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판례


은행지점장 전속 운전기사의 과로사


유 성 규 / 노동건강연대 편집위원장


일본의 법률잡지사인 쥬리스트(JURIST)는 그 동안 각 법률 분야의 판례 100선(判例百選) 시리즈를 출간해왔다. 우리나라 산재보험제도가 일본의 산재보험제도를 모태로 시작된 만큼, 일본의 산재 판례 경향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일 것 같다. 아래 판례 내용은 쥬리스트가 2002년 11월에 발간한 노동판례백선(제7판)에 실린 판례이다.1)


업무상 질병 중 ‘과로사’는 이제 매우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최근 노동자가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에 기인한 뇌출혈, 뇌경색, 심근경색 등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산재보험법 시행령은 그 인정 기준으로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및 업무 환경의 변화’를 제시하고 있어서, ‘업무상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만성적 과로’는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기 어렵다.


실례로, 하루에 15시간씩 매일 변함없이 일했던 노동자가 있다고 하자. 근무기간 동안 추가적인 연장근로나 휴일근로는 없었다. 이 노동자는 2년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뇌출혈이 발병하였다. 하루에 15시간 노동을 했다는 것은 수면시간과 식사시간을 제외한 거의 전 시간을 노동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상식적으로만 판단하면, 뇌출혈은 업무상 질병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산재보험법의 기준으로 보면, 이 노동자의 뇌출혈은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기 매우 어렵다. 산재보험법에서 제시하는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및 업무 환경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비상식적인 사례들은 근로복지공단에서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이 때문에, 24시간 맞교대 노동자들이 뇌심혈관계 질환을 산재로 인정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자조 섞인 말들이 오가기도 한다. 24시간 맞교대 노동자들에게서 ‘업무상 변화’를 찾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살펴볼 일본 판례는 급격한 업무상 변화는 없었지만 장기간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뇌출혈이 발병한 X의 사건이다. 당시 일본의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도 “①업무에 관련되는 특이한 일을 조우(遭遇)하였을 것, 또는 ②일상 업무와 비교해서 특히 과중한 업무에 종사한 것에 의해서「업무에 의한 명백한 과중부하」를 발병 전에 받았을 것”을 정하고 있었다. 우리 산재보험법 시행령과 같이 ‘업무상 변화’를 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X가 휴업보상을 신청하였지만, 원처분기관인 노동기준서는 부지급 처분을 내렸다.


노동자 X는 이에 불복하여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일본 최고재판소는 “만성 피로나 과도한 스트레스의 지속이 만성 고혈압증, 동맥경화 원인의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고 하여, 일상 업무와 비교해서 특히 과중한 업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장기간의 잔업 등에 의한 만성적 과로도 업무상 질병의 원인 될 수 있음을 판시하였다. 업무상 질병 여부를 지나치게 경직된 기준으로 판단하는 우리 산재보험법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판결이다.


사건명 

橫濱南勞基署長(東京海上橫濱支店)사건

最高裁 平成 12년(1998년) 7월 17일 제1소법정판결

(平成 7년(行ツ) 제156호 요양보상부지급결정취소청구사건)

 

사실의 개요

은행지점장 전속 운전기사인 X(당시 54세-원고ㆍ피항소인ㆍ상고인)는 1984년 5월 11일 이른 아침에 지점장을 맞이하러 가는 도중에 지주막하출혈(蜘蛛膜下出血)이 발병했다.

X는 위 지주막하출혈이 발병하기 약 반년 전부터 1일 평균 시간외노동이 7시간을 웃돌아 매우 길었으며(원심에서는 1989년 2월 9일자 노동성 고시「자동차운전자의 노동시간 등의 개선을 위한 기준」과 비교하여, 1개월의 구속시간에 그 최고한도인 325시간에 가깝거나, 초과하는 달이 많았다. 또한 1일에 대한 구속시간에 그 최고한도인 13시간을 대폭 초과하는 날이 많아, 근무를 마친 후 휴식기간에 그 최저한도인 계속 8시간을 채우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고 하고 있다), 1일 평균 주행거리도 매우 길었고, 정해진 휴일이 전부 확보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이러한 근무를 계속하는 것이 X에게 정신적, 신체적으로 상당한 부하가 되어 만성적인 피로를 초래하였던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또한 발병 전날에는 오후 11시경까지 차 수리를 하고 겨우 3시간 정도 수면을 취한 후 오전 5시경에 당일의 업무를 개시하는 등, 그때까지 X의 장기간에 걸친 과중한 업무의 계속과 더불어 X에게 상당한 정신적, 신체적 부하가 가해지고 있었다.

 

판결 내용

「이상 설시한 X의 기초질환의 내용, 정도, X가 본건 지주막하출혈 발병 전에 종사하고 있던 업무의 내용, 양태, 수행 상황 등에 추가해서, 뇌동맥류의 혈관병변은 만성 고혈압증, 동맥경화에 의해 악화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만성 피로나 과도한 스트레스의 지속이 만성 고혈압증, 동맥경화 원인의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인 점을 생각하면, X의 위 기초질환이 위 발병 당시 그 자연적 경과에 의해서 일과성 혈압 상승이 있으면 곧바로 파열을 가져오는 정도까지 악화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은 곤란하다. 그 밖에 확실한 악화요인을 찾아낼 수 없는 본건에 있어서는 X가 위 발병 전에 종사한 업무에 의한 과중한 정신적, 신체적 부하가 X의 위 기초질환을 자연적인 경과를 넘어서 악화시켜 발병에 이르게 했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며, 그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1) 아래에 실린 일본 쥬리스트(JURIST)사의 노동판례백선(제7판)의 번역은 노동건강연대 대표를 맡고 계시는 김진국 변호사님께서 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