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쏙] 중대재해 사건 솜방망이 처벌

1년간 처벌 현황 분석

최근 산업 현장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피해는 하청 노동자와 비정규직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사고가 끊이지 않는 연원을 추적해 올라가면 검찰의 솜방망이 처벌이 그 배경임을 알 수 있다. 검찰은 왜 대기업과 사업주들에게 관대한 것일까?

삼성전자, 엘지(LG)화학, 현대제철, 지에스(GS)건설, 대림산업, 한라건설.

최근 1년간 중대 재해 사고를 일으킨 대기업들이다. 이들 대기업의 작업장에서 1년간 모두 36명의 노동자가 애먼 목숨을 잃고, 50여명이 크고 작게 다쳤다. 엘지화학의 8명을 제외하면 모두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희생됐다. 원청인 대기업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법인은 물론 대표이사부터 공장장과 현장소장까지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적용돼 처벌받은 경우는 사실상 없다.

한라건설의 해상 콘크리트 작업선이 지난해 12월14일 울산 앞바다에서 침몰해 노동자가 12명이나 숨지는 대형 사고가 벌어졌다. 검찰은 한라건설 법인과 현장소장의 산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고용노동부가 한라건설 법인과 현장소장을 산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자고 의견을 냈지만 검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검찰은 현장소장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지었다. 12명의 산재 사망자가 나왔는데도, 현장 실무관리자만 제한적으로 처벌하는 데 그친 것이다.

산업재해 사건을 처리하면서 검찰은 산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불기소하고, 주로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한다. 산안법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적용의 가장 큰 차이는 기업에 대한 후속 제재 여부다. 형법의 과실치사상은 개인 처벌에 그치지만, 산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으면 기업에 영업정지 처분이나 각종 입찰 참여 제한이 뒤따르기 때문에 기업으로선 이를 피하고 싶어한다. 검찰이 중대 재해의 실제 책임자인 원청업체에 대해 줄줄이 ‘솜방망이’만 휘두를 뿐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처벌이 미미하므로 중대 재해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4일 가 지난 1년 동안 발생한 중대 재해 사건의 대기업 처벌 현황을 분석해 보니, 원청 법인과 임원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산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넘긴 7건(지에스건설·엘지화학·한라건설) 가운데 검찰이 실제 산안법 위반으로 기소한 것은 1건뿐이었다. 검찰은 7건 중에서 3명의 현장소장·공장장 등만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고, 나머지는 모두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를 들어 불기소 처분했다.

삼성전자·GS건설·현대제철 등
고용부서 산업안전법 위반으로
기소의견 낸 7건 중 6건 불기소

원청 사업주 입건에도 소극적
검찰이 안전부실 조장하는 격

원청 책임 묻는 산안법 ‘유명무실’
“법 강화해 처벌해야 산재 줄어”

지난해 8월13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신관 공사장 지하 3층에서 불이 나 작업하던 노동자 4명이 숨지는 사고가 났을 때, 고용노동부는 원청업체인 지에스건설과 현장소장 등을 산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자는 의견을 검찰에 냈다. 그러나 지난 4월15일 검찰은 지에스건설 법인은 불기소 처분하고, 이 회사 현장소장만 산안법이 아닌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대부분의 공사를 하청업체가 도맡기 때문에 원청업체에 책임을 묻기 힘들다는 이유로 하청업체 소속 현장소장 2명만 산안법 위반 혐의로 각각 벌금 100만원, 3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7건 가운데 산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유일한 1건은 엘지화학이다. 지난해 8월 엘지화학 청주공장 폭발사고로 노동자 8명이 숨졌다. 고용노동부는 엘지화학과 임원(상무)·공장장(상무)을 산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해달라고 검찰에 넘겼고, 검찰은 법인만 산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고 임원들은 불기소 처분했다. 그나마 엘지화학 법인을 산안법 위반으로 기소한 건 사망자들이 엘지화학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 중에서 산안법 위반 혐의로 원청 법인과 임원이 기소된 적은 단 한번도 없는 셈이다.

이런 검찰의 법 적용 관행에 비춰, 현재 수사중인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불산누출사고, 대림산업 여수산단 폭발사고,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가스누출사고에서도 원청업체에 산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원청 사업주의 경우 검찰은 입건조차 꺼린다. 지난 1월28일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불산누출사고로 하청업체 노동자 1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을 입었을 때, 고용노동부는 전동수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사장과 삼성전자 법인을 산안법 위반 혐의로 형사입건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 보고를 올렸다. 하지만 검찰은 최근 전 사장을 ‘불입건’하도록 고용부에 지휘 통보했다. 대신 검찰은 고용노동부에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인트라기술센터장과 환경안전팀장 등 중간관리자를 입건하도록 수사지휘했다.

지난 3월 일어난 대림산업 여수산단 폭발사고에 대해서도 고용노동부는 대림산업 대표를 입건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수사지휘를 요청했지만 검찰은 보완수사 지휘를 내리는 등 원청 대표 입건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검찰이 대기업인 원청업체에 산안법 적용을 삼가는 까닭은 뭘까. 검찰은 하청업체 노동자의 사망 책임을 실질적 고용관계가 없는 원청회사 등 사업주에게 묻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원청 사업주가 각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산재 사고의 모든 관리감독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원청과 하청의 업무 분장이나 감독 체계 등을 따져서 판단해야 한다. 산안법 적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원청 쪽을 처벌하려면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산안법으로도 원청 사업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강문대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원청의 안전 의무를 규정해 놓은 산안법 29조를 통해 원청 사업주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데도 검찰은 불기소 처분으로만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도 “사건을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는 것은 산안법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원청 소속 노동자의 사망사건에 대해선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산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리기도 한다. 검찰은 노동·시민단체인 ‘노동건강연대’가 지난해 말 청주공장 폭발사고와 관련해 엘지화학 대표이사를 산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데 대해 지난 2월 불기소 처분을 내리면서 “(엘지화학 대표이사가) 위험이 있는 작업을 지시하거나 방치했다고 보기 어렵다. 혐의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검찰의 이런 태도는 ‘대기업 봐주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산재사망감시팀장은 “산재 사건은 고용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의 문제인데도 검찰은 산재 사건을 공안부에서 처리하는 등 노동관계로만 접근한다. 검찰이 실질적인 관리감독을 하는 원청업체에 대해 눈을 감는 것은 ‘대기업 봐주기’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산업현장의 안전관리 부실을 해결하려면 원청의 책임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산안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두용 한성대 교수(기계시스템공학)는 “우리나라는 권한은 원청이 갖고 있는데 책임은 하청이 지는 기형적 구조다. 권한이 있는 쪽에 책임을 묻지 않으면 산재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안전 책임을 원청 대표 등 최고책임자가 지도록 산안법을 개정하면 사업주 스스로 적극적으로 산재를 예방하게 되고 검찰의 솜방망이 처벌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기업살인법’(기업과실치사법) 같은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산재 사고가 무리하게 비용은 줄이고 이익을 늘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에 견줘 산안법 위반 처벌규정은 터무니없이 가볍다는 이유에서다. 현행 산안법은 하청 노동자 사망 때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 원청 소속 노동자 사망 때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강문대 변호사는 “애초 산안법은 사고 예방을 목적으로 만들어져 처벌 형량을 대폭 늘리는 데 한계가 있어서 사업주에 대한 가중처벌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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