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그들만의 한-미 FTA…국익 챙기기 서민은 없다?
농업협상-무역구제 연동으로 농민 희생양 될 판
섬유·자동차 등 대부분 재벌 목소리 대변 지적
송창석 기자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제3차 범국민 총궐기대회 참가자들이 5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민주노동당의 비정규직 철폐 결의대회에 참석해, 민주노동당원들과 함께 에프티에이 중단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정효 기자hyopd@hani.co.kr
미국 몬태나주 휴양도시 빅 스카이에서 열리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5차 협상은, 마라톤으로 비유하자면 종반 스퍼트 지점이다. 우리 정부가 전체 협상에서 어디에 집중하고 무엇을 양보하려는지 윤곽이 점차 뚜렷해져, 협정의 본질적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단계이다. 꼭 따내려거나 지키려는 분야를 보면 국내에서도 상대적 기득권층을 고려한 게 많다. 반면에 양보할 뜻이 있거나 비교적 소홀하게 다루는 분야는 서민, 취약계층과 직결된 게 많다. 이에 따라 정부가 한-미 에프티에이의 명분으로 ‘국익’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기득권층만의 잔치가 될 수 있다는 주장들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협상단의 농업분과장인 배종하 농림부 국제농업국장은 5일(현지 시각) “(반덤핑 관세 등) 무역구제가 중요하다”며 자기 분과와는 무관한 분야의 협상결과에 관심을 쏟았다. 그는 지난 9월 시애틀 3차 협상 때도 미국 기업인들이 초청한 행사에서 “미국이 무역구제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않으면 우리도 농업에서 움직일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의 악명높은 반덤핑 관세 등 무역보복 조처가 완화되면, 농업분야의 피해를 감수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섬유분과 협상의 대표를 차관보급으로 격상해 8일 워싱턴에서 별도로 벌이기로 한 것도 에프티에이의 성격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국내 특정산업의 이익을 위해선 별도 분과도 만들고 수석대표와 맞먹는 직급으로 대표를 내세울만큼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다. 우리 쪽 협상단은 미국에 자동차 관세철폐를 요구하면서, 미국 요구대로 배기량 기준 세제를 가격 기준으로 바꿀 여지가 있음을 내비쳤다. 자동차 관세의 철폐는 당연히 국내 자동차메이커의 요구이다. 배기량 기준 세제를 가격기준으로 바꾸는 것 또한 국내에서는 그동안 자동차업계가 요구해 온 바였다. 그러나 이는 ‘재정운용의 건전성과 환경오염 억제’라는 전체 국민의 이익과 상반되는 조처이다.
양국은 5차 협상에서 ‘외국법 자문시장을 에프티에이 발효 때까지 개방’하기로 합의했다. 마치 국내 법률서비스시장을 일부 개방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국내 로펌들이 편법으로 외국인 변호사를 채용하는 관행을 합법화하는 수준이며 이미 입법예고된 ‘외국법 자문사법’을 에프티에이식으로 표현한 것 뿐이다.
송기호 통상전문 변호사는 “한-미 에프티에이를 맺으려는 목적이 진정 서비스시장 개방에 따른 경쟁력 강화라면 대표적으로 법률시장을 전면 개방해야 한다”면서 “일본이나 중국은 외국인 변호사가 사무실을 설립해 영업할 수 있는데 한국만 여전히 막혀 있다”고 설명했다. 송 변호사는 “한국의 법률 소비자들도 자유롭게 외국법 변호사들의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데도 기득권층인 국내 대형로펌 등의 로비로 에프티에이 개방 대상에서 제외된다면 강한 자에게는 수용할 만하고 약한 자에게는 가혹한 에프티에이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쟁분과에서 한국 협상단은 국내 재벌의 입장과 한 목소리이다. 미국은 한국의 공정거래법에 동의명령제를 채택하고 ‘재벌’을 협정적용 대상에 별도로 명시할 것을 요구했다. 동의명령제란 기업이 법위반 행위를 시정하기로 공정위와 합의하면 사건이 종결되는 제도로, 그동안 국내 대기업도 줄곧 도입을 요구해 왔다. 우리 쪽 협상단은 동의명령제는 수용하지만 재벌 명시는 어렵다는 자세다.
이처럼 한-미 에프티에이 협상을 보면, 정부가 말하는 ‘국익’은 막연한 게 아니라 재벌 등 일부 구체적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담고 있다.
빅 스카이(미 몬태나주)/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