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산재사망에 대한 법원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함


유 성 규 / 노동건강연대 편집위원장 


반복되는 솜방망이 처벌


지난 9월, 두 명의 노동자가 작업 도중에 용광로 쇳물을 뒤집어쓰고 사망했다. 한명은 백일짜리 딸의 아빠였고, 다른 한명은 노부모의 외아들이었다. 순식간에 쏟아져 내린 용광로는 그들의 뼈와 살을 녹였고, 유가족은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할 수 없었다. 그들이 일하던 공장은 2007년 이후 매년 산업재해가 발생하던 사업장이었다. 노동부도 산재 다발 사업장으로 선정하여 재해예방 추진계획을 수립하도록 한 곳이었다. 결국, 참사는 우연의 일치가 아닌, 회사의 관리 소홀과 부주의가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론은 들끓었다. 노동부와 검찰은 이례적으로 회사 안전보건관리책임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다. 산재사망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던 과거 노동부와 검찰의 태도에 비추어볼 때 의미 있는 변화였다. 그러나 문제는 법원이었다. 법원은 도주 및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간단히 기각해 버렸다. 물론, 피의자의 인권이나 방어권 보장의 측면에서,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는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거 법원이 산재사망을 대하였던 소극적 태도들을 돌이켜볼 때, 이번 기각 결정이 과연 인권이나 방어권 보장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는지 실로 의문이다. 

그렇다. 무수히 많은 산재사망 사건에 있어서, 법원은 노동부나 검찰보다 더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너무도 관대한 법원 덕택에, 산재사망을 야기한 무수히 많은 사업주들이 벌금 몇 푼만 내면 모든 형사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노동자가 불에 타죽고, 떨어져 죽고, 팔 다리가 잘려 나가도, 정작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사업주들은 당당한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다. 몇 만원짜리 상품권을 훔치거나 맨홀 뚜껑을 훔친 생계형 범죄자들에 대해 그토록 엄격했던 법원의 모습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산재사망에 대한 법원의 소극적 태도는 2011년 산재사망 사건 1심 판결에서 쉽게 확인된다. 법원은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에 있어서 대부분 미약한 벌금형을 선고하였다. 심지어 노동자 3명이 한꺼번에 사망한 사건에 있어서도 벌금형을 선고하였다. (아래 표 참조) 산업안전보건법의 중요한 기능은 산재를 야기한 사용자에 대한 처벌을 통하여 그 재발을 방지하고 다른 사용자들에게 자발적인 예방 조치를 강구하도록 촉구하는데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솜방망이 판결은 산업안전보건법이 최소한의 기능조차 다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사건번호

피해규모

판결결과

광주지법 나주지원

2011고정248

건설현장 

1명 사망

하청 대표자 벌금 150만

원청 건축부장 벌금 250만

창원지법

2011노756

1명사망

하청 현장소장 벌금 300만

하청회사 벌금 300만

원청 현장소장 무죄

원청회사 무죄

울산지법

2011고단2571

1명사망

하청 사업주 벌금 300만

원청 사업주 벌금 300만

인천지법

2011고단2202

1명사망

하청사업주, 원청 현장소장, 원청회사 각 벌금 1000만

인천지법

2011고정578

1명사망

하청 현장소장, 하청회사, 원청 현장소장 각 벌금 300만

수원지법 

2011노4417

중대재해

하청 사업주 벌금 500만

하청회사 벌금 700만

창원지법 통영지원

2011고단391

3명 사망, 1명부상

원청 대표  벌금 700만

원청 벌금 500만

원청 공무부장  벌금300만

원청 안전관리팀장  벌금300만

하청 대표  벌금700만

하청 벌금500만

2011년 주요 사망사건 1심 판결 현황

출처: 정해명,  간접고용?하청구조에서 사망사고에 대한 법적 처벌결과 고찰, 노동건강연대 정책토론회, 2011


이 같은 법원의 소극적 태도는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2008년 – 2011년 대법원에서 판결된 주요 산재사망 사건의 형량을 살펴보면,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에 있어서 대부분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심지어, 원심에서 어렵게 유죄 판결이 내려진 사업주들에 대해서, 대법원이 이를 뒤집고 무죄 판결을 내린 경우도 있었다. (아래 표 참조)

 

사건번호

피해 규모

대법원 판결 결과

무죄취지 파기환송 사례

대법원 2009도12515

 

1명 사망

하청 대표자 벌금200만

원청 OO건설 무죄취지 파기환송

OO건설 현장소장 무죄취지

파기환송

수급인 OOOO 직접 무죄판결

대법원 2009도13252

1명 사망

OO건설 무죄

OO건설 현장소장 벌금300만

컨소시엄 현장소장 벌금200만

 

대법원

2008도101

1명 사망

원청 및 원청 현장소장 무죄

하청 현장책임자 벌금 300만

 

대법원 

2008도7834

1명 사망

원청 현장소장 벌금 200만

원청 법인 무죄 취지 파기 환송

하청 법인 무죄 취지 파기 환송

대법원 

2008도5707

1명 사망

회사 대표 무죄

운전기사 징역1년 집행유예 2년

 

2009-2011년 주요 대법원 판결

출처: 전형배, 산업안전보건법 형사처벌제도의 실효성,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워크샵, 2012


왜 법원은 산재사망에 대해 경미한 처벌을 반복하는 것일까?


첫째, 산업안전보건법을 대하는 법원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 법원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을 산재사망을 야기한 사업주를 강력하게 처벌하기 위한 법규범이 아닌, 사업주 계도를 위한 법규범으로만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산재사망에 대한 법원 판결문을 통해서 쉽게 확인된다. 판결문 어디에서도 산재사망을 야기한 사업주들에 대한 엄중한 응징의 메시지를 읽을 수 없다. 마치 교통 법규를 위반한 운전자에 대해 범칙금을 부과하는 느낌을 받을 뿐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현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각종 규제 완화의 물결 속에서 이 같은 경향이 더 노골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법원과 검찰이 산재사망 사건에서 형사상 ‘행위자 책임의 원칙’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행위자 책임의 원칙’에 입각하면, 산재사망을 야기한 사업체의 대표나 고위 임원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묻기는 매우 어려워진다.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에서, 사업체의 대표나 고위 임원이 산재가 유발된 작업 과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였을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래 내용은 산재사고에 대한 사업주 책임과 관련하여 대법원 판결문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되는 문구이다. 판결문의 논리에 따르면, 사업주가 처벌되기 위해서는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작업을 하도록 직접 지시하였거나, 이를 알면서도 방치하였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조건 하에서 사업주가 처벌될 가능성은 몇 퍼센트나 될까?

  

사업주에 대한 구 법 제66조의2, 제23조제3항 위반죄는 사업주가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구 법 제23조제3항에 규정된 안전상의 위험성이 있는 작업을 규칙이 정하고 있는 바에 따른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하도록 지시하거나, 그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위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방치하는 등 그 위반행위가 사업주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성립하는 것이지, 단지 사업주의 사업장에서 위와 같은 위험성이 있는 작업이 필요한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이루어졌다는 사실만으로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대법원 2007.3.29. 선고 2006도8874판결, 대법원 2008.8.11. 선고 2007도7987 판결, 대법원 2011.09.29. 선고 2009도12515 등 참조)


셋째, 도급 사업주 책임에 대한 입법 미비의 문제점이다. 반복되는 산재사망 사고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들이 있다. 도급 사업에 있어서, 도급인, 발주자, 원청 등 실질적 권한을 지닌 도급 업체의 대표자들은 처벌을 피해 간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도급인은 하도급 업체 소속 노동자들에 대해서 산업안전보건법 제23조 및 제24조에서 정한 사업주의 의무를 지는 주체가 아니다. 따라서 산재사망이 발생하더라도, 도급인에게 산업안전보건법상 제23조(안전조치) 및 제24조(보건조치) 위반 책임을 묻기가 어렵고, 협의, 지도, 지원 등 도급인의 의무 이행 여부에 대한 책임만을 물을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산재사망 사건에 대한 총 6건의 대법원 판례를 분석한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도급업체 대표자가 형사 처벌된 경우는 없었다.1) 

넷째, 노동부와 검찰의 능력상 한계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수사권을 지닌 노동부와 기소권을 지닌 검찰 모두 산재사망에 대한 전문적인 수사 기능을 갖고 있지 않다. 이에, 노동부와 검찰은 그 동안 경찰이나 소방 당국의 조사 결과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산재사망이 발생한 사업장의 구조적 문제점 내지 업무 시스템 상 문제점 등을 제대로 밝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