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기업 8곳 ‘심리상담’…아직 걸음마

[한겨레 2006-11-06 12:03]

[한겨레] 우리나라 기업들의 직원 정신건강 챙기기는 이제 막 발걸음을 뗀 단계다.

2000년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자들이 근로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장애를 예방하도록 의무를 부여했지만, 구체적인 시행령과 규칙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여전히 선언적 규정을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그러다 보니 현재 도입된 상담 프로그램은 대기업 임원이나 정규직 노동자들에 국한돼 있는 실정이다.

‘우울증’ 가장 심한 비정규직엔 ‘그림의 떡’
미국 상장사 절반 ‘스트레스관리’ 큰 효과

2년 전부터 기업과 계약을 맺고 시이오나 임원 후보 등 ‘핵심인력’들을 대상으로 6개월 과정의 심층 심리분석을 해주고 있는 정신과 의사 정혜신씨는 현재 30대 기업 가운데 8곳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소장은 “신체적인 건강검진을 늘 하는 것처럼 고도의 정신노동을 수행하는 이들이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업들이 심리적 투자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직장인 정신건강 문제는 정규직이나 임원들보다는 비정규직에서 더 심각하다. 한림의대 성심병원 조정진 교수팀이 지난해 329곳 사업자의 직장인 8522명을 대상으로 한 우울증 조사 결과를 보면, 우울증 유병률은 일용직이 22.7%로 가장 많았고 파견근로와 계약직이 각각 16.3%였다. 반면 정규직은 15.7%였다.

근무형태별로는 2·3교대 근무자(17.2%)가 주간 근무자(15.5%)보다 높았다. 직업별로도 비숙련 판매서비스 직종이 18.2%로 가장 높고, 숙련기술 생산직이 17.9%, 단순노무 생산직이 17.3%였다. 기업주 및 임원관리직은 13%로 가장 낮았다.

한인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교육센터 연구원은 “영미권의 노동자들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태업을 하거나 무단 결근을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견디고 견디다 과로사하고 만다”며 “정부도 의지가 별로 없고 노동자들도 크게 쟁점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소홀하게 취급됐다”고 말했다.

가톨릭대 의과대학 채정호 교수는 “미국에선 90년대부터 직원들의 스트레스 관리가 활성화해, 상장회사 중 절반 가량이 다양한 형태로 정신건강 상담 프로그램을 채택하고 있다”며 “생산성 하락, 스트레스성 뇌심혈관 질환에 대한 요양비 지출, 인명사고, 산업재해, 기업 이미지 실추 등 정신건강 문제로 인한 손실을 따져보면 미국 기업들은 투자 대비 5배 가량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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