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산재보험의 발전 방향

임상혁(녹색병원 의사,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재보험은 산업혁명 이후 나타난 공장 노동자의 업무상 사고와 질병이 증가하게 되고, 이로 인해 사업주와의 잦은 법률적 송사를 피하고자 태동되었다. 그 시기의 산재보험은 노동자에게는 법적인 절차를 피해 신속하게 보상을 받게 해주고, 사용자에게는 그 책임을 타사용자와 나누려는 목적을 가졌다. 즉 산재의 책임이 사용자측에 있는가 또는 노동자측에 있는가를 따지지 않고 일정한 법적 요건만 만족시킨다면 무과실책임의 원칙하에 산재보상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산재보험은 점차 사회보장적 성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즉 초기의 산재보험은 사용자배상 보험으로 적용대상은 임노동자에 국한되고, 보상의 범위는 업무상 재해에 한정되고, 보험료율은 각 사업장의 위험에 따른 차등보험료율을 기본으로 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의 산재보험은 적용대상이 농민, 자영업자 등을 포함하는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하며, 보상범위도 폭 넓게 확대되고, 보험료율은 위험요인이 아니라 사업장의 소득에 따라 보험료를 부과하는 사회보장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산재보험의 발전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산재보험의 위치를 조망하고, 향 후 산재보험의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산재보험 역시 사회보장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비록 더디지만 발전해왔다. 적용대상이 5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되었고, 업무상 재해와 질병의 인정범위가 확대되었으며, 급여의 보장성이 어느 정도 강화되었다. 또한 산재보험을 전담하는 근로복지공단이 만들어 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산재보험의 발전은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 산재보험의 보장성을 약화시키려는 자본의 요구와 정부 주무부서의 무능력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적용대상이 5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되었다고 하나 소규모 영세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산재보험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으며, 과거에 산재보험 적용을 받던 레미콘, 화물 운전자 들은 산재보험 적용에서 제외되었다. 업무상 재해와 질병의 인정기준 협소화로 인해 많은 환자가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어렵게 산재인정을 받았다 하더라도 단지 30%정도만이 자신이 다니던 직장에 복귀하고 있는 정도이다. 더더욱 큰 문제는 산재 노동자의 서비스 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이 낡은 관료주의로 산재노동자에게 군림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정부에서는 산재보험제도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하고 있다. 이른바 산재보험제도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이 논의는 아쉽게도 앞서 지적한 현재의 산재보험 문제를 개선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 그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산재보험의 존재 이유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의 안전망이라 한다면 적어도 다음의 내용은 충족되어야 한다,
먼저, 산재보험제도는 산재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당연한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산재보험은 적용대상이 한정되어 있으며, 협소한 인정기준과 승인과정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제약하고 있다. 산재보험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산재보험의 실질적인 적용 확대, 산재노동자의 기본적 권리가 보장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혁되어야 한다.
둘째, 산재보험은 포괄적인 건강보장을 달성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의 휴업 및 장해급여 등으로 제공되는 소득보장형 급여가 불충분하고 이후의 취업 등과 연계되지 못하여 생활보장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당연하게도 산재보험은 충분한 소득보장과 생활보장으로 산재노동자의 사회복귀가 가능한 방향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셋째, 산재보험의 개혁은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산재보험과 연동하여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되고, 환자가 건강한 노동자로 일할 수 있는 재활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노동자가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직장에 복귀하여 다시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의 즐거움을 맛보게 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산재보험제도 개혁이 올바른 방향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참여가 실제적으로 보장되고 구체화되는 개혁이어야 한다. 생색내기 식의 노동자 참여가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최소한 과반수의 의결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노동자의 참여가 보장될 수 있도록 제도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