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06 19:12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세계에서 매일 6300명, 매년 234만명의 노동자가 산업현장에서 죽어간다. 인간 세상에 사고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이들이 너무나 어이없는 이유로 죽어가고 있다. 돈 몇 푼 더 벌자고 뻔히 알면서 사람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 문명세계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지난달 24일 방글라데시 사바르에 있는 ‘라나 플라자’ 건물이 무너졌다. 의류공장들과 상점들이 들어선 8층짜리 건물이 무너질 당시 약 2000명이 건물 안에 있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600명을 넘어서는 끔찍한 사고였다. 사고 전날 건물 벽에 금이 갔는데도 건물주는 대피는커녕 작업을 계속하라고 지시했다. 심지어 안전을 우려하여 출근하기를 꺼리는 일부 직원들에게 해고 위협까지 했단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빼다 박은 것 같다. 로이 라메시 찬드라 다카무역노조 위원장은 “이번 참극은 사고라기보다 이윤이라는 이름의 살인”이라고 했다. 사바르에서 무너져 내린 것은 건물만이 아니다. 탐욕에 눈이 먼 건물주, 노동탄압과 부패로 얼룩진 방글라데시 정부, 도덕 불감증에 빠진 다국적기업, 그리고 이들의 존재를 용인하는 모든 지구촌 인간들의 양심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 일주일 전에는 미국의 텍사스주에서 한 비료공장이 폭발해 14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다쳤다. 폭발의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마치 핵폭탄이 터진 듯이 공장 상공에 버섯구름이 발생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테러를 의심했으나 위험물질 관리 소홀로 인한 안전사고로 밝혀졌다. 세계 최대의 부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기에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회사의 안전관리는 엉망이었고, 당국의 감독은 허술하였다.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작업장 규제를 담당하는 정부기관인 직업안전위생관리국(OSHA)이 마지막으로 해당 공장의 안전검사를 한 것이 1985년이었다. 그간 크고 작은 사고와 민원이 빈발했는데도 무려 28년 동안 직업안전위생관리국의 검사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기업이 마음대로 돈을 벌게 해주어야 경제가 성장한다며 규제완화를 밀어붙이고, 정부는 해결책이 아니라 문젯거리라고 주장하며 직업안전위생관리국 등 각종 정부기관의 권한과 인원을 축소한 레이건 정부 탓이다. 텍사스에서 폭발한 것은 비료공장만이 아니다. 시장만능주의·성장지상주의·물신주의의 우상이 폭발한 것이다.

사고공화국 한국도 다르지 않다. 사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터키·멕시코와 더불어 산재사망률 1위를 다투는 나라다. 지난 3월14일에만 해도 전남 여수산단 대림산업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나 6명이 숨지고 1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이 ‘2012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한 한라건설의 경우 항만청의 피항 권유까지 무시하는 하청회사의 안전불감증 때문에 지난해 12월 울산신항 북방파제 앞 해상에서 12명의 사망 사고를 일으켰으며, 2년 연속 ‘특별상’을 받은 삼성전자는 지난 1월 불산 유출 사고에 이어 지난 2일 또다시 유사한 사고를 냈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화학사고를 근절할 생각보다는 현재와 같은 솜방망이 처벌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으로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 반대 로비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국회 법사위는 대표적 경제민주화 법안 중 하나로 꼽혀온 이 개정안 통과를 보류했다. 삼성전자에서 누출된 것은 불산만이 아니다. 경제민주화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누출된 것이다.

경제민주화의 출발은 이윤보다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방글라데시에서도,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이윤이라는 이름의 살인”이 더는 없어야 한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기사원문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861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