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노동자와 휴가


경쟁력의 언어에 휩싸인 휴가


김영선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연구교수




1. 말해질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 생산


“먹는 것을 죄악시하는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초코파이도 어딘가에 숨어서 먹는다. 그게 그 아이에게는 당연한 일이요 상식이기 때문이다.”


어떤 프레임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 우리는 보고 듣고 느끼는 게 달라진다. 프레임이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진리가 진리로서 생산되기도 하지만, 허위로 간주될 수 있다. 진리가 진리인가 아닌가의 여부도 중요하지만, 진리를 담아내는 프레임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도 중요한 것이다. 


여기서 프레임(frame)은 일을 처리하는 방식,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자기 자신을 대하는 방식, 타인들과 관계맺는 방식, 세상에 대한 믿음 등을 특정하게 구조화하는 체계이다. 프레임은 우리의 아이디어와 개념을 틀지우고, 사유 방식을 형성하며, 심지어 지각 방식과 행동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더 중요한 것은 이슈도 정의한다는데 있다. 프레임은 문제를 규정하고 해결책을 통제한다. 나아가 프레임 밖의 관심사?호기심을 차단?배제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프레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프레임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나아가 한 프레임이 다른 프레임보다 더 우선권을 갖는지를 따져 물어야 한다. 프레임의 문제는 미래의 틀을 다시 만드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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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조히즘의 언어에 둘러싸였던 휴가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노동자들에게 휴일을 즐긴다는 것은 하나의 사치로 여겨졌다. 그것은 낯선 것이었다. 주말이 현재와 같은 보편적인 휴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까지도 “일주일에 하루씩만 쉴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라는 한 노동자의 외침은 메아리없는 울림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들어서면서 ‘모두’를 지향하는 휴일·휴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선 ‘일요일은 쉬는 날’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적인 추세로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했다. 더불어 제도적으로 휴일이 확대되었다. 휴식의 증대를 통한 국민복지의 증진이란 명분을 내세워 노태우 정권은 1990년부터 법정공휴일을 17일에서 19일로 늘렸다. 종전 음력설의 하루 휴일을 3일 연휴로 늘린 것이다. 


게다가 공휴일과 일요일이 겹칠 때에는 월요일을 휴무토록 하는 ‘익일휴무제’가 1990년부터 실시케 되었다. 이는 법정공휴일을 하루나 이틀 늘리는 조치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휴일의 보편적 배열을 의미했다. 력(曆)에 고정된 상태로 휴일을 ‘고무줄처럼 늘어난 대로 또는 줄어든 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휴일이라는 자유시간의 절대적 보장을 의미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익일휴무의 제도화는 ‘모두를 위한 휴가(holiday for all)’을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상징적 표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연차유급휴가와 관련하여 휴가 부여일수가 대폭 상향조정 되었다. 1989년 초 제정된 근로기준법(1989. 3. 29 시행, 법률 4099호)에 따르면, 연차휴가 일수가 1년 개근한 노동자에 대해 8일에서 10일로, 9할 이상 출근자에 대해 3일에서 8일로 늘어났다.


이에 기업들은 휴가 희생담론을 전방위적으로 동원하기 시작했다. 기업부담, 경제 위기, 한국병, 낭비 등의 이유로 휴일, 휴가는 축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반복되었던 언표들을 압축하면 과소비 지양, 생산성 제고, 노동윤리 제고, 글로벌 스탠다드, 위기 극복 등으로 유형화할 수 있다. 여기서는 1987년 이후 휴가를 ‘불필요한’, ‘낭비적인’, ‘한국병’, ‘후진적인’ 것으로 반복 재현하며 문제적(problematic)으로 바라보는 마조히즘의 언어들을 들춰본다. 그것은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지!


1) 과소비는 안 돼!


경영담론은 전통적으로 노동시간 단축 및 자유시간 증가를 과소비와 연관된 표현들과 짝짓는다. 과소비는 낭비, 게으름, 향락, 퇴폐, 범죄를 양산할 것이라 여겨진다. 이와 같은 해석은 노동으로부터의 자유시간을 왜곡된 욕구(false needs)로 전제하기 때문이다. 여기로부터 도출되는 해결책은 자유시간을 억제하는 길이다. 이성의 언어나 노동의 언어로 계몽되고 규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담론이 내놓았던 휴가에 대한 우려의 언표를 보면 다음과 같다.


과소비, 유한족의 낭비, 시간낭비, 금쪽같은 시간 허비, 한해 절반 놀기, 사치와 향락, 사치스러웠던, 노는 분위기의 확산, 놀자 풍조 조장, 놀자판 될 가능성, 노는데 정신 팔려, 놀 궁리에 바쁘다, 놀고먹겠단 얘기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놀이와 여흥은 사회적 규율을 깨뜨리고 도덕성을 갉아 먹는다는 혐의를 받고 금지의 대상으로 재단된다. 그것들은 비합리적인 욕구이자 도덕적 일탈의 한 형태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과소비 언표들은 도덕주의를 강하게 함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유시간에 대한 시장의 거부감을 표현한다. 다시 말해 과소비 언표는 자유시간 증가로 국가 및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전제한다. 현재와 같은 공휴일로 인해 국가 및 기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경영담론 내에서 공휴일은 당연히 축소·제거되어야 할 대상이다. 즉 질병 덩어리(한국병, 위기의 진원, 경쟁력 하락 등)로 재현된다[현재의 휴일·휴가 → 노는 날 순증 → 흥청망청 소비 → 국가 및 기업의 경쟁력 약화].


2) 노동윤리 제고해야!


노동윤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자본의 시도는 항상 자유시간의 출현을 강하게 견제했다. 그것은 자유시간을 게으름, 수동성, 낭비, 공포, 두려움, 퇴폐의 씨앗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한거(閑居)하면 불선(不善)하다는 것이다. 게으름을 윤리적으로 단죄한다. 이는 자유시간의 배분이 노동윤리를 침식한다는 굳건한 신념에 근거한다.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것이 도덕성에 좋은 효과를 미친다고까지 주장한다. “젊은 도제들이 술집에 가서 취하도록 마실 시간이 없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모든 악의 근원인 무위도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매일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담론은 자유시간의 배분에 따른 게으름의 부도덕을 끊임없이 경계하면서, 비상한 각오로 노동윤리를 제고해야 함을 강변한다. 그래서 무위도식하는 자, 무절제하고 방탕한 자, 늦잠 자는 자, 넋 놓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자, 게으름 피우는 자, 노는데 정신이 팔린 자는 정화되거나 훈련되어야 할 대상으로 처리된다. 나아가 먼 미래를 위해 쾌락을 지연하고 절제할 것을 강조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에는 게으름뱅이의 사회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짙게 반영되어 있다. 이렇게 시간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time)에 방해물은 자본의 강력한 저항이었다.

 

3) 생산성 떨어질라!


셋째, 휴가는 기업 부담을 가중시켜 경제적 진보를 위험(위축, 하락, 추락, 감퇴)에 빠트릴 것이라는 논리다. 그 구체적 내용을 보면, 휴가의 증대는 필연적으로 인건비 상승을 초래할 수밖에 없고 이는 원가 상승으로 이어져 가격에 전가되고 경쟁력을 약화시켜 미래 투자가 지연되어 구조적 악순환만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경제적 진보와 상충한다는 주장으로 변질돼 휴가는 ‘지금’은 이르기에 ‘다음’으로 연기되어야 하는 것으로 처리된다. 


‘생산성 약화’라는 선율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다. 그 가운데 ‘기업부담’과 연관된 언표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과도한 부담’, ‘기업경영 발목’, ‘기업 추가 부담’, ‘열악한 중소기업에게는’, ‘인건비 상승’, ‘문제는 비용분담’과 같이 기업부담을 강조하고 있다. 


이외에 ‘기업 의욕 상실’, ‘경영 의욕 떨어짐’, ‘기업의 투자 위축’, ‘투자 의욕 감퇴’, ‘생산성 1/3’, ‘생산 리듬파괴’, ‘생산성 하락’, ‘생산 분위기 해침’, ‘생산비 증가’, ‘작업 능률 급락’, ‘수출경쟁력 하락’, ‘국가경쟁력 감퇴’, ‘산업 경쟁력 타격’, ‘대외 신인도 추락’ 등과 같은 언표들이 반복되고 있다. 


4) 지금은 위기다!


넷째,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진단은 통상 고통 감수라는 해법을 끌어들인다. 고통 감수는 휴가 축소라는 희생을 직접적으로 요구한다. 


휴일·휴가 축소를 정당화하는 경영담론은 현상황을 절체절명의 위기로 진단하곤 한다. 위기론의 어휘들 중에는 ‘어려움’이 가장 빈번히 사용된다. 어려움의 원인은 물가와 부동산 폭등, 무역적자, 국제경쟁력 약화 등으로 진단되곤 한다. 하지만 ‘어려움’이라는 어휘는 위기의 상황이나 정도를 구체적으로 표시하진 않는다. 이는 기업의 위기를 상상된 것으로 언표하고, 그러한 상상된 관계 속에서 노동자들의 환기를 촉구하는 언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위기론이 가지는 전형적인 배열 방식은 ‘위기 → 고통감수 → 유토피아적 미래’라는 형식을 띤다. 


‘위기’를 전면에 배치한 후 ‘마른수건 쥐어짜는’식의 논리는 노동자들의 환기를 촉구하는 전형적인 전략(상황정의)으로 자주 반복된다. 이를테면,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문(제15차 라디오 연설문, 2009. 5. 18)을 보면, “지금은 긴장을 늦출 시점이 아니고, 전세계가 당면해 있는 위기상황을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 지금의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그 동안 우리 사회 곳곳에 누적돼 온 비효율과 거품을 제거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더 빠르게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다시 한번 신발끈을 조여매자.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는 한시도 늦출 수 없는 중요한 과제다(상황대처).” 이러한 논리는 시차를 두고 반복 계열화되면서(제17차 비상경제대책회의 브리핑, 2009. 5. 7), 사회의 질서/상식을 재설계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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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야!


마지막으로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언표는 90년대 초반 김영삼 정권이라는 맥락을 고려해야 그 의미를 짚을 수 있다. 당시 정권은 군사독재라는 과거와의 단절을 위한 노력으로 OECD 가입에 열을 올리며 과거의 것(한국병, 나쁜 옛 것)을 폐기하고 새로운 세계(글로벌 스탠다드, 좋은 새 것)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병의 항목에는 불행하게도 생리휴가 및 늘어난 공휴일도 포함되었다. 한국 특수적인 휴가는 글로벌 스탠다드와 양립할 수 없다고 여겨졌다. 김영삼 정권은 생리휴가나 월차휴가는 글로벌 스탠다드와 맞지 않는 옷이기에 폐기되어야 것으로 재단해 나갔다. 

‘세계화(segyehwa)’라는 기치 아래 국제경쟁력 제고라는 구호는 곳곳에 파고들었다. 글로벌 스탠다드가 전면에 배치되는 맥락에서 늘어난 공휴일은 ‘사회의 역동성과 생산성을 떨어뜨려온 한국병의 정체’로 분류된다. 그 진단은 해외의 휴가 일수와 1인당 국민소득과 같은 국제 비교라는 준거를 따랐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도록 휴일수를 조정해야 한다는 질병치유의 시선은 재계의 고통분담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정책 기조와 더욱 부합했다. 특히 글로벌 스탠다드 규범은 생리휴가, 월차휴가와 같은 한국 ‘특수적’ 휴가제도를 폐기해야하는 논거로 적극 활용되었다. 이러한 것들은 세계화 시대에는 없어져야 할 ‘구시대적’ 산물로 여겨졌다. 개발연대의 서글픈 유산이라는 것이다. 다분히 ‘열망적’ 수준에 머물렀고 당위론적 수사의 나열에 그쳤던 세계화라는 구호는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당시 정권의 전략적인 몸부림이었다. 


        휴가를 둘러싼 마조히즘 담론의 층위, 1990년대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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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부담의 덩어리로 재단된 휴일·휴가를 축소하기 위해 전방위의 희생담론이 동원되었다. 낭비를 제거해야한다는 논리는 노동시간뿐만 아니라 작업장 너머의 가족시간, 자유시간, 여가시간 등 일상영역까지 침투하여 재구조화할 것을 강요했다. 희생담론은 과소비 지양, 생산성 제고, 노동윤리 제고, 글로벌 스탠다드 지향, 위기 극복이라는 각종 논리를 동원해 휴일·휴가 축소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담론적 실천을 전개해 나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휴가는 마조히즘의 언표들에 둘러싸였는데, 그것은 절제, 제거의 대상으로 재현되었다. ‘한국병’을 고치고 ‘신한국’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불필요하고 낭비적인 시간들은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낭비제거라는 복음은 기업부담으로 여겨지던 자유시간의 덩어리들을 하나하나씩 제거해 나가기 시작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휴가의 보편적 배열, 즉 휴가의 민주화로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휴가 희생 이데올로기는 자유시간을 ‘사회적 낭비’, ‘비효율적인 습관’ 등으로 계열화하면서, 휴가의 실질적 민주화로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차폐화시키고 있었다. 

3. 경쟁력의 언어에 휩싸인 휴가


역사적으로 휴가는 통제의 영역으로 남겨져 있었다. 억압적으로 관리해야 할 영역으로 여겨지던 휴가는 언급한 바와 같이 금지·부정(-)의 언표로 재현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휴가는 적극적으로 프로그램화된 생산의 대상으로 처리되었다. 자유시간을 생산시간화 하려는 긍정(+)의 언표들에 전방위적으로 휩싸였다. 특히 90년대 중반이후 경쟁력 담론은 휴가를 ‘~ 이도록’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획의 대상으로 특정화했다. 이전처럼 자유시간의 억압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다. 경쟁력 담론은 자유시간을 조절하고 기획하며 통치할 수 있는 전략을 지향하고 실천한다. 


90년대 중반부터 갑작스레 별의별 이름의 휴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편의상 리프레시 휴가로 통칭할 수 있다. 여기에는 여름철에 일시 사용하던 휴가를 리프레시 휴가로 바꿔 부르는 경우부터 최근 각광받고 있는 해외연수, 배낭여행, 안식휴가까지 다양하다. 


쏟아지는 휴가들의 성격을 정리하면, 우선, 휴가의 배분기준이 변화했다. 그것은 ‘근속연수’ 기준에서 ‘능력/역량’ 기준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임직원이나 오래 근무한 부차장급을 대상으로 제공되던 것이 최근에는 핵심인재를 중심으로 제공된다. 기존에도 특별형태의 휴가는 대부분의 사원들에게 ‘이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능력 기준으로 포상적 성격이 더욱 강해졌다. 


둘째, 휴가에 대한 강조점이 변화했다. 휴가 배분에 있어 ‘경쟁력 강화’, ‘생산성 제고’와 같은 논리와 규범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휴가에서도 창조적 기획에 기초한 자기경영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획되어야 하는 재충전 시간으로 의미화되고 ‘업무의 시작’ 단계임을 강조하는 생산성 담론이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전과 유사하게 여름휴가를 단순 재배치하는 형태가 지속되고 있다. 사실 특별형태의 휴가 대부분은 여름휴가에 그 동안 사용하지 못한 연차유급휴가를 덧대는 형태다. 이를테면 여름휴가 및 명절연휴 앞뒤로 하루나 이틀 정도의 연차휴가를 덧붙인다. 기존 여름휴가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한 것이다.  


1) 일할 때처럼 철두철미하게!


갑작스레 쏟아진 휴가들은 우선 ‘계획과 기획’의 강조했다. 관련된 언표들은 다음과 같다. ① “어렵게 낸 시간인 만큼 그는 일할 때처럼 철두철미하게 휴가계획을 세웠다. 매일 등산, 매일 온천 목욕, 매일 책 한 권 일기, 매일 산책이란 목표를 이루려면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다.” ② “2005년 초 윈윈어그리먼트라는 1년치 사업계획서를 내며… 안식년 계획을 밝혔다.” ③ “한 달 휴가를 별생각 없이 어영부영 노는 것으로 보내선 곤란하다. 목표를 세우고 철저하게 계획을 수립하자…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으로 활용하자!” 


2) 잘 쉬고 노는 게 경쟁력!


‘쉬고 노는’ 일은 역사적으로 터부시되어 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잘 쉬고 노는’ 것이 긍정의 가치를 가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쉬고 노는 일도 경쟁력이라는 새로운 표준에 맞춰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대상으로 다뤄진다. ‘잘 놀고 쉬는 것’이 ‘경쟁력’을 위한 토대라는 점을 쉼 없이 강조하는 언표들은 다음과 같다. ① “잘 놀고 잘 쉬어야 능률도 높다”, ② “잘 노는 것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필수적”, ③ “잘 놀고 잘 쉬어야 창의력도 높아진다.” ④ “심신의 건강을 도모하는 것이야 말로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이다.” ⑤ “당당하게 휴가를 보내는 임직원이 많을수록 기업들의 경쟁력도 높아진다.” ⑥ “기업들이 직원들의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기발한 휴가 제도를 도입”, ⑦ “테마가 있는 휴가로 창의력 개발”, ⑧ “잘 쉬고 노는 게 경쟁력”.


3) 이것이 혁신이다!


전통적으로 ‘개미’와 ‘휴가’는 모순적인 관계이지만, 혁신이라는 논리안에서는 서로 양립할 수 있는 관계로 재설정되고 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으로 의미화된다. 리프레시 휴가야 말로 ‘혁신’이라고 간주한다는 것이다. ① “창의력이 강조되는 21세기엔 잘 노는 것이 경쟁력”, ② “휴가를 즐길 줄 아는 개미야말로 진짜 일개미”, ③ “잘 쉬어야 일도 잘한다는 선진국형 휴테크 개념이 확산”, ④ “21세기 경쟁력은 창의성에서 나온다.” ⑤ “푹 쉬어야 일도 잘한다는 휴테크 개념의 확산”.


4) 휴가=생산성 향상을 위한 재충전!


마지막으로 이러한 논리에 따라 움직여야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① “충분히 쉬면서 아이디어 구상을 잘 할 수 있게 하자!” ② “직원들의 노동과 여가의 균형을 맞춰 생산성을 높이는 경영기법”, ③ “아이디어와 전략을 창출하는 생각주간”, ④ “휴가는 더 큰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계기”, ⑤ “기업들도 직원들의 여름휴가를 직접 챙기고 있다. 여름휴가기간 동안 충분히 쉬고 재충전한 직원만이 회사에서 창의력을 발휘, 업무능력을 배가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⑥ “휴가는 그냥 쉬는 것이 아니라 업무에 필요한 실력을 키우고 아이디어를 얻는 시간”, ⑦ “잘 쉬는 게 생산성을 높이는 것”, ⑧ “휴가=생산성 향상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 ⑨ “업무에 대한 보상이라기보다는 재충전하고 많이 배워오라는 뜻”.


                  휴가를 둘러싼 경쟁력 담론의 층위, 1990년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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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휴가는 능력주의에 기반한 경쟁력 담론에 의해 생산적이고 유용하고 쓸모 있게 관리해야할 대상(자원, 휴테크)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경제위기 이후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휴가는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재생산의 도구(채워야할, 재생산의 영역)로 처리된다. 휴가를 떠나더라도 노동자는 자신의 휴가를 자기충족적으로 즐기지 못하게 되고 단지 정해진 기능을 수행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기업이 요구하는 ‘수행원리(performance principle)’일 뿐이다. 


사실 리프레시라고 불리는 휴가는 과장되거나 현실과 무관한 모습이었고, 리프레시라는 재현은 경쟁력, 생산성, 아이디어 등으로 스테레오타입화 되었다. 


긍정의 언표로 채색된 경쟁력 담론은 곳곳에 파고 들어갔다. 경쟁력이 새로운 합리성의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자유시간 영역인 휴가까지 경쟁력·생산성·아이디어의 대상으로 전환시킨 것은 경쟁력 담론의 최대 걸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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