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정책국노트

– 이번 기획은 정책국 회원들이 관심있게 보고있는 주제를 모아 구성하였습니다.


한국 노동자의 정신건강 안녕한가



이태경 /  노동건강연대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2003년 8월 도시철도의 두 기관사가 며칠 사이로 자살했고, 2012년에는 3명이 자신의 일터였던 선로에 뛰어들어 숨을 거두거나 옥상에서 투신하는 자살사고가 발생했다.

이들 대부분 충격적인 사고를 목격하거나 직장 내 스트레스로 불안과 대인기피 등의 이상 증세를 보이다 급기야 스스로 목숨을 저버리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노동자의 자살이라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한번쯤 돌아보는 우리의 현실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한국 사회의 정신질환 문제는 심각하다. 노인들의 치매나 자살 문제. 청소년의 학교 폭력과 자살문제. 연일 끊이지 않는 언론 보도를 목격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1년 정신질환실태조사(서울의대 용역) 에 따르면 전국 남여 6,022명 중 27.6%는 평생 중 한번 이상은 정신질환을 경험하였고, 16.0%(남자 16.2%, 여자 15.8%)는 1년 동안 한 가지 이상의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지난 1년 간 자살사고를 경험한 경우는 전체  3.7%, 자살계획의 경우 0.7%, 자살시도의 경우 0.3%였다. 자살시도를 한 경우의 75.3%에서 한 가지 이상의 정신장애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2011년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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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업성 정신질환의 인정 현황


  그렇다면 노동 인구의 정신 건강은 안전한가? 노인 연령대의 심각한 치매, 우울, 자살 경향을 감안하더라도  앞 선 통계를 직접 적용하면 작년 한 해 노동자 100명중 16명은 각 종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인중 정신질환의 주요한 원인인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한 정신적 문제가 한 번도 집계된 적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산업재해 분석통계를 보면, 정신질환에 관해 업무상 질병을 인정받은 사람이 2006년 26명, 2007년 24명, 2008년 19명, 2009년 13명, 2010년 14명이었다. 2011년에는 업무상 질병자수는 7,247명인데 그 중 정신질환으로 직업관련 질환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12명(0.18%), 사망자 14명으로 확인되었다.(2011 산업재해통계, 노동부)

전체 산재 노동자의 수로 보면 크지 않은 비중일 수 있다. 그러나 10여년 가까이 꾸준히 그 수가 발생하고 있다면 모두는 아닐지라도 이들은 자살이라는 극한의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위험한 상태이고, 사회도, 가족도 모두 무관심하다. 이것이 가장 위험한 부분이다.

  과연 유병자 수가 이것 밖에 안 되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정말 업무상 스트레스가 없는 노동자의 천국인걸까. 최근 들어 늘어만 가는 철도 노동자들의 공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조울증, 불안장애 등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노동자들은 한국의 노동자가 아닌지 궁금하다.

  

 

2) 인정기준


  직업성 정신질환은 업무 관련 정신사회적 요인-직장내 업무 스트레스와 직장내 대인관계로부터 오는 스트레스, 구조조정에 따른 회사의 퇴사 압력 등-, 물리적요인-과도한 노동, 소음, 교대근무, 사건충격 등-, 화학적 요인-유기용제, 납, 수은 등- 등 작업관련 요인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정신질환으로 개인적 요인과 직업적 요인이 상호작용하여 발생한다. 물론 개인적 요인(가정생활, 개인의 감수성 등)도 같이 작용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

  근로기준법과 산재보상보험법 등 관련 법령에 업무상 정신질환에 대하여 정의하거나 인정기준에 대하여 따로 명시한 바는 없으나 일반 업무상 질병과 마찬가지로 인정할 수 있고, 2000년에 들어서는 산재법령이 일부 개정되어 정신질환과 관련된 조항1)이 삽입되어 있다.  정신질환 자체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판단하는 기준은 아니지만,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았거나 업무상 재해로 요양 중인 노동자의 자살행위로 사상한 경우에 한하여 업무상 재해를 인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직업성 정신질환으로 인정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우선 정신과적 진단을 요구한다. 일반 질병과 달리 정신질환은 구체적인 병력이나 증상이 있어도 최종 의학적 진단을 하기 쉽지 않다. 정신과적 판단은 질환의 유무를 판별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업무와 관련되어 있는지를 판단할 기초를 제공해야 한다. 정신질환에 대한 임상적 판단 외 업무관련성을 판단할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 는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업무상 정신질환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지침 또한 노동자의 상태보다는 업무외적 스트레스나 요인 찾기에 더 적극적이다.

또 하나의 어려운 점은 산재법 시행령[별표5]의 36개 예시된 다른 질병과 달리 정신질환은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추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노동자가 직접 이를 입증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과장진급 탈락에 이어 갑작스러운 내근직 발령과 상사와의 갈등, 이메일 아이디, 책상, 개인사물함 회수 등으로 인해 정신질환이 걸리고 직업병으로 인정된 사례가 있다.

지속적으로 퇴직을 종용받고 집단 따돌림을 당해 받은 스트레스로 정신질환이 생겨 직업병으로 인정된 사례도 있다.

업무상 요인과 업무외의 요인, 그리고 개별적 소인까지 모두 일정한 영향이 있었겠지만 범불안장애 및 우울증 등이 발생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전보에 있다고 보았고, 전보처분이 노동자에게 정신과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사례도 있다.(김가람, 근로자의 정신질환에 대한 업무상 재해 인정여부 509-510p, 서강법학 11권1호 인용)

대법원은 업무상 재해(외부적 사고, 이황화탄소중독, 진폐증)로 인해 추가적으로 기질성 정신장애가 발생하거나 업무상 재해로 인한 요양 중 정신질환이 발병하는 경우는 폭 넓게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업무상 스트레스가 바로 정신질환을 일으켰다고 보아 정신질환 자체나 그로 인한 상해, 사망의 결과에 대해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것은 엄격하다.

업무기인성 여부를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정신질환이 단순히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 아니라 유전적, 환경적, 신체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다는 점을 중시하여 업무로 인한 정신질환의 발병 또는 자살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서울시립대 신권철 교수, 정신질환과 노동 222p, 노동법연구 2012-13호 인용)



3) 개선할 점


노동부가 “업무상질병 인정기준 개선방안” 정책토론회를 개최하면서 새로운 유형의 업무상질병인 정신질환 중 발병의 연관성이 확인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인정기준에 포함하기로 했다.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을 정부는 마치 생색내기로 자랑한다.

 직무스트레스의 정도를 정량화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가까이 일본의 사례를 참고하는 것을 어떨까? 우선 노동부는 현재의 업무상 정신질환업무관련성 조사 지침을 개정하여 스트레스 원인을 선정하고, 각 원인별 영향요소의 강도를 수치로 측정하고 조사 요원의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평정 중심의 업무 스트레스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아울러 감정노동의 경우 업무의 양적 평가가 아닌 업무내용 즉, 질적 평가를 할 수 있는 기준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문무기, 경북대학교, 서비스산업 정신질환의 산재법상 법리, 경북대 법학논고 41집 인용)

  직업성 정신질환의 인정 문제에서 개인의 감수성 즉 업무이외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중요하다. 스트레스의 종류가 일상생활과 작업장 요인 중에 어떤 것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는지가 중요한 인정의 근거가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작업장 요인만으로도 정신적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면, 기존 질환을 악화시키거나 촉발했다면 이것은 직업병이다.

제도를 수정해 노동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해야 한다. 당신과 내가 겪고 있는 업무스트레스를 줄여 나갈 사회적 힐링이 시급한 것은 아닌지.




1) 산재법 시행령 제36조에서는 자해행위에 대한 업무상 재해의 인정여부에 관하여 1.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2. 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3. 그 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 등에 한정하여 정신질환에 의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할 기준을 마련해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