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노동자건강권운동, 전망은 어디에


노동자건강권 운동, 조직 전망을 고민하며



임준 /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



노동안전보건운동인가, 노동자건강권운동인가?


조직의 발전방향을 논의하기에 앞서서 노동안전보건과 노동자건강권에 대한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 노동안전보건운동을 과거의 담론과 내용, 그리고 활동 방식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운동과 구별된 노동자건강권운동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 대한 판단이 요구된다.1) 현재 각 노동안전보건운동 단체들은 노동안전보건운동과 노동자건강권운동을 서로 같은 개념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등 두 개념에 대한 명확한 구분 없이 필요에 따라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조금은 과도한 측면이 있을 수 있어도 개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노동안전보건운동과 노동자건강권운동의 담론과 활동내용, 그리고 활동방식을 구분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노동안전보건운동을 과거 특정 유해 인자별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되었던 운동으로 한정하여 정의하고자 한다. 이때의 노동안전보건운동은 제조업, 건설업 등 전통적으로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사업장에서 산재 예방을 위해 만들어졌던 산업안전보건법과 그 체계의 대당의 개념으로서 정의될 수 있는데,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 그리고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활동가와 전문가 그룹이 전개하였던 제반 안전보건활동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개념 정의에 기초할 때 노동안전보건운동은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이 근거하고 있는 산업적 노동관계적 측면에 근거한 활동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즉, 업종으로는 제조업과 건설업이 중심일 수밖에 없고, 고용 측면에서는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중심적인 관심 대상이 되며, 산업안전보건법의 책임 권한 관계를 현재의 취약한 안전보건체계에서도 비교적 손쉽게 물을 수 있는 중규모 이상의 사업장이 중심일 수밖에 없다. 또한, 개별 유해인자별 안전보건활동이 중심적인 과제로 부각된다. 이렇게 기존 산업안전보건체계의 대당 개념으로서 존재하는 운동이라는 점과 활동 내용이 산업안전보건법의 내용으로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그 주체도 노동조합과 이를 지원하는 활동가와 전문가 등 노동안전보건단체의 중심성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노동안전보건운동의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노동자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포괄적 문제에 대하여 관심과 활동을 확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제기된 노동자건강권운동은 담론체계와 활동내용, 그리고 활동주체 면에서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다. 노동안전보건운동과 차이를 대비하여 설명해보면, 노동자건강권운동은 노동안전보건운동과 달리 산업안전보건법 및 그 체계의 대당 개념으로서 존재하는 운동이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고 악화시키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대당 개념으로서 존재하는 확장된 운동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담론적 규정 하에서 노동안전보건운동이 제조업, 건설업의 중규모 이상의 기업에 직접 고용되어 있는 임금노동자의 산재 예방과 이와 관련된 안전보건활동에 초점이 맞추어진 운동이라면, 노동자건강권운동은 전체 노동자의 건강문제가 관심의 주요한 대상이고, 그 중에서 건강문제의 취약 집단인 비정규노동, 이주노동, 여성노동 등에 더 많은 관심과 집중을 요구하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차이점을 갖는다.2) 더욱이 노동안전보건운동이 전통적인 안전보건의 문제를 중심적으로 고민한 운동이었다면, 노동자건강권운동은 노동자의 건강 문제가 산재, 직업병 뿐 아니라 환경이나 여성, 인권의 문제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운동의 범위와 주제도 확장된다는 점에서 차이를 갖고 있다. 즉, 노동자건강권운동은 노동자 건강의 결정 요인이 사회경제적 요인부터 유해 물질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영역에 거쳐 있다는 점에서 노동안전보건운동처럼 직업안전보건의 문제만을 갖고 노동자 건강 문제를 접근한다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운동의 주체 측면에서도 노동안전보건운동이 전통적으로 노동조합 활동가 및 간부, 전문가 등이 중심적인 역할을 부여했다면, 노동자건강권운동은 노동자 또는 일하는 사람 전체가 건강권의 실제적인 권리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러한 개념 규정을 한다고 해서 기존의 노동안전보건운동과 구별되는 노동자건강권운동의 현실화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2001년 노동건강연대가 출범하면서 기존의 노동안전보건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노동자건강권운동으로 발전시켜나가자는 결의를 모았지만 현실 속에서 구현되지는 못하였다. 일부 지역사업 및 정책과 연대 사업 등을 통해 노동자건강권운동의 문제의식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였지만 실제로는 과거 노동안전보건운동의 패러다임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렇게 노동자건강권운동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못한 데에는 활동 방향의 전환에 따른 조직의 발전 전망을 구체적으로 만들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문제의식이 대두되었고, 오늘 토론회를 개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동자건강권운동에 어울리는 조직의 모습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은 정의에 기초할 때에 노동자건강권운동은 전통적인 산재직업병문제에 대한 대책활동, 교육 및 상담, 정책 활동 뿐 아니라 지역 의제, 환경 및 녹색 의제, 인권 의제 등의 활동을 포괄해야 했다. 또한, 노동자건강권운동이 노동안전보건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기초한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활동 내용 뿐 아니라 조직 체계 등 활동 방식에 있어서도 변화가 있어야 했다. 즉, 기존의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유지하면서도 미조직노동자, 비정규노동자,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의 건강 문제에 강조점을 두고 그들 또는 그들의 조직을 지원하는 데에 역량을 투여할 수 있도록 조직 체계를 갖추어야 했다. 그러나 노동자건강권운동의 문제의식은 제기되었으나, 어떠한 단체나 조직도 그러한 방향으로 조직체계를 변화하거나 활동방식을 고민하지는 못하였다.

직접적인 회원 범위의 확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면 노동자건강 문제와 연동되어 있는 환경, 인권 등을 의제로 활동하는 조직들과 연대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력 또는 조직 활동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한 점에 비추어볼 때 기존의 노동안전보건운동단체들은 제대로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하였다. 물론 내부의 연대 활동 뿐 아니라 다른 부문 단체들과 연대활동의 폭이 과거에 비해 상당한 수준으로 넓어지긴 하였지만, 실질적인 회원 구조나 연대 활동의 조직적 구조를 넓히는 데까지는 문제의식을 진전시키지 못하였다. 그 결과 당위적 차원에서 비정규노동, 환경, 이주, 지역, 인권 단체 등과의 연대가 이야기되고 특정 대책 활동을 통해 연대가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노동자 또는 일하는 사람의 건강권 문제를 공동의 의제로 올려놓고 수평적이고 지속적인 연대를 만들어내지는 못하였다.

현실적 대안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단체나 지역부터 노동자 또는 일하는 사람 전체의 건강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환경, 생태, 인권 단체 등과 조직적 연대 수준을 높여 공동의 활동을 조직해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조직 구조를 유지하면서 지역별로 노동자건강(환경)네트워크 등과 같은 조직을 결성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은 단일한 전국적 조직 구심을 갖기 보다는 지역별 운영구조를 갖고 가급적 독립적 활동보다는 네트워크 조직의 합의와 요구에 기초하여 공동 활동이 가능하도록 조직 운용이 이루어져야 한다. 공동의 정책 기능과 선전(회지 발간 등) 기능을 담당하는 조직만 별도로 두고 각 단체 예산의 10%를 공동 기금으로 조성하여 활동하는 조직을 상정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의 결과물에 따라 공동 활동의 수준 및 조직의 결합력을 높여나갈 수 있을 것이고 조직 단위도 세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무엇을?


우선적으로 노동안전보건단체들은 기존의 노동안전보건운동의 평가에 기초하여 노동자건강권운동이 제기되는 문제의식과 실제적 의미를 공유하는 작업을 선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존의 노동안전보건운동 단체들을 전국적인 단일 조직으로 묶어내는 작업은 현실의 역량 및 조건 속에서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기존의 담론을 확대 재생산하는 조직 구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양되어야 할 방법이다. 가능한 지역부터 노동자건강(환경)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가는 작업,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조직 활동의 방향이자 새로운 운동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급하게 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닐 뿐 아니라 우리들 누구에게도 노동안전보건운동의 틀을 일거에 바꿀 수 있는 재주나 역량을 갖춘 그룹이 없다. 그러한 그룹이 있다는 것이 긍정적인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개인이나 조직부터 고민을 확장하고 진정성 있게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1) 노동자건강권운동의 개념은 2001년 노동건강연대 출범 과정에서부터 제기되어 왔다.


2) 사실 자본의 탐욕에 의한 노동자건강이 악화되는 지점, 또는 모순이 중첩 결정되어 있는 지점이 주변부 노동에 집중되어 있다면, 노동자건강권운동의 중심도 옮겨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어찌 보면 그동안 대기업 조직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것은 실용적 공학적 관점에서 운동을 전개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