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질환, 산재인정 눈앞?
행정법원 1월24일 선고 … 대법원 판례와 다른 결론 낼 가능성 높아
2006-12-26 오후 1:46:26 게재
대법원 판례의 근거
대한간학회, 근로복지공단 용역을 받아 2001년 “과로 및 스트레스는 간 질환의 발병ㆍ악화와 관계가 없다.”
서울행정법원(2006년 12월)
“많은 의사들은 스트레스가 간 질환에 영향을 준다는 의견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안다 … 대법원이 받아들인 보고서에 부족한 점이 있다.”
많은 직장인들이 연말을 맞아 올해 목표 달성, 야간근무, 잦은 접대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직장인이 과로와 심한 스트레스로 건강을 해쳐도 산업재해 판정을 받기 쉽지 않다. 특히 간질환과 스트레스의 인과관계는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2002년 10월 대법원은 대한간학회가 작성한 보고서 등을 근거로 ‘과로나 스트레스로 간질환이 생기거나 악화된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가 확립된 이후 ‘과로·스트레스로 인한 간질환 악화’ 주장은 하급심에서 승소한 사례가 있지만 대법원이 이를 인정한 경우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만성간질환자의 약 70% 이상이 B형간염을 앓고 있고 전체인구의 5~7%가 B형간염 보균자인 상황에서 간질환으로 사망한 근로자의 산재 판정을 둘러싼 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법원 판결에 중요한 기준이 된 대한간학회 보고서의 문제점을 처음으로 집중제기한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그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해당 재판은 내년 1월 24일 선고를 앞두고 있는데 대법원 판례와 다른 결론을 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재판과정에서 대한간학회 보고서의 허점이 확인된 만큼 대법원도 하급심의 판단을 일정부분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 1월 24일 대법원 판결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판결이 나올 경우 간질환 사망 근로자 유가족들의 유사 소송이 잇따르는 등 파장이 예상된다.
지난 21일 서울행정법원에서는 6건의 각각 다른 사건, 12명의 원고 피고측 소송 대리인이 한자리에 모인 이색 재판이 열렸다.
산재 사건 전담인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김상준 부장판사)는 간질환 사망 근로자의 유가족이 근로복지공단과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을 상대로 ‘유족보상금 부지급 취소 소송’을 제기한 6건의 사건을 모아 집중심리를 벌였다. 이날 재판에는 대법원 판례에 영향을 미쳤던 대한간학회의 ‘간질환에 대한 업무상 질병인정기준’ 보고서를 작성한 전문가도 참가해 3시간이 넘는 질의 응답이 진행됐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사들은 스트레스가 간 질환에 영향을 준다는 의견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하급심에서 대법원 판례를 따르고 있지만 대법원이 받아들인 보고서에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대한간학회 보고서를 작성한 이 모 박사에게 △대한간학회 보고서가 이번 쟁점과 관련해 기존의 판례를 일부 잘못 인용했고 △스트레스에 대한 연구는 빠졌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대한산업의학회가 제출한 문서도 공개됐다. 재판부는 이 문서에서 제시한 부분을 들어 “대한간학회의 보고서(결론)는 적당한 육체활동이 간질환을 악화시키지는 않는다고 한 것이지 과로와 간질환 자체가 관련 없다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이 모 박사는 “인정한다”고 답변했다.
원고 측 소송 대리인 중 한명도 “육체적 활동과 업무상 과로는 다른 종류”라며 보고서의 연구 결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판례에 영향을 미친 보고서가 피고측인 근로복지공단의 용역을 받아 작성됐고 작성시기도 이미 수년전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그러나 이 모 박사는 “연구를 진행하던 시점 이후에도 과로나 스트레스가 간질환을 유발하거나 악화시켰다는 의학적 근거가 없다”며 “간질환과 스트레스 상관성에 대한 연구가 없었던 것은 고혈압 등의 다른 질병과 달리 간질환에서는 스트레스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B형 간염 보균자인 운동선수가 스트레스를 받으며 격렬한 경기에 여러번 참가해도 간질환이 악화되지 않는 사례를 들었다. 즉 만성간질환이 악화되는 요인은 ‘술’이나 ‘간에 부담이 되는 약’ 복용 등 부적절한 건강관리이지 과로 그 자체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피고측 소송 대리인중 한명도 “스트레스가 간질환을 악화시킨다는 의학적 연구결과나 검증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전예현 이경기 기자 newslov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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