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쑤시고 다리도 퉁퉁 붓는다
[기획연재/산재 사각지대 ‘서비스업 여성 노동자’]①계산원

구은회 기자/매일노동뉴스

소득이 적은 사람이 소득이 많은 사람보다 건강하지 않다. 학력수준이 낮은 사람도 학력수준이 높은 사람보다 건강하지 않다.

우리 사회는 건강 불평등 심각하다. 이 가운데 여성이 가장 많이 종사하는 서비스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 상태는 매우 심각하다. 산업재해 예방의 사각지대에 처해있다. <매일노동뉴스>는 3회에 걸쳐 ‘건강은 곧 사치’라고 인식하며 살아온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봤다. -편집자-

<연재 순서>
1회-서서 일하다 골병든 계산원
2회-화상위험에 노출된 조리사
3회-간호하다 병에 걸리는 간병인

종일 서서 일하는 계산원, 근골격계 하지정맥류 질환 노출
작업환경 개선, 업무스트레스 전담기구 필요

서울 면목동 소재 모 백화점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 주부 박은영(가명·46)씨는 10시까지 출근해 30분간 청소와 제품 가격표를 달면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준비가 끝나면 저녁 8시까지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에서 계산업무를 본다. 백화점 세일이나 특판기간에는 30분~1시간가량 연장근무를 하기도 한다. 퇴근시간까지 계산대 앞에 서서 일하는 박씨에게 주어진 휴게시간은 1시간30분. 한 시간은 점심시간이고 30분은 간식시간이다.

박씨는 보통 30분의 간식시간을 10분씩 쪼개 쉬는 시간으로 활용한다. 하루 8시간 이상을 꼬박 서서 근무하는 박씨는 “한 자리에 서서 물건 옮기고, 바코드 찍고, 계산기 두드리는 업무를 반복 하다보니 퇴근할 무렵에는 손목, 어깨, 허리가 쑤시고 다리가 퉁퉁 붓는다”고 말했다.

경기도 부천 소재 모 할인점에서 계산원으로 근무하는 이수진(가명·33)씨. 그녀 역시 온몸이 쑤시고 결리는 고통 때문에 종종 한의원을 찾아 침을 맞는다. 이씨는 “몸이 아픈 건 약 먹고 침 맞으면 낫지만, 정작 힘든 건 따로 있다”며 “손님들에게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대인기피증세가 생길 지경”이라고 말했다. 반말하는 손님, 욕설을 퍼붓거나 심지어 폭력을 행사하는 손님, 무작정 환불을 요구하는 손님들을 상대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스트레스를 풀 곳도 없다. 그녀는 “아랫사람 대하듯 하는 손님들을 대하며 ‘내가 못나서 이런 데서 일 한다’는 자기비하에 빠지기도 하고, 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식구들에게 짜증을 부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다’는 이들의 하소연은 유통업 계산원으로 종사하는 노동자의 공통적인 불만이다. 허리를 굽히거나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작업을 반복하다보니 허리와 어깨에 통증을 느끼는 근골격계질환이 찾아온다. 장시간 서서 일하다보니 몸의 피가 중력의 힘을 받아 아래로 쏠려 종아리 부분의 핏줄이 불거지고, 구부러지는 하지정맥류도 찾아온다. 게다가 스트레스로 인한 만성 두통과 소화불량이 나타나기도 하고, 화장실을 자주 가지 못해 방광염에 걸리기도 한다. 또, 24시간 운영하는 일부 할인점에서 근무하는 계산원의 경우, 교대근무로 인한 수면장애, 위장질환, 심혈관계질환 등으로 건강을 위협받기도 한다.

목 어깨 결리고 다리 붓고

유통업 계산원의 몸이 병들어 가는 요인은 무엇일까. 지난 2005년 ‘근막통증후군’(목과 어깨를 과다 사용하거나 굽힘 과다로 발생)으로 직업병 판정을 받은 뉴코아아울렛 계산원 조현진(25)씨의 말을 들어보자.

“일단 포스(계산대)가 너무 좁다. 가끔씩 스트레칭이라도 해 줘야 몸이 덜 아픈데, 작업대가 너무 좁아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다. 계산대 높이도 문제다. 나는 키가 큰 편인데, 계산대가 너무 낮아 업무시간 내내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하루 평균 1,500건 넘는 계산을 처리하는데, 고개도 못 들고, 손목하고 어깨는 계속 움직이다 보니 목 주변부터 팔목까지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통증이 심해 밤마다 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당시 직업병 판정을 받고, 3개월 넘게 요양을 했다는 조씨. 당시 그녀는 담당 의사로부터 직업을 바꾸라는 조언을 듣기도 했다. 당시 산재 환자가 발생하자 뉴코아아울렛은 사내에 간호실을 설치하고 간호사를 배치했다. 그러나 조씨는 “간호실이 생겨 좋긴 하지만, 나 같은 근골격계 환자에겐 별로 소용이 없는 것 같다”며 “계산대가 불편해서 생기는 병이니만큼, 회사가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계산대로 교체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 조씨의 지적처럼 높이 조절이 불가능한 작업대가 계산원 근골격계 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높이가 맞지 않는 계산대 때문에 계산원들은 하루종일 불편한 자세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그 결과 요통, 추간판탈출증(디스크), 염좌, 근막통증후군, 근육경련 등이 발생한다.

‘2001 아울렛’에서 근무하는 양희자(47)씨는 지난 2000년 하지정맥류로 직업병 판정을 받고 4개월간 요양한 경우다. 다른 계산원들과 마찬가지로 식사시간을 제외한 모든 업무시간에 서서 근무했다는 양씨. 그녀는 “다리가 퉁퉁 부어서 터질 것 같고, 시큰시큰한 통증을 느꼈다”며 “수술 후 울퉁불퉁 튀어나왔던 핏줄 자국은 다 없어졌는데, 최근에는 수술 받지 않은 다른 부위에서 비슷한 통증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자주 쉬어야 근골격질환 예방”

그렇다면 여성 계산원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근골격계 및 하지정맥류 질환을 사전에 예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업무 시간 틈틈이 쉬고, 스트레칭을 자주 해주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김영경 산재의료관리원 재활의학과 과장은 “근골격계질환은 특정 근육을 반복적으로 사용할 때 발생한다”며 “자주 사용하는 근육을 스트레칭 해주면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또 “장시간 근무로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어야 하는데, 단 몇초만이라도 수시로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근육대사를 활발하게 하고 엔돌핀을 발생시키는 조깅, 걷기, 수영 등 유산소운동도 근골격계 질환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정맥류의 경우 오래 서서 일하지 않는 것이 최선책이나,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압박스타킹 등 보조기구의 도움을 받는 방법이 있다. 이기복 산재의료관리원 흉부외과 과장은 “혈류가 정체되면서 발생하는 하지정맥류는 다리가 무겁고, 걸을 때 통증이 느껴지고, 쉽게 저리고, 혈관이 굵어져 심할 경우 염증으로 번지는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며 “여성의 경우 미관상 좋지 않기 때문에 압박스타킹 등을 이용해 질환을 예방하는 것이 좋고, 근무 시간 도중 주기적으로 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직업스트레스 전문 기구 사내에 설치해야”

육체노동의 결과 찾아오는 신체질환은 정확한 예방책과 치료법이 존재하지만, 이른바 ‘감정노동’(다른사람의 감정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규제하는 것)에서 기인하는 직업스트레스와 관련 질환들은 ‘스트레스 요인’을 제거하는 것 외에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

유럽연합이 지난 2000년 유럽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해 실태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업스트레스는 요통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노동자가 증상을 호소하는 건강문제로 나타났다. 유럽 노동자 중 28%가 직업 스트레스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유럽에서 병가를 내는 노동자의 25%가 직업스트레스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도 254개 사업장 7,000여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유사한 조사가 진행된 바 있는데, 조사대상의 22%가 고위험 스트레스군으로 나타났다.

매일 천명 이상의 손님을 상대하는 계산원의 경우, 감정노동으로 인한 직업스트레스가 높은 직업 중 하나다. 스트레스가 과중해질 경우 계산원들은 하급직원이나 동료, 부모, 자식 등에 짜증을 부리고 화풀이를 하는 등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마음은 침체의 늪에 빠지는 가면우울증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또는 내가 남이 된 것 같은 이인화현상을 겪기도 하며, 심할 경우 화병으로 번지기도 한다. 신체적으로는 의욕상실로 인한 피로감 누적, 소화불량, 불면증, 생리불순, 과민성대장증후군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윤석진 노동건강연대 정책부장은 “직업스트레스 질환의 발생을 줄이려면 유해요인과 특별히 문제가 되는 부서를 찾아내고, 위험성을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직업스트레스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고용불안이나 전환배치 등도 계산원들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백화점이나 할인점 같은 대형 유통업체의 경우 외환위기 이전까지 계산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사례가 일반적이었다.

외환위기 이후에는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비중이 늘어 현재는 계산원의 50%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런가하면 최근에는 각 매장에 파견 나와 있는 협력업체 직원들이 전자단말기를 활용해 계산업무를 직접 처리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기존에 고용된 계산원들에 대한 전환배치가 비일비재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철우 현대백화점노조 정책국장은 “단말기가 도입되면서 계산대 수가 줄어든 게 사실이고, 부가적으로 전환배치가 이어진다”며 “계산원들 사이에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고, 이 같은 환경이 직업스트레스로 작용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