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시중유통 의혹, ‘불감증’ 정부
수사의지 없는 검찰, 책임은 누가 지나

이재진 기자

지난 20일 열린우리당 김선미(경기 안성) 의원이 폭로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유통’ 실태와 국민일보(12월 5일자)의 ‘인간광우병 의심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는 전국을 휩쓰는 광우병 우려 여론에 비해 ‘불감증’이다 싶을정도로 큰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김선미 의원에 따르면, 정부는 2003년 12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쇠고기의 잠정검역중단 조치와 광우병위험물질(SRM)의 판매중단 조치를 취했으나, 이후 최근까지 국내에 반입, 시중에 유통된 광우병위험물질(SRM)이나 그에 준하는 물질로 분류되는 미국산 쇠고기가 1만 8천t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유통했는지, 유통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지, 수사진행여부와 투명성은 확보했는지에 대해 따져봐야 할 문제임에도 관세청과 농림부는 “수입중단조치가 내려지기 이전에 수입되어 검역이 끝난 고기의 유통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2003년 12월 24일 잠정중단조치 이전에 검역된 미국산 쇠고기 역시 당연히 광우병 위험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존하는 위험에 눈을 감아버린 당국의 관료적인 태도가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김선미 의원실의 김승민 비서관은 “농림부에 계속 자료요청을 하고 있지만, 좀처럼 자료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며 농림부의 태도에 불만을 나타냈다.

검찰조사의 필요성을 제기하자 김 비서관은 “검찰에 수사 요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농림부의 해명대로 법적인 문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검찰수사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 증거확보가 중요하다. 그것을 바탕으로 검찰수사를 요청할 수도 있지만, 아직은 부족한게 사실이다”며 보도자료를 통한 정황증거만으로는 법적 대응 검토가 어렵다고 말했다.

과연 김 비서관의 말대로 이 사안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유통, 어떻게 가능했나

이 문제를 대하는 관세청과 농림부의 태도를 보면, 진짜 문제는 ‘허술한 관리’가 아니라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의 관료주의적인 태도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은 미국의 광우병 발발 이후 국내여론을 의식해 바로 잠정중단 조치를 내리긴 했지만, 그 이전에 검역을 받은 쇠고기는 공개적으로 유통을 시켰다.

김선미 의원이 이 사실을 공개하기 전에는 농림부 등은 절대로 미국산 쇠고기 유통 사실을 먼저 밝히지 않았을 것이다.

김 의원에 따르면 수입업체 D사, H사, O사, C사는 24일 잠정검역중단 조치가 내려지자 26일, 30일, 2004년 1월 등 빠른 시일 안에 그야말로 ‘쨉싸게’ 고기들을 유통시켰다.

이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는 없었지만, ‘실제로’ 문제가 있음을 알고도 유통을 시켜준 책임자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농림부와 수입업체 간에 이루어진 암묵적 거래가 성사되고, 국민은 졸지에 이들의 실험용 모르모토가 된 셈이다.

이중에서도 특히 광우병위험물질(SRM)으로 분류되는 소머리, 눈, 창자, 소갈비 부위는 검역완료를 했더라도 절대 국내에 반입되지 못하도록 돼 있으나, 2004년 이후부터 2006년 현재까지 국내에 반입된 양이 1만 8천톤에 달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에 대한 농림부의 답변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검역을 마친 3만 8천톤 중 152톤에 대해서 관리결과를 보고했다고 답변한 것이 고작이다.

또한 2003년 이전 전산시스템화가 되기 전에 ‘수기’로 표기된 쇠고기 수입 관리실태는 오류의 가능성이 크다. 실제 수입 국가를 잘못 파악한 것으로 무려 50건이 발견되었다는 통계자료는 미국산 쇠고기가 다른 나라의 것으로 표기돼 시중에 유통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관련 공무원들과 유통업체들간의 ‘뒷거래’는 혹시 없었을까? 이 문제는 검찰수사에서 밝혀져야 할 부분이지만, 검찰은 공무원과 유통업체와의 거래 가능성 자체를 미리부터 배제한 것으로 보인다.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이빈파 대표는 “검찰은 무엇보다 국민의 건강을 생각해서 어느 누구를 처벌하자는 식의 수사가 아니라 사실관계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적 수사를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며 이런 의혹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성토했다.

이번 관련 업체들은 실제 학교급식을 납품하는 업체로 알려져 있어 ‘아이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지적이다.

이 대표는 “이 문제가 지난 20일에 나왔는데, 언론에서도 조용하고 공식화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다. 어쩌면 은폐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황만 가지고도 충분한 수사대상인데도 불구하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는 노력이 전혀없다”며 언론의 무관심과 국민여론의 불감증에 불만을 드러냈다.

다른 유통 경로는 없나?

한편 최근 수입이 금지된 미국산 쇠고기가 이미 미군 부대 내에서는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또 한번 충격을 주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정부당국은 이같은 미국산 쇠고기의 국내 유통 사실을 ‘새까맣게’ 모르고 있다는 것.

미군 부대 내 골프장의 식당은 스테이크를 먹으려는 한국인 손님으로 가득하다고 한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미군부대의 한국인 영내 출입은 미군관할이며, 미군이 이를 묵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용 식육이 면세품 취급 업자가 아닌 일반 내국인에게 판매, 유통되는 것은 관세법과 한미주둔군지위협정 위반이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미국산 쇠고기가 단지 미군 부대내 판매로만 끝나지 않고 국내 유통망으로 흘러들었을 가능성이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실의 이미자 보좌관은 PX에서 파는 쇠고기 제품이 국내로 유통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제보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 군부대 제품이 시중으로 유통되는 사례가 많고, 미 군무원이 PX 제품을 시중에 유통시켜 입건되는 사례도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실제로 수입되기도 전에, 이미 한국은 광우병 위험성에 ‘있는대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2006년12월13일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