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1  유럽방문기


베를린 런던 헬싱키, 노동자를 존중하는 사회를 가다

박혜영 / 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



” 2013년 6월, 노동건강연대 주영수 대표와 회원 등 5명의 직업환경의와 노동건강연대 박혜영 활동가는 유럽을 방문했습니다. 베를린, 런던, 헬싱키 이 세도시를 경유하며 공부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베를린의 산재병원, 런던의 무상의료와 그 안에서의 직업재활 프로그램, 도시하나가 커다란 공공기관과 같은 헬싱키의 산재예방정책, 그리고 이 세 나라를 관통하는 공공의료 및 복지서비스를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유럽으로 떠나기 전날 밤, 새벽에 받은 전화 한 통은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새벽 올림픽대로에서 공사를 하던 중 사망을 했고 유가족들은 이런 일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누구든 일하다가 사고로 혹은 질병으로 사망할 수 있다. 그리고 보통의 가족은 그런 일을 처음 겪는다. 일을 하다가 큰 사고를 당하거나 사망을 했다면 그 불안한 심정 중에 최소한 치료나 보상의 문제는 안심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수많은 산재사망을 접해왔던 내게 왜 이제야 이런 의문이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잠을 못 이룬 채 유럽에서 무엇을 보고 와야 하는 것인가 생각했다.

#1. 건설로 분주한 베를린

공항에서 숙소로 향하는 택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숙소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찾아간 식당 옆 건물엔 공사가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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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지 않도록 견고하게 만들어진 비계, 고무판까지 달려있다. 떨어질 수도 없구나!>

비계를 저렇게 튼튼하게도 지을 수 있나 싶다. 서울의 너덜너덜한 비계들이 떠올랐다.

일행이 한마디 덧붙인다. 한국의 추락사는 보통 비계를 설치할 때도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비계를 빨리 만들어야 공사를 시작하니 그 때 재촉을 많이 한다. 이러나저러나 추락사 1등이다. 그날 밤 한국 포털사이트에 뜬 추락사 기사를 보았다. 출장 내내 한국의 산재사망사고 소식을 계속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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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서는 높이가 주황색 발판이다. 

 맨 위 칸 가운데에 검정색이 사람이다. 그 중간에 2개의 봉을 덧댐으로써 추락사고를 방지하고 있다.>

독일 산재보험의 중심, 베를린 산재병원

동베를린 시내외과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병원, 입구부터 압도되고 말았다. 산책로가 보이고 많은 환자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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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쪽으로 들어가면 아주 넓은 정원과 각종재활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다. >


? 독일의 ‘산재전문의사’제도

– 산재환자는 모두 맨 처음에 한해서는, 어떠한 의사에게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후 산재전문의사(DA)의 처방에 따라야 한다.

– 독일 전체에는 609명의 DA가 있으며, 병원마다 1명씩 정해져 있다.

– 베를린 지역의 경우 9,500여명의 의사가 있고, 이 가운데 DA가 150여명 있다.

 

? 동베를린 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UKB (Unfallkrankenhaus Berlin)

– 1997년에 설립된 베를린의 산재병원은 연인원 22,300명 입원환자와, 65,000명의 외래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20개의 진료과를 가진 병원이다.

– UKB의 경우는 ‘기본과’ 외에 ‘일반내과, 심장내과(심장질환진료), 신경외과, 이비인후과, 두경부외과, 신경과(stroke진료)’ 등이 있음.

– 일반병상(한곳의 regular ward를 방문)의 경우, 1인실 4개, 2인실 12개, 4인실 2개가 있었고, 병실마다 독립적인 목욕,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 1년간 병원의 총 수입은 1억7천만 유로(=2,550억원). 일반보험에서 1억1천만 유로(=1,650억원), 노동자보험에서 6천만 유로(=900억원)를 받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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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치료를 받으러 이 병원을 찾는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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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경우, 전체 병원들 중에서 55%가 ‘적자’인데 반하여, 보통의 산재병원들은 흑자를 보고 있으며, 그렇게 해서 남게 되는 수입액은 직원드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하거나, 시설과장비를 구입, 건물을 신증축함으로써 재투자하고 있다. 이 병원 역시 ‘비영리병원’으로써 수익을 어떻게 내냐는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노동자보험에서 치료비를 지불하고, 일반 건강보험에서도 치료비를 지불하기 때문이다. 수익을 내는데 역량을 집중 할 필요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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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산재병원의 기본 모형이 헬기 1대와 이착륙시설이다. 엘리베이터를 통해 곧장 응급실로 간다. >

산재 사고시 노동자를 이송하는 전용 헬기가 있다. 추락이나 급성심근경색 같은 급한 환자가 생기면 곧바로 헬기가 뜬다고 한다. 얘기를 나누는 중에 헬기가 이륙한다. 최고급시설이 갖춰진 중환자실과 재활치료 공간, 일반 대학병원보다 훨씬 수준 높은 병원을 보았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가 생각났다. 산재를 감추려고 하청업체의 트럭에 실려 공장을 나간 노동자는 응급조치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

#2. 무상의료의 나라 영국, 새로운 고민조차 매혹스러워

런던은 입국심사가 까다롭다고 했다. 일행 중 한명이 우리가 만나기로 한 교수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너무도 손쉽게 입국이 되었다. 다른 심사도 없었다. ‘무상의료시스템 NHS(National Health Service)과 블랙교수’ 를 언급했을 뿐이었다. 공항 입국심사 노동자의 호의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나중에 알았지만 블랙교수는 현재 영국의 NHS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떠나기 전 한 모임에서 영국 굴뚝 노동자의 고환암 이야기를 들었다. 지름 46cm정도의 영국의 좁은 굴뚝을 청소하는 사람은 어린이. 어린 굴뚝청소부들은 굴뚝에 잔뜩 묻은 검댕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는데, 물이 귀했던 당시 옷을 빨기 어려워 작업할 때는 맨몸이었다. 물로 대충 검댕을 씻어냈던 아이들의 고환주름에는 검댕이 늘 묻어있어 이들이 나중에 고환암에 걸리게 되었다. 최초로 밝혀진 직업병이었다. 굴뚝청소부들은 굴뚝 밑으로 떨어지거나 주인이 피운 연기에 질식해서 죽기도 했다.

영국에 머무르는 내내 오래된 건물로 눈이 갔고, 굴뚝들을 보며 비참한 직업병의 역사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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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 그림, 굴뚝청소부의 작업 모식도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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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는 금물입니다

일정에 제약회사 방문이 포함돼 있다. 기업복지 시스템과 국가 무상의료시스템이 어떻게 조응하고 있는지 관찰하는 자리. 다양한 건강프로그램 설명을 듣다가 멈칫했다.

나의 질문은 이랬다. “이 회사에서도 상사와 하급자의 관계에 따라 일의 양 등이 건강에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실제 어떤가요?”

“하급자가 일을 열심히 하면 상급자가 그를 불러다가 일을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합니다. 너무 많이 일을 하면 당연히 건강에 영향을 주니까요”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기에 어느 정도 걸러들어야 하고, 확인할 수 없는 말이긴 하다. 그래도 잠시 멍해진다.

런던 거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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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the Education Centre!

영국의 무상의료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 설명과 그 안에서 직업재해와 재활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알아보는 자리에 7, 8명 되는 담당자가 동석을 하였다. 무상의료 시스템 내에서 노동자는 일을 하다가 다치면 산재신청 따위 없이 당연히 무상으로 치료를 받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뒤통수 맞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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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무상의료 시스템을 보자. 영국 국민 혹은 영국에 6개월 이상 거주하는 자는 일반의사(GP, Geneal Practitioner)를 찾아간다. 이 곳에서 1차로 진료를 한 후 필요하면 2차로 필요한 의료기관으로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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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병을 알기 위해 여기저기 병원을 찾아 헤매고, 병원비로 가족 생계가 무너지는 일은 없다. 무상의료 시스템 역사를 보면, 도입 당시 노동당 총리는 의사들의 반발에 대하여 ‘의사들의 입을 금으로 채웠다’고 고백할 정도로 대타협을 했다고 한다. 이후 계속해서 늘어나는 재정부담으로 새로운 정권이 서비스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국민적인 반발이 일어나면서 60년 동안 제도의 부정적인 면을 계속 수정해 왔다. 집도 사고 생활도 해야 하는데 의료라도 나라가 해주니 좋다는 영국 국민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이제 직업 관련된 부분을 보자. 이번 방문을 통해 현재 무상의료시스템이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핵심은 ‘직업재활’ 이다. 일반 직업보건 시스템은 크게 4가지로 나눠지는데, 병원, 일반의, 공중보건시스템, 예방적 직업보건 프로그램 이다.

우리가 방문했던 ‘가이 앤 세인트 토마스 병원(GSTT, Guy’s&St.Thomas’ Hospital)’에서 4번째의 시스템인 예방적 직업보건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직업보건서비스(Core Occupational Health Services)의 내용을 보면,

① 피고용자 건강보호 (Employee Health Protection)

② 고용 중 건강 유지 (Health Maintenance in Employment)

③ 노동 생활의 개선 (Improving Working Lives)

④ 위탁사업체에 대한 조언 (Advice to the Trust)

⑤ 수련과 교육 (Training and Education)

⑥ 연구와 개발 (Research and Development)

같은 프로그램들이 포함되어 있다.

구매력이 있는 대기업들은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모두 ‘구매(계약)’하여 서비스를 제공받고, 영세 기업들의 경우는 이 중에서 일부만 구매하여 직업보건관리를 하고 있다.

기업의 규모나 재정이 충분한 경우에는 자체적으로 ‘예방적 직업보건서비스 인력 및 조직’을 구성하여 관리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국가나 정부의 각종 법적인 요구사항이나 권고사항 등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다양한 내용으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하게 볼 지점이 있다. 영국의 기업살인법이다. 산재를 막기 위해 기업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2008년에 만들어진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은 제정 당시에도 영국 내에서 논란이 있었으나 중요한 건 산재사망이 급감했다고 사실이라고 한다. 그 법을 공표하는 자체로 예방의 효과가 충분했다는 것이다. 강력한 처벌에 대한 반대급부로 기업이 자발적으로 사고예방 시스템을 강화했다. 처벌건수가 몇 건인가를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NHS의 새로운 실험, ‘Fit-For-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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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더 알려주려고, 다양한 담당자들이 오고가며 긴 프레젠테이션을 해 주었다. 많은 이들을 위한 꼭 필요한 시스템이 NHS 내로 편입되고 그를 위한 실험을 하고 있는 자들의 긍지를 엿볼 수 있는 시간, 그런데 Fit For Work란?

영국 사람들은 일하다가 다쳐도 그냥 병원 가서 치료를 받는다. 예산은 국가에서 부담한다. 산재보험 자체가 없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이 노동을 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질병 등은 직업과 관련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된 최근 통계로는 ‘노동시장에서 질병으로 인한 결근에 대한 통계(Sickness Absence in the UK Labour Market 2012)’가 있는데, 위와 같은 통계 등을 통해 직업과 NHS를 연결시켜 현재 영국은 NHS시스템의 질적 변화를 꾀하고 있다. 직업적 치료와 재활을 통해 국민들이 일터에 빠르게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모형이 ‘Fit-For-Work’다. 핵심은 ‘조기개입(early intervention)’을 통하여 건강하고 활발한 ‘직업으로의 복귀(Return to Work)’를 꾀하는 것인데, 이를 위하여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있다. – 2010년부터 11개 지역에 ‘Fit-For-Work’ Team을 구성하여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  우리가 방문한 팀 역시 11개 팀 중 하나로 Leicester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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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아파서 일반의(GP)를 찾아 갔을 때, 소견상 일에 대한 적합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GP는 해당 환자를 Fit-For-Work팀으로 보낼 수있다. 15명이 한 팀으로 특히 Leicester 지역의 경우 중소영세 사업장(SMEs(Small and medium-sized enterprises))을 주요 사업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연계된 환자는 ‘Fit-For-Work’ Service (FFWS)를 받게 된다. 이 서비스를 수행하는 팀은 특별히 코어팀(Core team)이라 불리우는데,

① 4명의 사례관리자(4 Case Managers, 대상자를 매주 만나고, 동기를 부여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필요시 사업주를 면담하는 등, 모든 문제에 대해서 지원함)

② 1명의 직업보건간호사(1명의 Full-Time-Equivalent OH Nurse)

③ 1명의 일반의(General Practioner, 1주일에 2일 근무함)로 구성되며,

코어팀의 주요 역할로는,

① 피의뢰자(clients)에 대한 요구도 평가(Health Needs Assessment, HNA)

② 일반의(GP)와의 의사소통(communication)

③ 각종 자원들(Education Retraining, Musculoskeletal, Multi access centres-home and personal interventions, Workplace interventions, Psychological therapies)과의 네트워킹 등이 있다.

특히, 사례관리자(case manager)가 연계해주는 주요개입(main intervention) 내용으로는, 근골격계 증상치료(Musculoskeletal treatment), 정신건강치료(Mental health therapy), 중개/협상(Mediation/negotiation), 학습(Learning/new skills), 부채문제/법적문제/주거문제/개인문제(Debt/legal/housing/personal), 지지/신뢰형성(Support/confidence building), 이직/구직지원(Help to leave job/new work), 통증관리(Better treatment/understanding of my pain) 등이 있다.

발표를 맡았던 한 사례관리자는 담당 환자에게 밀착하여 상담을 하고 생활을 파악하는 활동이 감정노동이 많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한 사람의 거의 모든 어려움을 파악하고 함께 해결해야 하는 일 아닌가. 한국으로 치면 사회복지사 역할인데, 특별히 자격증 등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고, 관련 전공을 했다고 한다. 이런 서비스를 무상의료 제도 아래서 받게 되는 영국 노동자들이 부럽다.

이 프로그램을 위하여 NHS에서는 전산 ‘Fit Note’를 개발하고, 일반의들(GPs)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프로그램과, 11개 지역에서 조정자(Co-ordinators) 시범사업을 시행하였고,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안녕을 위한 국가센터(National centre)를 구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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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Black. Working for a healthier tomorrow. 2008. p78

‘Fit Note’는 일반의들(GPs)이나 다른 의사들이 ‘해당 환자의 일에 대한 적합성(fitness for work)’에 관하여 정보나 조언을 제공하는 도구이다.1) 참고로, 이 도구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역할 또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① “다음의 조언에 따를 경우에 환자들이 일에 적합할 수 있다”거나, “일에 적합하지 않다”고 조언한다.

② 환자의 작업 복귀를 도와주기 위한 ‘통상적인 접근방식을 표시하는 체크박스’를 이용하여, 환자의 기능적 상태들에 관하여 코멘트를 해 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③ 의사에 의해서만 작성될 수 있으며, 내용에 대하여 전화를 이용한 자문도 가능하다.

④ 환자들은 이 ‘Fit Note’를 자신의 ‘일에 대한 적합성’, ‘상병수당’ 그리고 ‘기타 수당’ 등의 근거로서 사용할 수 있다.

⑤ 이 ‘Fit Note’는 질병에 이환된 첫 6개월 중에서, 일단 3개월의 기간만을 책임져 준다.

NHS의 새로운 시범사업을 불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영국 무상의료 60년의 역사를 떠올린다. 자본주의국가 영국의 사회주의적 복지시스템. NHS를 지켜낸 영국 국민들이 존경스럽다.

#3. 우연히 밤을 샜다, 해가 안 졌다. 핀란드

비가 왔다. 찬 공기를 맞으며 도착한 헬싱키. 생각보다 도시는 알록달록하지 않다. 2012년 년 라던데…. 트램을 타고 저녁을 먹으러가는 길, 백야라 어두워지지 않는다. 그제서야 눈에 유모차가 자꾸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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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이식 의자는 사람이 앉았다 일어나면 바로 벽에 붙는다. 유모차가 오면 누구든 일어나 자리를 양보한다. 애 키우면서 대중교통으로 다니는 걸 보니 자꾸만 보게 된다. 헬싱키에 있는 내내 나는 그렇게 탑승하는 유모차마다 인사를 나누었다.

러시아와 스웨덴 사이에서 침략의 고통을 겪은 나라. 해방을 선언하고 어디보다 혼란스러웠던 작은 핀란드는 노사정의 끈질긴 대화와 사민당의 집권으로 급속히 복지국가의 선두에 선다. 

핀란드 노동자들 좋겠다 무상의료에 예방시스템까지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핀란드의 산업보건연구원(Finnish Institute of Occupational Health)을 찾아 나섰다. 핀란드 역시 무상의료의 나라이다. 건강문제(산업재해나 직업병 포함)가 생겼을 경우, ‘치료서비스’는 1차적으로 일반의사(GP)가 제공하며, 필요시 상급기관(병원)으로 의뢰하거나 병원을 옮겨 집중적인 의료서비스를 받는다.

직업과 관련된 치료와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큰 틀에서 보자면, 핀란드는 직업성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치료는 누구에게나 무상의료이다. 다만 직업에 대한 건강서비스 등에 대해서는 형평성의 문제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규모가 있는 회사일수록 자체적으로 직업보건서비스를 노동자에게 시행하고 있으나, 영세규모 사업체나 자영업자처럼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경우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보건소를 찾아간다. 회사에서 투자를 하며 직업보건서비스를 키워가는 곳과 보건소의 서비스 수준은 다를 수 밖에 없기에, 이 문제는 핀란드에서도 고민으로 남겨져 있다.

자세히 보도록 하자.

 

① 지방자치단체(municipalities) 수준으로, 지역보건소(Municipal health centre)가 중심에 있으며 해당 보건소가 자영업자, 농부, 영세한 사업장들에게 직업보건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이다. 전체 사업장의 61%, 피고용자의 32%, 직업보건서비스 단위(OHS units)의 29%가 이 수준에 위치하고 있다. 이 경우에는 주로 최소한의 필수적인 직업보건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는데, 이는 기초직업보건서비스(BOHS, Basic Occupational Health Service) 전략에 근거하고 있다.

② 사업장내 직업보건서비스 단위(OHS units)를 직접 운영하는 경우로서, 보통 큰 기업들이 스스로 인력과 재원을 동원하여 자신의 직업보건관리를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형태이다. 전체 사업장의 1%, 피고용자의 15%, 직업보건서비스 단위(OHS units)의 26%가 여기에 위치하고 있다.

③ 기업들이 바깥의 직업보건서비스 단위(OSH units)와 협약(Joint)을 맺어 사업장 보건관리를 시행하는 방식이다. 전체 사업장의 3%, 피고용자의 5%, 직업보건서비스 단위(OHS units)의 6%가 여기에 위치하고 있다.

④ 기업체가 사적인 의료센터(Private medical centre)와 계약하여, 서비스를 제공받는 모형이다. 이 경우에는 기업체가 서비스 내용을 선택·구매할 수 있으며, 기업체의 재정적 능력에 따라서 서비스 수준이 결정될 수 있다. 이 모형으로 인하여 핀란드의 직업보건서비스 제공수준과 내용의 불균등성이 커지고 있다. 전체 사업장의 36%, 피고용자의 48%, 직업보건서비스 단위(OHS units)의 39%가 이런 모형을 채택하고 있다.

‘사적인 의료센터(Private medical centre)’ 모형 쪽으로 전환된 사업장, 피고용자, 직업보건서비스 단위들이 많아졌고(특히, 큰 기업들이 자체관리 모형에서 많이 전환하였음), 그 경향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이에 공적인 지원체계의 강화를 통한 직업보건서비스 형평성 제고가 사회적으로 주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헬싱키에서 만난 반가운 사람


산업보건연구원(Finnish Institute of Occupational Health) 방문 중에 우리 일행이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한국 사람이다. WHO에서 일하는 김록호 선생이다. 한국의 직업병 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활동가인 김록호 선생을 핀란드에서 우연히 만난 후배의사들은 흥분했다.

핀란드 복지를 견학하러 왔던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을 통해 그 사회 보건의료체계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도덕적 해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핀란드 공무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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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시간을 스스로 정하고 하루에 정한 시간을 일한다는 핀란드 사회보험청(Finnish Social Insurance Institute, KELA)으로 갔다.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청사 건물. 하나하나 예사롭지 않았다. 디자인과 역사가 깃든 기념물이 공존했다. 사회보험청이 갖는 자부심이 전해졌다. 바로 시작된 프레젠테이션. 직업재활의 세계는 한국에서 보던 것 그 이상이었다. 세금을 많이 내는 나라 국민들이 그 혜택을 한껏 누리고 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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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건물이다>

핀란드의 직업재활과 관련된 시스템은 다양한 주체가 운영한다. 사업체에 고용되어 있는 피고용자가 ‘재활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하는 경우에는 ‘산재보험회사(Insurance company : 우리나라의 근로복지공단과 같은, 사업주에게 보험료를 징수하여 운영하는 비영리기관, 모두 7개가 있다)’가, 건강상 문제가 있는 실업인구(unemployment with illness)의 경우에는 ‘노동부(Ministry of Labour)’가, 그 외에 나머지 상황에 있는 사람들(앞에 포함되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인구집단-노인인구- 등)의 경우에는 ‘사회보험청(Finnish Social Insurance Institute, KELA)’이 재원을 지원한다. ‘교육훈련 조직(Education and training organizations)’과 ‘재활서비스 제공자들(Rehabilitation service providers)’이 ‘재활요구(client & health care)’를 관리한다.

특히 직업재활서비스 제공과 관련된 ‘개념적 접근 프로세스’는 매우 인상적인데

① 접근단계(Access phase)에서는 ‘어떻게 서비스로 유입시키는가?’

② 초기단계(Initial phase)에서는 ‘이 서비스가 이 대상자에게 바로 지금 필요한가?’ 

③ 목표와 계획 수립단계(Establishing the goal and the plan)에서는 ‘이 대상자에게 어떠한 직업이 필요한가?’

④ 실행단계(Implementing phase)에서는 ‘이 계획이 실제생활에서 작동할 수 있는가?’

⑤ 업무단계(In the job phase)에서는 ‘이 일이 이 대상자에게 적당한 일인가?’

⑥ 결정단계(Decision phase)에서는 ‘어떻게 그 직업으로 들어가게 할까?’

를 결정하는 체계적인 접근전략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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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하여, 사례관리시스템(‘Job coach’ 사례관리자 배치)을 운영하고 있는데, ‘Job coach’는 위 여러 단계들 중에서 재활 대상자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제기하는 문제에 대하여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① 사회복지사와 함께 초기 인터뷰(Initial interview)를 하면서, 대상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job coaching의 유용성을 평가하고, 초기 목표를 설정,

② 어떻게 직업을 얻나 계획하는 단계(Planning how to get to work)에서는, 직업재활과정의 목표, 여러 직업에 대한 정보, 직업실험을 해 볼 곳을 물색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며,

③ 추후관리 단계(Follow-up)에서는, 대상자의 직업실험을 지원해 준다.

④ 필요할 경우 심리전문가의 도움(Psychologists research)을 받아서 대상자의 인지기술, 학습기술, 개인적 자원 평가를 통해 도움을 준다.

한 사람의 직업 재활을 위해 배치되는 잡 코치는 오랜 시간 동안 한 사람의 새로운 삶을 함께 고민해준다. 이쯤에서 한국에선 당연히 나왔을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대처는 어떠한가요?”

순간 침묵이 흘렀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분위기였다. 더 자세히 묻는다. “일부러 재활을 받기 위해 아프다고 하거나 일을 그만두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요?” 

신중하게 돌아온 대답은, 만약 그렇다면 그가 왜 거짓말을 했는지 원인을 분석해서 함께 해결해야겠지요? 복지는 불쌍하거나 도와주고 싶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에 속한 동등한 국민으로써 당연히 국가에서 제공받는 서비스는 국민을 존중하고, 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울타리를 만들어준다.

밤 아홉시가 넘으면 술을 안 팔아? 뭐 이런 일이 다 있어!

문화 충격은 곧 수다로 이어진다. 우린 궁금한 것도 많고 싶은 말도 많았다. 저녁을 먹으며 나눈 대화는 여전히 모자랐고, 맥주 몇 병 사들고 숙소에 돌아가 오늘의 일을 마저 정리하기로 한다. 편의점에 들른 우리는 황당한 소리를 듣는다.

“맥주는 안 팔아요. 법 위반이에요.”

다시 한번 들은 말을 확인한다.

“법이요?” 

“네 법으로 9시 넘으면 마켓에서는 술을 못 팔게 되어있어요.”

 

그 때 우린, 전혀 억울하지 않았다. 다만, 그 정책에 담긴 함의를 찾아내느라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대화를 나누었다. 술집에서는 마실 수 있지만, 편의점 등에서 따로 술을 팔지 않는다는 사실은 핀란드가 국민건강증진을 위해 염분섭취를 제한했던 정책이 있었다는 사실과 맞물려 대단하다는 말 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 광장에서 병맥주를 들고 술을 마시는 젊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젊음은 누구도 이길 수 없다며 즐거운 마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헬싱키 벼룩시장 단언컨대 벼룩시장 중 최고봉!

한국으로 떠나는 날. 비행기 시간은 점심.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 벼룩시장이 열린다는 한 창고를 찾았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벼룩시장을 물으니 자신도 벼룩시장으로 간단다. 팔뚝에 커다란 문신이 새겨진 남성이었는데, 함께 한 일행은 무작정 따라가도 되냐고 묻는다. 어쩔 수 있나?  결국 그를 따라나서 걷기 시작했다. 우리가 걷고 트램을 타고 30여분동안 왔던 길을 고스란히 되돌아 걷는 코스였다. 매주 다른 곳에서 벼룩시장이 열리고 자신은 매주 그 곳을 찾아간다고 친절하게 말해주었으나, 왜 우리 숙소 근처로 가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따라가 보니 숙소 옆. 커다란 컨벤션 센터가 통째로 벼룩시장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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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유로에 작은 가방하나를 사고, 1유로에 꼭 맞는 운동화를 하나 샀다. 국화꽃그림 액자도 1유로에 하나. 3유로를 가지고 대단한 쇼핑을 하니 기분이 좋다. 북유럽 특유의 도자기 접시를 들었다 놨다 하며 고뇌의 시간도 보냈다. 유난히 많던 아이들의 옷과 장난감, 식기류와 커튼, 상상하는 모든 것이 있는 그 곳에서 오래도록 핀란드 사람들의 삶을 느끼고 싶었으나, 비행기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한국에 도착하니 아침이다. 짧은 여정이 꿈이라도 꾼 듯 얽혀 있다. 노동자의 자살 소식이들린다, 한국에 돌아온 느낌이 이런 건가. 

페이스북에 여정 중간 중간 글을 올릴 때, 지인은 그 나라의 역사와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난 이 세 나라를 자세히 모른다. 역사를 더 알고 싶고 제도의 맥락이 궁금했다. 한정된 시간에 다 알긴 어렵지만, 그 사회는 사람을 죽게 내버려두진 않는다는 것.

부러웠다. 우리는 더 대화를 해야 하고 우리의 일터와 사회를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존중하고 소중히 하는 시스템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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