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산재보험법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강문대 변호사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이라고 함)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산재 청구를 하여 승인을 받는 데까지 너무 많은 장애와 난관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산재를 당한 노동자가 산재보험에 의한 급여를 지급받으려면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이라고 함)에 요양을 청구하여 업무와의 관련성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 입증이 완료되어 공단으로부터 업무상 재해로 승인을 받기 이전에는 공단으로부터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다. 업무상 재해로 승인을 받은 노동자도 요양 중 적절한 재활치료는 꿈도 꾸지 못하는 실정이고 그마저도 언제 요양이 종결될지 몰라 마음을 졸여야 하는 실정이다.
한편 보험기금을 관리하는 공단이 업무상 재해의 승인 여부를 결정하고 있어 산재노동자로서는 공단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으로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산재법을 다음과 같이 개정해야 한다. 이하는 단병호 의원(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민주노동당)이 2005년 8월에 제출한 산재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다.
첫째, 보험급여의 종류에 재활급여를 새로이 추가하여 업무상 재해를 당하여 요양 중이거나 요양 종료 후 재활이 필요한 근로자에게 재활급여를 지급하여야 한다(개정안 제38조제1항제3호의3 신설 및 제42조의4 신설). 재활급여의 신설은 산재노동자의 원활한 사회복귀를 도울 뿐만 아니라 요양 종결을 둘러싼 논란을 상당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요양기관을 법정화하여 의료기관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산재노동자의 치료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안 제40조제1항 및 제40조의3 신설). 현재 서울대병원, 세브란스 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강남성모병원 등 우리나라 유수의 대병원들이 모두 산재지정의료기관에서 제외되어 있어 산재노동자들은 이 병원들을 이용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셋째, 요양기관에서 근로자를 진료한 의사 등으로 하여금 산업재해분류기준표에 따라 근로자의 상병이 업무상 재해인지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여 산재 미인식 노동자 구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중소 영세 사업장에 소속된 노동자들 가운데는 자신이 당한 재해가 업무상 재해인 사실을 모르거나 그것을 아는 경우에도 그 절차를 잘 모르거나 사용자의 직간접적인 압력으로 공단에 요양신청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 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관이 업무상 재해인지 여부를 먼저 판단하여 요양 신청을 주도적으로 하도록 해야 한다.
넷째, 요양기관이 근로자의 상병을 업무상 재해로 판단한 경우에는 근로자에 대하여 우선적으로 요양급여(치료비 지급)를 실시해야 한다(안 제40조의5 신설)(이른 바 선치료 후평가 방안이다). 현재 산재로 승인이 될 가능성이 많은 경우에도 공단의 승인이 있기 전까지는 노동자가 직접 치료비 등을 부담해야 한다. 초기 치료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이로 인한 노동자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므로 먼저 치료비만이라도 우선적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다섯째, 업무상재해 여부의 판단을 공정하게 하기 위해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평가원을 설립해야 한다. 현재 공단은 보험기금을 관리하는 업무와 산재 승인 여부 결정 업무를 동시에 관장하고 있다. 그 결과 보험기금의 재정 상황이 산재 승인 여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이런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보험 기금의 운영주체와 보험급여의 지급 주체가 동일한 것이 바람직하지 않음은 명백하다. 이것은 마치 예산기획처로 하여금 복지 사업을 주관하게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에 공단과 독립된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평가원’을 설립하여 산재 승인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심사평가원이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현재 공단이 하듯이 ‘업무수행성’과 ‘업무기인성’이라는 규범적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신 의료기관이 산업재해분류기준표상의 점검 사항에 부합되게 판단하였는지 만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업무상 재해 인정 방식의 전환 및 평가 기관의 독립성 확보).
현행 산재법을 개정함에 있어 위와 같은 내용들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한 사회의 문명의 척도를 재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산재환자에 대한 그 사회의 처우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구성원 모두 어차피 한 개인의 노동에 빚을 지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사회가 일하다가 다쳐 노동력이 상실된 자를 적극적으로 돌보지 않는다는 것은 최소한의 의무도 이행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1960년대부터 산재법을 통해 산재환자를 돌보는 노력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그 수준이 미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이전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새로운 산재제도가 도입되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