 된다.

밖에는 밀실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지원하거나 감독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 자본 입장에서는 사람 한 명 더 쓰는 게 아까운 거다. 안전감시 시스템을 만들려면 사람이 필요한데 돈 들어가는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결국 사람이 죽는 문제가 계속 반복되는 셈이다.

“사람이 죽는 구조, 정부가 방조하고 유도했다”

ⓒ프레시안(허환주)

프레시안 : 말 그대로 원청이 안전관리 부분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 게 문제다. 하청에서는 노동자를 관리하고 감독할 수 있는 능력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행법상으론 하청 노동자가 죽는다 하더라도 원청에겐 아무런 책임도 물수 없다.

임준 : 조선업이든 자동차업이든 다 똑같다. 전체적인 관리 책임이 발주처에게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건 정부가 방조하고 유도한 거다.

IMF 이후 정부는 자본에게 인력 이용에 관해 규제를 완화했다. 그 결과 비정규직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하청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80~90%가 정규직이었지만 지금은 30~40%에 불과한 것도 그 이유다. 자동차업계도 마찬가지다. 이는 정부가 유도한 거다.

정 부는 이런 상황을 유도한 뒤, 이에 대한 문제 보완을 위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안전보건에 위험한 일을 하청 업체에 넘겨도 이에 대한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전체 공정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물건을 만드는 게 발주처, 원청이다. 이들이 물건을 만드는데 있어 하청을 데리고 오고 파견을 부르는 건데, 여기서 안전문제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 당연히 원청이 져야 한다. 하지만 원청은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다. 정부는 이런 구조가 고착되는 걸 방조했다.

프레시안 : 일부에서는 산업재해를 두고 노동자가 실수를 했거나, 경험이 부족해서 사고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사고를 개인의 과실로 전가하는 식이다.

임준 : 맞다. 사고가 발생하면 숙련공이 아니라, 경험이 부족한 자가 자기 잘못에 의해, 주의태만에 의해 발생한 거라 말한다. 원청 책임을 노동자 책임으로 전가하는 식이다. 산업안전공단의 공익 광고를 보면 ‘일하다 여자친구 생각하지 마라, 너 다친다’, 이런 주제로 광고를 한다. ‘즐거운 사회, 명랑한 사회. 노동자가 일하다 다른 생각, 그러다 다친다’ 이런 식이다. 이 광고는 노동자가 작업 중 딴 생각 때문에 다친다는 사회적 문화적 인식을 심어준다. 진짜 나쁜 반 공익 광고다.

산재사고를 노동자 개인 실수로 넘기지 않으면, 일차적으로 관리 감독해야 할 사내하청 업체가 제대로 관리를 안 해서 발생한 문제라며 하청에 떠넘긴다. 그러면서 원청 책임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건 기본적으로 발상의 문제다. 이 발상을 전환하는 게 필요하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일 시키는 게 정당한가”

프레시안 :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의식이 있는 듯하다.

임준 : 이렇게 묻고 싶다. 일하러 가는 행위에 목숨을 걸어도 되는 건가.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곳, 거기에서 일을 시켜도 되는 건가. 어떻게 생각하나. 돈을 많이 주니 문제없다고 하면 되는 건가. 오늘 시점에서 그런 노동을 한다는 게 정당한 건지 묻고 싶다. 1700~1800년대가 아니라 지금의 시점에서, 노동계약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근대적 의미에서 말하는 거다. 사회주의나, 진보적 관점에서 말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 관점에서 그런 노동계약은 정당한가를 묻는 거다.

노동자가 노동력을 판매했고 자본가가 그 노동을 샀다. 그렇다고 산 사람이 노동력을 근본적으로 상실시킬 수 있는, 사망이 일어날 수 있는 곳에 사람을 집어넣는 게 맞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그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위험이 있다는 걸 알고도, 위험물 존재 유무도 말하지 않고 일을 시킨다면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사기죄와 반 인륜죄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일 시킨 거랑 같다.

프레시안 : 근대적 노동계약에 대해 설명을 조금 더 해 달라. 요는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했을 때, 그 노동력을 산 사용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건가.

임준 : 근대적 노동계약은 자기 노동력을 판매하는 거다. 자기 노동력을 상실시킬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계약을 맺는 게 아니다. 사용자는 만약 그런 위험이 약간이라도 있다면, 충분히 설명하고, 완전히 제거하거나, 제거하지 못하면 개인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즉 노동자가 실수해도 방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놓고 일을 시켜야 한다. 그래야 근대적 노동계약이 성립된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노동자가 일하다 다칠 경우, 100% 사용자 책임으로 돼 있는 것도 이런 의미다.

ⓒ매일노동뉴스(정기훈)

프레시안 : 하지만 하청 노동자의 경우, 원청과 노동 계약을 맺는 게 아니라 하청 업체와 맺는다. 이는 사고가 발생하면 원청은 자신들의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는 근거가 된다.

임준 : 일을 안전하게 시켜야 하는 게 사업주 의무다. 이를 위반했을 때 사업주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게 안전보건법의 기본정신이다. 하지만 원청은 자신이 사업주이면서 책임을 안 진다. 이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사업장에서 위험을 생산한 자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게 원칙이다. 이게 기본정신이다. 이를 토대로 근대적 산업안전법이 존재한다. 그래야 산재예방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고는 예방이 안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상으론 원청을 처벌하는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계속 사고가 발생해도 개선이 안 되는 거다.

프레시안 : 사망사고는 제조업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발생한다. 문제는 그런 사고가 발생하는 대상자가 비정규직이라는 점이다.

임준 : 멀리 갈 필요 없다. 일례로 2011년 이마트에서는 4명이 질식사했다. 사망한 노동자를 보면 이마트 정직원은 안 죽었다. 모두 하청 노동자였다.

이마트는 냉동고 관리를 트레이닝 코리아라는 곳에 위탁했다. 아웃소싱한 거다. 하지만 이 트레이닝 코리아도 냉동고를 관리하지 않았다. 관리 작업을 또 다시 위탁한 거다. 그 하도급 사업주와 노동자 3명이 일하다 질식사 당했다. 그 중에는 등록금을 마련하려 일하던 대학생도 들어 있다.

이 마트 냉동고는 이마트의 필요성 때문에 설치된 거다. 그렇기에 위험을 생산한 자는 이마트인 셈이다. 목적이 이마트에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리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사망·사고와 관련해 자신들 책임은 없다고 이마트는 주장했다. 실제 이마트는 이 사건으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검찰과 법원, 언론이 사람 죽는 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프레시안 : 원청에게 책임을 부여하는 법적 제도가 없는 건 우리나라에게만 한정된 것인가. 외국의 경우는 어떤가.

임준 : 유럽연합(EU)의 경우, 포괄적으로 위험을 생산한 자에게 책임을 지운다. 제조품을 만드는 사람이 위험을 고려해 제조품을 만들어야 한다. 만약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책임져야 한다. 안전보건법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기본적으로 원청에 있는 사람이 관리 책임을 지게 하는 게 이 법안의 핵심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유럽에는 없다는 점이다.

유럽은 우리처럼 하도급이 없다. 원청이 다 하는 구조다. 건설의 경우, 한두 개의 전문업체가 참가할 순 있지만 대부분이 원청에서 공사를 한다. 우리는 현대 건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