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

 집을 사다 _ 첫 번째 이야기

이서치경 / 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

드디어 집을 샀다. 시골 농가를 사게 된 이야기를 할까 한다. 창피하지만 우리 집 가계형편도 공개해야 이야기가 풀리겠다.

지난 봄, 주인아주머니가 전세금을 2천만 원 올려달라고 했다. 5천만 원에서 7천만 원으로 올리는 것이니, 무려 40%인상이다. 이렇게 높은 인상률이 합법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주인댁의 여러 문제에 시달려온 후라 우리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이사하기로 결정하였다. 주인댁과의 감정적 말다툼 끝에 서로 석 달 안에 우리는 새 집을, 주인은 새 세입자를 구하기로 하였다. 홧김에 질러놓고 돌아서니 걱정이 앞섰다. 전세가 많이 올랐다는데 집을 구할 수 있을까?

예상대로 주변의 전세가 너무 많이 올라있었다. 전세 7천만 원은 기본이었다. 특히 전철역 가까운 곳은 아예 집이 없었다. (여기서 ‘가깝다’의 기준은 도시와는 좀 다른데, 차로 10분 거리 이내는 역세권이다. 차로 10분 거리는 사람이 걸어서 30분 이내를 뜻하는데 이 거리가 걸어 다니기의 한계인 듯하다) 불과 2년 만에 전세 값이 2,3천만 원이 오르다니. 서울의 전세대란은 약 6개월 후 양평으로 확대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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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통의 전단지-역에서 차로 15분거리의 외곽지역 전세집]

게다가 우리가 집을 고를 때 가장 문제는 개와 고양이 6마리를 키울 것을 주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가진 전세금 5천만 원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은 읍내의 다세대, 혹은 낡은 연립 등 공동주택들인데 여기서는 6마리의 동물을 키울 수가 없다.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은 전세 8천,9천을 육박하고 있었다.

보름 정도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전전하던 우리는 어느 날 저녁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결과, 아예 집을 사기로 했다. 나날이 뛰는 전세 값도 문제지만, 집을 매입하지 않는 이상은 우리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방법이 없었다. 또 시골에 살면서도 동물을 마당에 내놓지 못하게 하는 집주인들에게 질리기도 했다. 부동산 경기가 안 좋지만, 아파트와 달리 토지는 경기불황의 여파에 상관없이 투자의 가치가 있기도 했다.

우리가 가진 것은 5천만 원.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다 치고, 1억~1억3천만 원 선에서 집을 알아봐야 한다. 서울로 출퇴근을 하기 위해 전철역 인근이어야 한다. 작아도 동물을 맘껏 키울 수 있는 마당이 있어야 한다. 또한 은행의 대출심사를 위해 토지대장, 건축물대장등의 서류가 구비되어 있고, 토지에 불법건축물이 없어야 한다. 결론은 이런 집은 없다는 것.

우선 양평의 단독 주택의 시세는 보통 2억부터 시작한다. 2억 미만의 주택은 거의 없다.

1억3천 선에서 매매를 알아보고 싶은데요.

죄송합니다, 저희 부동산엔 그런 매물은 없어요.

소파에 한번 앉아 보지도 못하고 부동산 사무실 입구에서 퇴짜 맞기 일쑤였다. 10곳 중에 1곳 정도만 “일단 앉아보세요” 라며 대꾸를 해주었다. 이런 푸대접을 하루 종일 받다보면 저녁에 집에 돌아올 때엔 만신창이가 된 기분이었다.

둘째, 전철역 인근은 아예 매물로 나온 집 자체가 별로 없고 있어도 가격대가 너무 높았다. 셋째, 도대체 서류가 깔끔한 집이 별로 없었다. 원주민들의 오래된 집은 과거부터 토지대장 등이 투미한 채로 자손에게 상속된 것이 많았고, 새로 지은 전원주택들도 알 수 없는 많은 이유로 서류가 허위인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한 집은 23평으로 짓고 준공허가를 우선 받은 후, 임의로 증축하여 30평을 만들었다. 등기에 없는 7평은 무허가건축물인 셈이다. 세금을 피하기 위한 편법인데 이런 집이 태반이다. 우리처럼 은행의 심사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무허가 증축은 안 될 말이었다.

집을 못 구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많이 돌아다녀야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도시의 주택밀집과 달리 시골은 집이 뜨문뜨문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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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병부대 옆 집-대지 160평. 집 자체만 봤을 땐 여기가 가장 맘에 들었다]

한 달을 돌아다닌 결과, 몇 군데 집을 보았다. 우선 1억2천 짜리 양동면의 농가주택. 이 집은 50년 된 집으로 벽이 흙벽으로 되었는데 너무 낡아 수리가 불가능하고 새로 지어야 하는 집이었다. 건축비 최소 3천만 원.

개군면의 1억3천 짜리 집은 바로 뒤가 포병부대여서 장갑차등의 각종 중장비의 소음과 매연이 심각하다는 뒷집 아주머니의 귀띔이 있었다.

지평면의 1억3천 짜리 집은 대지도 240평이고 집도 쓸 만한 콘크리트 집이어서 맘에 들었는데 뒤편이 헬기부대착륙장이어서 훈련기간에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개군면의 1억2천 짜리 집은 아담한 한옥을 개조한 집으로 한옥마을이 생각나는 곳이었는데 2층이 무허가 증축이라는 문제가 있고 바로 앞이 대규모 축사가 버티고 있어 벌레와 냄새가 심각했다.

청운면의 9천만원 짜리 집은 전철역에서도 차로 30분이라 거리도 멀고, 건축물 등기도 없는 집이었다. 읍내에서 가까운 1억3천 짜리 농가는 땅도 넓고 집도 깔끔했지만 토지가 절대농지로 묶여있는 곳이어서 앞으로도 거래가능성이 낮은 곳이었다.

그리고 여주경계를 넘어 천서리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 1억5천 짜리 집은 다른 조건은 훌륭하나 진입로가 없어 앞집 마당을 거쳐서 다녀야 하고 일 년에 50만원씩 진입로 사용료를  줘야 하는 곳이었다. 진입로 없는 집은 땅의 가치가 불확실하므로 탈락.

지평면의 9천만원 짜리 집은 산 중턱에 있었는데 그 산이 남한최대의 탄약저장고였다. 산기슭을 따라 탄약 창고의 입구가 줄지어 늘어져있고 산 전체가 삼엄한 경비로 둘러 싸여 있었다. 이 탄약고가 터지면 양평일대가 절단난다는 아저씨들의 말을 듣고 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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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군면의 한옥집-대지 80평. 뒤로보이는 2층이 무허가 건축물이라 은행대출이 안된다]

대략 이런 집들을 보았다. 보고 싶어서 본 게 아니라, 가격에 맞는 집들은 다 이런 상태였다.

부동산을 찾아다닌 한 달,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돈이 없어 맘 상하고 퇴짜 맞아 속상하고, 그나마 본 집이 이 꼴이어서 황당하고, 이사 들어올 사람은 이삿날 잡아달라고 독촉하고.

개, 고양이 6마리에 세간을 이고지고 어디로 갈 것인가.

시련은 계속된다. 어렵사리 마땅한 집을 구해서 계약하러 갔더니 집주인이 마음을 바꿔 안 팔겠단다. 가을에 원주 행 전철이 개통되면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인 듯 했다. 다시 집을 보러 다녔다. 또 한 집을 찾아내서 계약을 하려니 집주인이 유산문제로 송사중이어서 기다려야 한단다. 2순위로 생각한 집이 있어 연락했더니 그사이 다른 사람이 계약서를 썼다고 한다. 온몸의 기운이 하나도 남지 않고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식욕도 없고 소화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집을 비워줘야 하는 날짜가 한 달도 안 남았다. 불안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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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순위로 생각했던 집-대지 170평. 하루이틀 머뭇거리는 틈에 다른 사람이 계약해버렸다]

마지막 기운을 끌어올려 부동산 문을 두드렸다. 한 곳에서 집을 보여주었다.

청운면의 이 집은 1억3천 이고 고속도로 바로 옆이었다. 70년대 지어진 새마을주택으로 지붕은 나무 널판지, 마당엔 무허가 창고가 폐허가 되어 있었다. 지붕올리고 창고 철거하는데 만 1천만 원가량 들것 같았다. 석면슬레트건물이라 특수폐기물로 처리해야 한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마당 한 쪽에 시커멓게 서있는 한 칸 건물을 가리키자 ‘화장실’이란다.

‘수세식 화장실은 없나요?’ ‘네, 없어요’

다리에 힘이 풀렸다. 화장실 없는 집까지 보게 되었구나. 수세식으로 바꾸려면 정화조부터 묻어야 하는데 그것만 600만원이라고 한다. 집을 개조하는 공사비는 별도로 하고 말이다. ‘너무 하는군. 도대체 내게 왜 이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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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옆집- 대지 200평. 푸세식 화장실. 70년대에 지은 새마을 주택이다]

차를 끌고 달렸다. 집 같지도 않은 집을 비싸게 내놓은 사람들에게도 화나고, 일이 틀어지는 상황에도 화나고, 보증금 500만원 월세방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과정도 지나갔다. 양쪽 부모로부터 돈 10만 원도 안 받고 지금에 이른 것을 기특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과연 바보 같은 짓이었나. 자괴감도 들었다.

강을 건너 여주로 넘어갔다. 30분 정도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 아, 여주는 얼마나 평화롭고 좋은 집도 많이 보이는지.

마침내 우리는 마땅한 집을 찾아내어 계약에 이르렀다. 양평에서도 서울 쪽으로 가까운 옥천면이고 전철역에서 차로 10분 거리이며 축사도 없고 군부대도 없는 깨끗하고 조용한 동네이고 외지인이 별로 없어 원주민들이 사이좋게 사는 마을이었다. 집도 지은 지 16년 된(16년 밖에 안 된!) 빨간 벽돌집에 마당도 100평으로 살 만 했다. 바로 앞에는 개천이 있고 하루 두 번 이지만 버스도 들어오는, 경주 정씨 집성촌이란다.

우리가 살 집은 이 정씨 집안의 한 할머니가 혼자 사시다 2년 전 돌아가신 곳으로 최근에 집을 팔려고 내놓은 것이다. 우리가 이곳에 집을 구했다는 말을 하자, 민준이네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며 ‘아니, 그 동네에 집이 나왔어? 그 동네에 집이 나올 리가 없는데, 새댁이 운 좋게 잘 잡았네’ 라며 신기해했다. 옥천면은 다른 면에 비해 공시지가가 3배가량 높아 은행대출도 문제없는 이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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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구한 옥천면 집-대지 100평. 건물은 8평]

문제는 한가지, 집이 8평이라는 것이다. 방 하나, 마루 겸 부엌 하나, 화장실 한 칸. 그러나  일단 수세식 화장실이어서 정화조도 땅 밑에 있고, 창문도 다 달려있고, 벽도 제대로 서 있었다. 벽이 없는 집도 본적이 있다. 집을 허물어 버리려고 했는지 변기, 세면대, 싱크대도 철거되고 없었다. 그건 작은 문제일 뿐이었다.

집을 계약하고 나니 부엌 한 칸을 따로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에 펜스를 설치해 동물들을 풀어놓을 준비도 해야겠다. 해야 할 것이 끝도 없이 보인다.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끝날 것 같던 ‘내집마련’, 1부가 끝나고 2부가 시작되고 있었다.

8평짜리 집이 어떻게 11평이 되었는지, 이사를 왜 두 번하게 되었는지, 우리에게 이 집을 판 주인은 왜 집을 내놓게 되었는지 비하인드 스토리는 다음 기회에 풀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