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노동안전보건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밖에 존재하는가


조기홍 /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국장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이하 CSR)’이라는 개념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기업, 사용자 단체, 투자 회사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개념에서 가장 흔하게, 그리고 가장 중시 되는 분야가 환경 과 노동 분야인데, 환경에 대한 관심은 환경 단체나 기업에게서 모두 높게 나타나고 있지만, 노동 분야 특히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관심은 그렇지 못하다. 기업들은 환경 분야에서의 책임 실적은 자랑스럽게 홍보하지만, 노동 분야의 실적은 되도록 감추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노동계의 경우 사회적 책임이라는 개념이 전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관점에서 문제 제기를 하거나 이슈화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


노동안전보건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밖에 존재하는가


노동부는 2011년 산재율이 0.7%미만(0.65%)으로 떨어졌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러나 2011년 산재 노동자의 수는 10만 여명에 이르렀고, 2천여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매일  7명의 노동자가 죽고, 240여명의 노동자가 산재를 당한 것이다.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매일 산재와 사투를 치루고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최근 한국의 기업들은 너도나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들먹이고, 다양한 사회 공헌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윤리적 기업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죽고 다치는 현실은 뒤로 하고, 사회 공헌 프로그램 몇 개 진행했다고 사회적 책임 운운할 자격이 있을까? 당연하게도 기업들이 발간하고 홍보하는 사회적 책임 보고서에서 산재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단 한 줄도 찾아 볼 수 없다.


삼성의 예를 들어보자. 삼성은 경영 원칙을 통해 환경, 안전, 건강을 중시하고(원칙4) 글로벌 기업시민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고(원칙5) 홍보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삼성은 경영 원칙(4.2에)서 


“인류의 안전과 건강을 중시한다. 안전과 관련된 국제기준, 관계법령, 내부규정 등을 준수한다. 안전수칙을 준수하고 쾌적한 근무환경을 조성하여 안전사고를 예방한다. 인류의 건강과 안전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삼성이 이러한 원칙들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는 정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노동자들이 직업병으로 고통 받고 사망하였음이 법원 판결 등을 통해 확인되었지만, 삼성은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도 하지 않았다.

현대건설은 국내 기업 중 최초로 영국 CR Reporting Awards 본상을 수상하였다고 홍보하고 있다. 현대건설이 과연 이 같은 상을 수상할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현대 건설은 지난 2007년, 2012년에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이다.

필자가 속한 한국노총은 현대건설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에 산재사망 노동자에 대한 기록과 산재 예방을 위한 대책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글로벌 전문기관인 Corporate Register는 현대건설의 본상 수상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도 있다.


사회적 책임 보고서에서 노동안전보건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나


우리나라 기업들이 발간하는 ‘사회적 책임 보고서’에서 노동안전보건 문제는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을까? 당연하게도, 우리나라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 보고서’들은 사회적 책임 평가 기관들에서 제시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기준(G3 guideline,  SA8000, SRI 등)’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

최재욱 교수가 2007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안전보건정책 및 계획, 활동 목적을 기술한 보고서는 전체의 60%에 불과했고, 산업재해 발생률을 다루고 있는 보고서는 36%, 안전보건위원회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보고서는 22%에 불과하였다. 

한국노총은 2008년 를 실시하였다. 위 실태조사는 기업들이 2007년과 2008년에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중 국내 보고서 22개, 국외 보고서 46개를 분석한 결과이다. GRI guideline1)에 비추어 노동안전보건 분야의 각 지표별 보고서상 공개 여부를 검토한 결과, 그 공개 수준이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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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산업안전보건지표(OSHL)2)에 비추어 노동안전보건 분야의 각 지표별 보고서상 공개 여부를 검토한 결과에서도 공개 수준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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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책임(CSR) 측정 지표의 발굴


기업이 노동안전보건의 문제를 사회적 책임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위해서는 노동안전보건 분야에 대한 사회적 책임 측정 지표의 개발이 필요하다. 새로운 측정 지표는 국제적 기준보다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설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하청기업의 산재율과 산재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지원 사항 등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급증하고 있는 직업성 질환, 직무스트레스로 인한 정신건강 등의 항목도 포함되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 주도의 활동이지만, 노동안전보건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무리 공정하고 객관적인 지표가 발굴된다고 하더라도, 그 측정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없다. 노사가 공동으로 TFT를 구성하고 노동조합의 공식적인 참여가 보장된다면 이를 어느 정도 담보할 수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은 커질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노동계의 대응도 현재보다 확대되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이슈는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효과적 통로, 수단이 될 수 있다. 만약 기업의 사회적 책임 안에서 노동안전보건의 문제를 풀어갈 수만 있다면, 기업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견인하고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GRI guideline LA6 – LA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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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OSHL1 – OSH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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