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빠진 보고서 책임 빠진 지속가능경영
[한겨레 2006-11-09 21:42]
[한겨레] 재무·환경 충실 비해 노동·인권 등은 형식적
“홍보수단 전락“비판 “시장평가 필요”목소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면서 환경, 노동, 인권 수준 등을 담은 ‘지속가능경영(사회책임경영) 보고서’ 발간이 잇따르고 있으나 정작 공개된 정보의 양과 질은 국제 수준에 한참 못미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산업재해와 지배구조, 비정규직 문제 등 민감한 항목을 빼놓은 채 자화자찬하는 경향이 짙어 일방적인 기업 홍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발간은 늘어나는데…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발간은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2003년 국내기업 3곳이 관련 보고서를 첫발간한 뒤 2004년 5곳, 지난해에는 11곳에서 보고서를 냈다. 올해는 무려 3배나 늘어난 30여개 기업이 보고서를 냈거나 준비중이다.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지역 사회에 대해 책임을 다하고 환경과 인권을 소중히 여기며 소비자와 노동자를 생각하는 기업인지 여부가 지속 성장과 국제경쟁에서 중요한 잣대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7월 발족한 유엔 글로벌컴팩트 등 국제사회의 표준화 움직임도 압박 요인이다.
하지만 국내기업들의 보고서는 전반적으로 충실도가 떨어진다. 전체 기재 항목의 평균 작성률은 국제 기준(GRI)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최정철 인하대 겸임교수는 “지난해 발간된 11개 기업의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분석해보니, 국제 기준에 따른 평균 준수율(작성률)은 45%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거나 불리한 내용은 누락시킨다는 얘기다.
알맹이 빠진 보고서들 지속가능 보고서는 대체로 경제·환경·사회 등 크게 3가지 영역과 이에 딸린 세부 항목으로 구성된다. 국내기업들의 보고서를 보면, 재무·환경은 그런대로 충실하게 다루는 편이지만 노동과 인권 영역에서는 형식적으로 기재하거나 아예 빼먹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만큼 노동·인권 분야에 취약하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현대차가 발간한 지속가능성 보고서에는, 고용 항목에 임직원수와 같은 일반적인 현황 위주로 나열돼 있어 비정규직이나 파견 노동자들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파악할 수 없게 돼있다. 현대차 보고서는 외국 현지공장과 관련해서도 고용현황과 인사정책, 노동 3권 보장 여부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산업 보건안전 항목을 제대로 작성한 기업도 드물었다. 토지공사, 롯데백화점, 대한항공, 신한은행 등은 작업관련 사상자수와 손실일수, 결근율을 아예 기재하지 않았다. 이달 초 처음 보고서를 낸 엘지전자와 3년 연속 보고서를 발간한 삼성에스디아이 역시 이 대목에서 건너뛰었다. 기업들의 이런 경향은 복리후생 제도와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올려놓고 있는 것과는 뚜렷하게 대조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이장원 선임연구위원은 “보고서가 전반적으로 국제 가이드라인을 따랐다기보다 이를 참조해 임의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보일만큼 균형감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시장 평가 뒤따라야” 국내기업들이 ‘함량 미달’의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남발하는 데는 제대로 된 보고서를 작성하는지 평가하고 검증하는 객관적인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은 탓이 가장 크다. 지배구조 문제와 노동 영역에서 취약한 기업들이 이해관계자 전체를 고려하기보다 보고서 발간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두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시민·사회단체에선 지속가능성 보고서 발간을 아예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주원 기업책임시민연대 사무차장은 “보고서를 내지 않은 기업에 비해선 높게 평가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홍보물 성격이 강한 것이 많다”면서 “의미있는 보고서가 되려면 시장 평가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지아르아이란?각국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작성의 기초로 삼는 ‘지아르아이’(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s)는 전세계에 통용되는 가이드라인을 입안하기 위해 1997년 유엔환경계획(UNEP)과 기업 및 시민단체들에 의해 창설된 비영리단체의 기준이다. 기업들은 지아르아이 기준에 따라 자신의 경제적, 환경적, 사회적 책임과 성과를 담은 보고서를 발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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