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공 분야는 예전에는 산업의학이라고 불렀던 직업환경의학이다.

직업환경의학이란 직업병이나 환경성 질병을 연구하는 의학의 한 분야이다. 전공분야가 이런 쪽이다 보니 자연히 직업 때문에 자신의 질병이 생겼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일반적으로 한 노동자의 질병이 직업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인정되면 산재보험을 통하여 병원 치료비를 지급받을 수 있고 각종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보상을 위해서는 우선 해당 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상 신청을 하여야 한다. 신청이 접수되면 근로복지공단은 신청자의 질병이 직업으로 인하여 발생하였는지를 따져보고 직업성 질환으로의 조건 -업무관련성-을 갖추었다고 보면 보상을 해준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업무관련성’의 판단이라는 부분이다. 한 사람의 질병이 직업 때문에 생긴 것인지 자연적으로 생긴 것인지 판단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직업과 질병의 관련성이 명확하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 ‘6가 크롬’이라는 독성 물질을 사용하던 도금공장 노동자가 코피를 자주 흘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비중격이라고 하는 콧구멍 속 안에 있는 얇은 판이 뚫려버렸다. 이런 경우를 ‘비중격 천공’이 생겼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스테로이드 도포치료, 매독 등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일반인들에게 쉽게 생기지 않는다. 이처럼 일반인에게 흔히 생기지 않는 질병이 유해 물질 취급자에게 생긴 경우라면 업무관련성에 대한 판단이 쉬운 편이다. 그러나 업무관련성이 항상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애매모호한 업무관련성으로 인하여 항상 어려움과 갈등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주물공장이나 탄광처럼 분진, 가스, 흄, 증기와 같은 오염물질이 많은 곳에 근무하는 사람에게서 호흡기 질환이 생긴 경우이다. 평소에 흡연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흡연으로 인한 병인지 오염물질로 인한 병인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스티렌이라는 유기용제를 오랜 기간 동안 취급한 노동자에게 만성적인 신장질환이 발생하였다. 스티렌은 신장질환을 발생시킬 수도 있는 독성 물질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평소에 지병인 고혈압이 있었다. 고혈압도 역시 신장질환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산업의학과 의사로써 직업병을 의심하는 분들의 호소를 귀담아 듣고 업무관련성 평가서도 작성을 해주지만 어떤 경우에는 승인이 되고 어떤 경우에는 불승인이 된다. 어려운 문제이다 보니 승인이 되는 경우에도 몇 단계에 걸친 매우 어려운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근로복지공단이나 산업안전공단에서도 나름대로 마련한 승인과 불승인의 기준이 있겠지만 그 기준에 대한 논란은 생길 수밖에 없을까.


어쨌거나 오늘도 한 분의 불승인 통보를 전해 들었다. 보호자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그들과 긴 시간 동안 상담했던 일, 업무관련성에 대한 문헌적 근거를 찾기 위하여 노력을 했던 많은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불승인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미리 드렸지만 내 마음 한 구석이 미안하고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