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전수경
사람을 만날 일이 많다. 취재, 연대 요청, 의견 개진 등. 전화로 끝날 때도 있지만 얼굴을 맞대고 만날 일도 생기고, 여러 차례 만나게 되기도 하며, 한번 시작한 만남이 몇 년씩 이어지기도 한다. 만남이 거듭될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누군가를 진정성 있게 만난다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알게 된다. 이 글은 그 만남의 진정성을 돌아보게 하는, 10여 년간 지속된 어떤 만남에 대한 글이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산재를 입은 노동자들은 자신들만의 단체를 만들었다. 그 사무실에 처음 가본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다. 구로동의 허름한 상가 건물 깊숙한 지하에 동굴처럼 자리 잡은 곳. 그곳에서 산재 노동자들을 처음 만났다.
산재 입은 노동자들은 일하던 기업의 규모에 따라, 산재 보상 여부에 따라 산재 이후 삶의 질이 확연히 달라진다. 기업의 규모가 중요한 이유는 영세한 기업에서 일하던 노동자일수록 산재 치료 후에 받는 급여도 낮고 부가적인 보상도 없으며, 원직장 복귀나 재취업의 기회도 적어 빈곤해질 위험이 높은 데 있다. 또한, 현행 산재보험 제도가 지나치게 친기업적으로 운영돼 치료와 요양의 폭이 좁기 때문에 다수의 노동자가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일자리가 필요했던 산재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기관지, 노보를 발송해주는 우편 발송 대행일을 시작했다. 분위기는 왁자했고, 좁은 부엌에서 같이 해 먹는 밥은 꿀맛이었다. 몇 년 후 우편 발송 일이 꾸준히 늘어 2000년대 중반에 ‘자활공동체’를 세웠고, 이후 제도적 지위를 확보한 후에는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의 지원금을 받는 일자리 사업이 되었다. 제도화가 된 이후 단체 회원의 일부는 자활공동체 직원이 되었고, 일부는 산재 당사자 단체로서 일상적으로 진행하던 산재 상담, 병원 방문 상담 활동을 다녔다.
올해 초,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공간에서 우편 발송 작업을 같이 하신 분들이 모여 이른바 의사소통 교육을 진행했다. ‘나는 누구인가’, 인생 곡선을 그려 설명하는 첫 시간, 10여 명이 순서대로 앞에 앉아 ‘내가 살아온’ 인생을 설명하던 그 시간, 쿵 하고 가슴과 머리에 바윗돌이 내려앉았다. 성장기에 대부분 가정폭력을 겪었고,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 아닌 분이 거의 없었다. 너무 가난하게 살았고, 가족의 사랑 같은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채로 자랐다. 아주 어릴 때부터 청소년, 성인이 되어서까지 가족의 존재, 사랑의 흔적은 희미하고, 서늘하기만 했다.
두 번의 사고로 양손을 한 번씩 프레스에 눌린 한OO 씨. 열 손가락 중 왼손 엄지 하나만 남아 있다. “두 번째 사고를 당하고 병원에 실려 갔어요. 의사에게 손을 살려달라고 매달렸어요. 왜 다쳐서 와서 이러느냐고, 의사가 한 말이, 그 말이 맘이 아파요.” 15년도 더 지난 일인데 아직도 살아 펄펄, 날 서 있는 말은 가슴에 남아 있다. 공장에 취업하고, 사고를 당하고 장애를 입었다. 다시 삶이 시작되었을 때,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우유를 배달하고, 한 손가락만으로 석유통을 배달했다. 그에게 삶은 지독하게 외로운 싸움의 연속이었다.
30대의 젊은 산재 노동자 박OO 씨에게 삶은, 250t의 프레스가 온몸을 덮치던 스물세 살, 10년 전 어느 봄에 멈춰 있다. 프레스가 내려오는 순간 머리를 빼며 ‘살았구나’ 하며 안도했지만 정신을 차렸을 땐 오른손이 없었다. 그 손은 장갑을 낀 채로 250t의 쇳덩어리 아래 있었다. 전국체전 메달리스트였던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 운동을 하며 맞는 게 싫어서 뛰쳐나와 기술을 배웠고, 자동차를 만들고 싶었던 청년의 삶의 시계도 멈춰버렸다. 프레스에서 손을 빼냈을 때 공장장에게 보고하느라 30분을 공장에서 지체했다는 이야기에 지금 내 가슴을 칠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 소아마비 장애가 있던 강OO 씨는 친구와 같이 장애인을 받아주는 고마운 공장이 있어서 취직했지만 일을 시작한 첫날 손을 기계에 눌렸다. 부모형제가 있어도 형편이 어려워 친척집에서 자란 김OO 씨는 사람이 따뜻하다는 걸 느껴본 적이 없었노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산재 노동자들 중 현재 좀 더 좋은 삶의 조건을 만드신 분도 있으나 현실은 거의 똑같다. 산재를 입기 전에도, 산재를 입고 나서도 지독히도 냉혹한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동시대의 시대정신, 우리가 소중하다고 주장하는 가치들, 인권, 복지, 우애, 연대, 공동체, 네트워크 같은 아름다운 말들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이들과 만나지지 않았다.
시대와 만나지 못한 스산한 삶의 이야기를 길게 들으면서 산재 노동자들과의 우정이 더 깊어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아픈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이 스스로 조직을 만들고 서로 기대어 산다는 것이 처음에는 참 아름다워 보였다. 상상 속 공동체를 그리면서 현실의 갈등에 실망하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힘들게 살아온 삶과 삶이 만나 공동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얼마나 깊은 상실감과 마음의 상처가 있었을까. 그런 헤아림이 진정한 만남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 전수경 님은 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