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삼킨’ 용광로, 회사는 17조 대박이라니…
9개월 동안 10명 사망한 현대제철… 검찰, 대표이사 무혐의 통지
지난 1월 초, 검찰에서 ‘무혐의 통지서’가 날아왔다. 지난해 5월, 노동건강연대와 충남지역 시민노동단체들이 현대제철 대표이사를 고발, 아르곤 가스에 질식해 죽은 노동자 5명의 사망 책임을 물었다. 그런데 무혐의라니.
이로써 현대제철은 법적 책임에 대한 면죄부를 받았다. 그러는 사이 지난 1월 23일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당진제철소에서 협력업체 한 직원이 냉각수의 수위를 확인하다 섭씨 70~80도의 냉각수 웅덩이에 빠져 전신에 1~2도 화상을 입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5월부터 9개월 동안 10명의 노동자가 죽었는데도 기업은 ‘무죄’란다. 이게 진짜 일터에서 일하다 죽은 사람만의 책임일까.
노동자는 죽어가는데, 기업은 왜 무죄일까?
▲ 현재제철 당진공장 산업재해 사망자 5명의 분향소가 마련된 당진종합병원 장례식장. 유가족이 요구한 ‘현대제철 공장 내 분향소 설치’를 현대제철 측이 받아들이지 않아 사고 후 협의에 난항을 겪고 있다. | |
ⓒ 소중한 |
이제 당신에게 묻자. 지난 대선, 화두는 단연 ‘복지’였다. 다양한 방법이 논의된 것은 아니었지만 굵직하게는 기초연금을 주고, 의료 비용을 낮추며 어쩌면 주거비용에 교육비용까지 낮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높았다. 대선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꿈처럼 되어버린 주제지만 복지를 하려면 우선 사람이 살아 있어야 한다. 이게 뭔 소리냐고?
세계 1위의 산재사망 국가인 한국에서는 1년에 2천명이 넘게 일을 하다가 죽는다. 핵가족 시대니 3인 가족이라고 치면, 이 죽음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은 사망한 본인을 포함 6천여 명을 넘어선다. 물론 죽음만 그렇고, 전신마비부터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 등까지 그 범위를 넓히면,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사람 중 아픔과 관련 없는 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가족까지 합치면 그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이 감당해야 할 병원비며 일 하지 못하는 동안의 월급이며 상실감 등은 어쩔 것인가? 그러니 복지의 선두는 일하는 곳에서 아프지 않고, 죽지 않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말이다(새해라 왠지 더 우렁차게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갈 길은 참으로 멀어보인다.
연속된 산재사망으로 언론의 질타를 받던 현대제철에서 지난해 5월, 아르곤 가스 질식으로 5명의 하청 노동자가 한꺼번에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다. 회사는 재빠르게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아르곤 가스에는 독성이 없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무독성인데 사람이 죽을 수도 있나?
사고가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매달 연달아 사망 사고가 났다. 심지어 12월 2일 사망사고를 계기로 회사는 5일 대국민 사과까지 했는데, 그 다음날인 6일 또 하청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동시에 짚어봐야 할 부분이 있다. 작년 한 해, 현대제철은 제3고로라는 용광로 공사를 마무리하는 데 몰두했다. 그리고 9월, 완공되었다. 외국에서 수입하던 자동차 제조 등에 필요한 철강 등을 직접 생산하게 됨으로써 현대차그룹은 엄청난 비용 절감을 이루었다. 그러나 공사중 죽은 노동자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그럼 정부는 그동안 무얼 했을까? 하도 사고가 많이 나니 ‘안전관리 위기 사업장’으로 선정해 관리했다. 그래도 사고가 나니 12월에는 안전 관련 공무원 6명을 상주시켰다. 그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사람은 또 죽었다. 5월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1123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적발하고 시정조치 했으나, 12월 다시 450여 건의 법 위반이 적발됐다.
어찌보면 현대제철 대표이사의 무죄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이 죽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한(위의 표에선 3번 이천 물류창고 화재), 모든 하청노동자의 죽음에 원청 기업 대표이사는 무죄라고 대법원은 너무도 쉽게 단정 짓고 있다. 기껏해야 원청의 현장소장 처벌뿐. 그러나 그 처벌로 현장이 안전한 곳으로 바뀐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대표이사가 처벌받는다면 어떨까. 이런 고민도 없이 형식적인 처벌에 급급한 대법원의 모습은 참으로 아쉽다.
결국 후진적인 사고에 기대어 검찰도 너무 쉽게 ‘혐의없다’고 넘어가 버린다. 지난 2011년 이마트에서 프레온 가스 때문에 4명이 질식사한 사건에서도 기업은 고작 100만 원의 벌금만을 냈을 뿐이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예방’은 그야말로 안중에도 없다.
그러는 사이 OECD 국가에선 일어나기도 힘든 온갖 후진국형 사고로 국민들은 죽어가고 있다. 지난해 7월 선진국의 사회보장시스템을 공부하러 영국에 갔을 때, “기업살인법의 효과는 무엇인가?”라고 물으니, “기업들이 알아서 안전에 만전을 기하게 되었다”는 대답을 들었다. 기업살인법은 영국에서 2008년부터 4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기업의 법적 책임에 관한 법으로, 업무와 관련된 모든 노동자 및 공중의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기업에게 범죄 책임을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우리도 제대로 된 해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우린 세계 1위의 산재사망국가니 말이다. 실제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 1월 28일 ‘현대제철 재발방지법’ 제정을 요구하면서 “산업재해를 일으킨 기업에 대한 처벌이 엄격했다면 총체적인 안전보건 부실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산재사망에 대한 기업살인처벌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 작년 5월 5명의 노동자 사망사건을 계기로 고용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 1123건의 법위반을 적발했다. 그러나 노동자는 계속 사망했고, 2차 특별근로감독에서도 500여 건 가까이 법 위반사실을 적발한다. 역시 계속 사망. 이쯤되면 노동부도 무능하다고 봐야한다. 그 사망의 행렬 중간에 검찰은 현대제철 대표에 ‘무혐의’ 처분을 한다. | |
ⓒ 노동건강연대 |
재수없어 죽은 게 아니다
법적으론 죄가 없다 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댔지만, 법과 현실이 왜 이리 괴리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기소하지 않는 이유에 “그 위반 행위가 사업주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성립하는 것이지, 단지 사업주의 사업장에서 위와 같은 위험성이 있는 작업이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채 이루어졌다는 사실만으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적혀 있다. ‘직접 지시를 안 했기 때문에 죄가 없다’는 것이다.
▲ 가 입수한 현대제철 전로 수리 노동자들의 간식시간 사진. 전로 수리를 맡은 한국내화 노동자들은 현대제철의 지속적인 공정 단축으로 하루 12시간씩 맞교대를 돌면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작업한다. | |
ⓒ 김동환 |
최고 경영자는 천문학적인 돈을 받고 기업을 통솔한다. 기업이 운영되는 전체 밑그림을 그리고 관리 감독하는 수장이다. 그 안에서 노동자가 죽었는데 수장에게 죄가 없다는 게 말이 되나? 그것도 사람이 계속해서 죽어나가는데 직접 지시하지 않았다고 죄가 없다는 게 말이 되나? 노동자가 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그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면 오히려 더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계속되는 산재사망은 고용노동부와 검찰 그리고 법원이 조장하고 있다. 노동부장관이 성명서 한 장 달랑 낼 일이 아니다. 제대로 책임을 져야 한다. 2014년 올해 매출을 17조 원이나 예상하는 현대제철이다. 한 달 매출이 1조 4천억 원이 넘는다. 30일로 나누면 하루 466억 원을 번다. 그런데도 지난 5월 당진제철소에서 근로자 5명이 사망한 것과 관련해 현대체철에 고작 6억7천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 것은 ‘명분’만 세우겠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살인을 멈춰야 한다. 우연히 단지 재수가 없어서 죽고 다치는 게 아니다. 죽고 다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사고가 나도 그대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일터를 안전하게 만드는 일에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다시 고발장을 낼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기사원문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4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