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이면


노동시간과 삶의 질

 김경희 / 공인노무사

얼마 전에 있던 일이다. 한 택시회사에서 일하다가 퇴직한 노동자의 퇴직금 체불 건으로 상담을 진행 중이었다.

회사에서는 근속년수가 30여년이 넘는 노동자의 퇴직금을 적게 줄 목적으로 꼼수를 부렸는데 내용인즉슨 퇴직을 앞둔 시점에서 의도적으로 택시 배차를 해주지 않는 등의 편법을 사용하여 평균임금을 대폭 낮추었고 결과적으로 노동자는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했더라면 받았을 퇴직금에 훨씬 못 미치는 퇴직금을 지급받게 된 것이다. 축소 근무당시에 그가 원했던 것은 정상적인 업무를 위한 하루 10시간의 택시 배차였다.

2012년 선거의 시기가 돌아왔다. 각 정당에서는 장기화된 실업에 대한 대안으로 일자리 창출 방안을 너나없이 들고 나왔고, 결과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방법은 근로시간 단축에 의한 일자리 증가로 귀결되고 있다.

정부도 노동법 개정을 통해 휴일연장근무를 법상의 연장근무에 포함시켜서 실질적인 근로시간을 줄이고 그 빈자리를 신규 일자리로 채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삶의 질이 향상될까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00인 이하 중소제조업체 종사자들의 월평균 기본급은 151만 2327원이었고, 초과근무 수당은 평균 35만 7681원으로 집계되었다고 한다. 1차 금속업계의 경우 월평균 기본급은 149만 3882원이었지만 초과근무 수당은 55만 4588원을 받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현재 이러한 저임금체계에서 임금의 적정수준을 유지하지 않은 채 근로시간만 단축한다면 노동자의 생존에 불안이 찾아올 것은 뻔한 일이다.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는 노동운동의 역사와 맞닿아있다. 오늘날 메이데이의 시초인 1886년 5월의 미국노동자의 요구는 하루 8시간 노동이었고, 우리나라의 최초의 노동절 행사였던 1923년의 조선 노동 총연맹의 요구도 노동시간단축, 임금인상, 실업방지 등이었다.

적절한 노동시간은 몇 시간?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절한 노동시간은? 이 문제를 건강의 개념과 접목해보면 어떨까.

WHO(세계보건기구)는 건강의 개념에 사회적 건강의 개념을 포함시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wellbeing)한 상태’라고 정의해 두었다. 이 정의를 기본으로 하여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시간을 생각해보면 어떠한 기준이 필요할까?

첫째 절대적인 노동시간 단축이다. 한국은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의 사회다. 장시간노동은 충분한 휴식을 불가능하게 하여 노동자 개인의 건강뿐만 아니라 과로사, 사고사 등의 사회적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둘째 노동자 개별 사정에 따른 근로시간 단축이다. 육아? 출산 등의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 노동시간 단축이 보장되어야 한다. 법으로 육아에 따른 근로시간 단축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현장은 육아휴직 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셋째 야간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사회적 휴식시간의 확보가 필요하다. 야간노동은 노동자와 가족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사회로부터 노동자의 고립을 부른다. 공공의 삶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 아니라면 모든 야간노동은 금지되어야 한다. 반드시 필요한 야간노동이라 해도 야간노동이 주된 근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일, 야간노동을 없애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