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끓는 물에 화상, 피부이식은 보상 안돼?

[병원에서 배우는 노동인권⑦] 50년 맞은 산재보험의 한계

노동건강연대는 2013년 산재를 입고 치료 재활중인 노동자들, 치료가 끝나고 생업으로 돌아간 노동자들의 생활실태를 조사하는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산재 노동자들은 몸과 마음에 입은 상처를 충분히 치료받지 못한 채 힘겨워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개인의 질병도 사회구조와 떨어져서 볼 수 없기에 의료인들이 노동자를 진료할 때 더 많은 질문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가이드를 만들었습니다. [편집자말]

2014년은 산재보험제도가 생긴 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정부는 6월 말부터 산재보험이 성공적으로 운영되어 온 것을 자축하며 외국학자들을 불러 토론회를 열고, 기념식도 성대하게 치를 예정이라고 합니다. 산재보험제도 50년에 누적흑자가 9조 원에 달하지만, 노동자들의 산재사망은 세계 1위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조계종 노동위원회가 개최한 ‘송파 세모녀 죽음 이후 100일 빈곤문제를 진단한다’ 토론회에 다녀왔습니다. 산재보험 흑자가 9조 원이라는데 누군가에게 가야 할 돈이 안 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빈곤문제가 더 심각해진 탓에 세모녀의 비극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토론 내용을 들었습니다. 

기사 관련 사진
▲  ‘세모녀 동반자살’을 보도하며 ‘정부 복지 정책’을 강조한 .
ⓒ MBC

관련사진보기

식당에서 일하던 세 모녀의 어머니가 퇴근 길에 다쳤을 때 교사·공무원처럼 바로 산재보험이 되었다면, 일을 못하고 치료를 받는 동안 건강보험에서 휴업수당 같은 것을 주었다면,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 70만 원을 남기고 세상을 등질 생각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토론회에서는 소득 대비 임대료비율이 월 소득의 30%가 넘는 주거빈곤에 처한 분들의 실태도 발표되었는데요. ‘지하 등 주거환경이 열악한’ 곳에 살면서 소득에 비해 높은 월세를 부담하는 단순노무직, 판매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많다고 합니다. 

이는 세모녀의 어머니와 같은 경우일 것입니다. 저임금 직종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많은 반면 이들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현저히 낮습니다. 늘 일을 하면서도 열악할 주거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주거 빈민’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정부는 산재보험을 50년 동안 운영해 왔지만 정작 사회보험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철학이 없었습니다. 그러하기에 기업경영처럼, 사보험회사처럼 수익을 많이 남겼다고 자랑할 수 있었을 테지요. 

노동자는 오늘도 일을 하고, 다치고, 병에 걸리고 있는데, 산재보험 50년에 흑자가 많이 난다고 자축하는 정부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돈을 틀어쥐고 복잡한 행정으로 보험제도를 쉽게 이용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 정부에게 제대로 운영하라고 압박해야 합니다. 그럼 50살 산재보험제도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세모녀의 죽음, 이것만 제대로 됐어도

산재보험은 국가에 의한 강제적 사회보험제도입니다. 보험가입자인 사업주에게 보험료를 받고, 사업주에 속해있는 노동자가 업무상 사고나 질병이 생겼을 때 행정기구를 통해 급여를 준다는 점에서 사회보험의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행 산재보험은 산재를 당한 노동자가 급여 신청을 하면, 행정 당국이 직업과의 인과관계를 따져 통과된 경우에만 보상을 한다는 점에서 모두가 적용받는 건강보험과 근본적인 차이가 납니다. 이러한 방식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매우 불평등한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어떤 질병의 원인을 단적으로 직업 때문이라고 입증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질병의 원인을 단일한 인자로 설명하는 ‘질병의 단일 병인론설’은 이미 폐기된 비과학적 설명 방식입니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고혈압, 당뇨병 등 과거에는 직업병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일반 질환들조차 직업 관련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작업 때문이든 아니든, 노동자가 건강하게 직장 또는 사회로 돌아가고자 하는 건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습니다. 건강권은 인권으로서,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입니다. 산재냐 아니냐에 따라 보상의 수준이 달라지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많은 연구에 의하면, 일반 질환들도 근무 환경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저체중 신생아의 출산은 여성노동자의 장시간노동 및 교대근무와 고혈압 및 고혈압성 합병증은 직업스트레스 요인과 관련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반대로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잦은 사망, 부상은 뿌리깊은 하청-재하청 관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건설산업 하청구조를 부추기고 있는 정부 정책이 산재발생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빈곤해지는 이유

기사 관련 사진
▲  노동자는 오늘도 일을 하고, 다치고, 병에 걸리고 있는데, 산재보험 50년에 흑자가 많이 난다고 자축하는 정부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노동건강연대

관련사진보기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는 노동자는 행복한 편에 속할지도 모릅니다. 법률적으로는 1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지만, 모든 노동자들이  다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산재보험은 건강보험과 달리 사업주의 자진 신고로 적용 대상이 정해집니다. 

또 산재 보험료 전액을 사업주가 내고 있어서, 전체 취업자 가운데 실제 적용 대상이 되는 노동자의 비율은 매우 낮습니다. 물론 사업주가 신고를 하지 않고 산재보험료를 내지 않았더라도, 법률상으로는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하면 적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이유로 산재보험에 가입해주지 않는 사업주가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노동자가 치료를 받게 되면, 본인이 산재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라 신청을 하지 않거나, 사업주가 꺼린다는 점 때문에 스스로 산재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5월 말 학교급식실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가 끓는 물에 화상을 입고 치료를 받던 중 합병증으로 사망하셨습니다. 산재보험을 받긴 했지만 산재보험에서 내주지 않는 개인부담치료비가 너무 많았습니다. 하반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지만 피부이식은 산재보험이 안 되고, 나머지 치료도 갖가지 규정으로 개인이 내야 할 돈이 늘었습니다.

몇 해 전 가스폭발 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은 노동자가 피부 이식 등에 들어가는 치료비를 회사가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아 3년 동안 수천만 원이 넘는 치료비를 부담했다는 신문기사가 난 적도 있습니다. 치료비로 빚을 얻게 된 노동자의 집이 가압류되고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노동자들이 산재보험을 통과하더라도 경제적 고통을 겪는 것은 비슷합니다. 소득을 보전해주는 휴업급여는 임금의 70%정도이기 때문에, 실질소득은 거의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게다가 치료비가 늘어나면서 가정이 빈곤해지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저임금 소규모사업장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맞벌이 가구입니다. 그런데 배우자가 다치게 되면 간병을 하느라 가계의 실질 임금이 큰 폭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일부 대기업들은 단체협약에서 산재 이후 소득 보전에 관한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만, 대부분의 중소 사업장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때문에 산재를 입은 후 가계소득이 급격히 후퇴하고 빈곤해지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보험 제도는 가능한 많은 사람이 이용하기 쉽게!

노동자가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원인이 무엇이든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일을 못해 소득이 줄어든다면 소득 손실에 대해 보전을 받아야 합니다. 필요한 치료와 재활을 충분히 받고 일터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아프고 다친 이유를 엄격하게 평가하면서 치료할 권리, 건강할 권리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평가 기준도 자의적인 잣대로 운영하면서 보장의 수준을 차별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쉽게 보장을 받을 수 없으니, 노무사, 변호사의 도움을 받게 되고 이로인한 노동자들의 경제적 부담도 커집니다. 여기에 보험을 받게 해주겠다고 브로커, 사기꾼까지 가세할 정도라니, 이 제도가 과연 사회보험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복잡한 제도운영은 건강할 권리를 평등하게 보장한다는 복지의 측면에서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미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불건강으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가 동일하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동일하게 사회보험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보편주의 원칙을 산재보험에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해결 방안은 다음 기사에서 더 자세하게 다뤄보겠습니다.


연재기사 
1. 그러게 누가 다치래? 이게 의사가 할 소리인가요?  http://laborhealth.or.kr/37804
2. 욕하고 소리지르는 상사, 이렇게 대처하세요        http://laborhealth.or.kr/38336
3. 사망한게 아니면, 산재신청 절대 못해요              http://laborhealth.or.kr/38420
4. 남은 건 왼손 엄지 하나, 다친 몸보다 힘든건        http://laborhealth.or.kr/38586
5. 자동차 만드는게 꿈이었는데, 왜이렇게 되었을까요?  http://laborhealth.or.kr/38612
6. 환자 직업 물어보는 의사가 좋은 의사인 이유       http://laborhealth.or.kr/38780
7. 50년된 산재보험, 과연 괜찮은 사회보장 제도 일까요?  http://laborhealth.or.kr/38843
* ‘일하는 사람의 인권’ 열개의 진료실 가이드 PDF파일 다운 http://laborhealth.or.kr/37261
* 산재보험, 이것만은 알고가자       http://blog.naver.com/laborhealthh/2200075585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