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노동자 건강 책임질 큰 정부가 필요하다

– 한국 노동안전보건 행정의 문제와 개혁방안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한국의 노동자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고 있는 데에는 정부가 기여한 바도 크다.

기업은 노동자 생명과 건강에 대한 투자를 비용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어느 나라든 적절한 정부의 지도감독이 없으면 기업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적절한 노동안전보건 정책을 수립하는 것과 더불어 효과적인 근로감독을 수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노동안전보건 행정 인프라는 매우 취약하여 이러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1. 한국의 노동안전보건 행정 체계

1981년 4월까지 노동청으로 있던 노동관계부서가 1981년 4월 노동부로 독립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이 1981년 12월 제정되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정 당시 산업안전보건 행정을 책임지는 조직은 노동부 근로기준국 산업안전과로 이 체제는 1989년 1월까지 지속되었다.

이후 산업안전보건 행정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1989년 2월부터 과에서 담당하는 업무가 국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 2월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산업안전보건 행정은 노동부내 1개 국이 총괄하고 있다. 명칭은 초기에는 산업안전국이었다가 2005년 9월부터 산업안전보건국으로 개칭되었고, 2008년 2월부터는 산재보상 업무까지 포괄하게 되었다.

2010년부터는 부서 명칭이 고용노동부로 개칭되고 정책관 체계가 신설됨에 따라 산업안전보건정책관으로 개칭되어 오다가 2011년 3월부터 산재예방보상정책관으로 다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산업안전보건 행정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1987년 12월 9일 한국산업안전공단법이 제정되어 그에 따라 한국산업안전공단이 설립되었고, 2009년 1월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 개칭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노동안전보건 행정은 다른 노동 일반 행정과 통합되어 있는 체계이고, 중앙부처가 통합관리하고 중앙부처의 지방노동청이 관련 행정 및 사무를 집행하는 체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인력이 행정적, 기술적 지원을 하는 체계다.

2. 한국 노동안전보건 행정의 문제점

노동안전보건을 위해서는 행정 기관의 사업장 지도, 감독의 역할의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의 사업장 지도?감독 인력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부족한 형편이다. 한국의 산업안전감독관 1인당 담당 노동자수는 34,178명으로 영국의 5.1배, 독일의 3.9배, 미국의 1.8배 수준이다1). 그리고 산업안전감독관 1인당 담당 사업장수는 3,780개소로 영국의 8.3배, 독일의 6.1배, 미국의 3.6배 수준이다.

한국은 한국산업안전공단이 행정기관인 노동부의 위탁과 위임을 받아 사업장 기술지도, 감독의 기술적 지원 등 실질적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장의 감독인력을 계산할 때 고려해야할 특수성이 있다. 하지만 안전보건공단의 기술 지원은 실제적으로 사업장에 근로감독 효과를 낸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업장에 개선 권고를 할 수 있을 뿐, 행정 명령이나 사법 처리권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사업장에 대한 방문점검이 미미한 것도 문제이다. 2006년 점검(감독) 실시 사업장수는 55,023개소로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사업장 1,292,696개소의 4.3%에 불과한 형편이다. 이와 같은 빈도로는 전체 사업장을 다 점검 감독하기 위해서는 23년이 걸린다. 특히 소규모 사업장, 보건 분야 취약사업장 등은 지도?점검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아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2).

3. 노동안전보건청 신설

한국 노동안전보건 행정 인프라의 취약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획기적으로 이를 늘릴 방안이 필요하다. 현재와 같이 적은 수의 근로감독 인력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업장 안전보건 문제를 감당하기 힘들다. 노동안전보건 행정 개편은 어떤 방안이 실제적으로 인력 및 예산 확충을 수월하게 할 것인가의 관점에서 접근하여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의 고용노동부와 지방 고용노동청 체계에서 산업안전보건 담당 근로감독관 수와 예산을 늘리기는 한계가 있다. 기존 조직의 관성이 있기 때문에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힘든 까닭이다.

우리는 노동안전보건청 신설을 주장한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안전보건 기능만을 담당하는 독자적 행정 조직을 신설하자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노동 담당 중앙 부처의 기능은 다음 다섯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직업안전보건(복지까지 포함), 둘째, 일반적 노동 조건(임금 이슈도 포함), 셋째, 노사 관계 업무(협상에 참여하는 업무도 포함), 넷째, 고용 관계 업무(직업 훈련 포함), 다섯째, 사회보험 등 사회안전망 관련 업무 등이다.

이러한 기능적 접근에 따르면, 대부분의 국가의 근로감독 업무는 하나 혹은 두 개의 기능을 하거나, 다양한 기능을 하는 체계로 구분된다. 미국의 OSHA와 영국의 HSE는 하나의 기능(노동안전보건)만을 수행하는 체계이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두 개의 기능을 수행하는 체계이다. 직업안전보건과 노사관계 업무 두 가지를 책임진다. 불가리아, 독일, 일본, 네덜란드와 대부분의 북유럽 국가들이 이 패턴에 속한다. 하지만 직업안전보건 영역은 모두 포함하지만 일반적인 노동조건 영역 중 포괄하는 범위가 국가마다 조금씩 다르다.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나라는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스위스 등이다.

우리가 주장하는 노동안전보건청은 위의 다섯 가지 전통적 노동 관련 업무 중 노동안전보건 업무와 사회안전망 관련 업무를 통합하여 기존의 고용노동부 및 지방 고용노동청 관련 인력과 안전보건공단, 근로복지공단 인력에 더해 추가적으로 새로운 인력을 확충하여 설립하는 새로운 행정 기구다. 노동안전보건 기능과 사회안전망 기능을 통합하려는 이유는 호주의 일부 주와 뉴질랜드처럼 이와 같이 하였을 때 강력한 예방 주도의 기관이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4. 근로감독 인력 늘리고 전문성 강화

안전보건에 관한 정부의 감시 및 감독 기능은 지방 노동청에서 근무하는 산업안전보건 담당 감독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현재 산업안전보건 담당 감독관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사업장 지도, 감독의 효과가 충분히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지도감독이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에 대한 조사와 처벌에 집중되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예방적 지도와 감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감독관의 부족과 더불어 조직체계의 독립성과 운영의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안전보건청의 독립적 구성과 함께 감독 인력의 대폭적인 확대 및 질 강화를 통하여 정부의 감시 및 감독 기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적은 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한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다음과 같은 방식들이 고민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산재보험 이용 자료와 근로감독을 연계시키는 방식을 줄여가야 한다.

다른 나라의 경우 산재보험 데이터를 활용하여 근로감독 사업장을 선정하는 예는 드물다. 근로감독을 받지 않기 위해 산재보험을 이용하지 않으려는 동기가 생기게 되고, 이는 노동자와 사업주 모두에게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선진외국은 재해율에 기반하여 근로감독을 하더라도 산재보험 자료외의 자료에 의한 재해율에 근거하여 근로감독 사업장을 선정하고 있고, 재해율보다는 위험요인의 유무 혹은 많고 적음을 알 수 있는 자료에 기반하여 근로감독 사업장을 선정하는 경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둘째, 위험요인 유무 및 많고적음을 알 수 있는 자료를 활용한 근로감독이 많아져야 한다. 산재가 발생한 사업장을 방문하여 근로감독을 하는 것은 사후적인 처벌의 성격이 강하다.   산업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 향후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도 감독하는 의미가 있지만, 아무래도 이러한 방식의 근로감독은 예방적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

결과에 근거해 사후처방 형식으로 진행되는 근로감독보다는 위험요인에 근거해 사전예방적으로 진행되는 근로감독을 늘려갈 필요가 있다. 화학물질 취급관리 자료, 위험기계 도입 및 취급관리 자료, 기타 산업보건 위험 평가 자료 등을 적극적으로 연계하여 근로감독 대상 사업장을 선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근로감독의 우선순위를 정해 특정 기간 동안 그것에 집중하여 근로감독을 행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현행 근로감독은 산업안전보건법 전체의 이행 여부를 모두 감독하는 방식이어서 효과를 거두기 힘든 구조로 되어 있다. 이를 모두 감독한다면, 사업주 입장에서는 차라리 포기해버리는 게 더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감독의 우선순위를 정해 해당 기간 동안에는 특정 법률의 조항 및 기준 이행 여부만 집중적으로 감독한다면, 이에 대한 법률 및 기준 준수율이 높아질 수 있다. 이 경우 법기준 준수가 직접적으로 재해율과 관련 있다고 알려진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 진행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넷째, 사업장에 사전통보 없이 진행하는 근로감독을 늘려나갈 필요가 있다. 물론 산업안전보건법 전 영역에 대한 근로감독은 이러한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사업주의 반발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로감독은 위에서 언급한 우선순위가 있는 특정 영역에 대한 근로감독으로 한정하여 우선 시행할 필요가 있다. 해당 영역에 대해 특정 법 조항 및 기준 이행 여부만 감독하겠다는 의지 천명 및 홍보를 한 후, 실제로 사업장 감독은 불시에 무작위로 사업장을 선정하여 해당 법 조항 및 기준 이행 여부만 감독한다면 이에 대한 사업주의 순응도와 더불어 근로감독의 효과도 높일 수 있다.


1) 2007년도 노동부 내부 자료를 참조함.


2) 2007년도 노동부 내부 자료를 참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