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이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논하라”
노조가 기업활동 감시의 주도자로 나서야

김미영 기자

“국제적으로 확립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1차적인 영역은 그 기업의 ‘노동자(종업원)’의 문제이다. 이 점에서 한국 기업들의 왜곡된 ‘사회적 책임’ 논의를 바로잡는 역할은 노동조합운동과 시민사회의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후진적인 노사관계로 정평이 나 있는 우리나라에서 지금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은 고사하고 법적 책임조차 다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산별교섭이 제도화되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 문제는 주요하게 언급될 수밖에 없다.”(홍진관 민주노총 정책국장)

“일반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는 나라를 보면 영미권이나 일본처럼 노조의 영향력이 약한 편이다. 그러나 우리나의 경우 기업의 ‘기업적 책임’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다만 강한 산별노조가 등장한다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하나의 레토릭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 교수)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RS)이 최근 기업 전략 및 공공정책의 주요의제로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노동계에서 처음으로 이와 관련한 토론회가 열려 관심을 모았다. 11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화섬노조와 ICEM(국제화학에너지광산일반노련)이 공동으로 주최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비정규 노동’이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바로 그것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노동조합운동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의제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정책 담론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토론자로 참석한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 교수는 “기업을 압박하는 일종의 수단으로는 작용할 수 있겠지만 결국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실질적 힘은 노조에서 나오기 때문에 강력한 산별노조가 전제되어야 한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기업의 자선행위나 사회공헌과 명확한 구분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개념부터 이것이 노동운동에게 던지는 함의는 무엇인지 꼼꼼히 살펴보자.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낳은
또다른 경영전략인가? 시민규제인가?

노광표 부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최근에 급부상된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출발과 함께 지속된 쟁점이라고 소개했다. 각 나라마다 산업사회의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한 기업에 대한 ‘법률적 규제’와 노동자의 권리 보장, 복지국가라는 시스템 등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의 세계화와 결합된 산자유주의 체제로 세계경제 패러다임이 한순간 뒤바뀌면서 이러한 공적 규제가 형해화되자 다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의제가 떠올랐다는 것이 노 부소장의 설명이다.
오늘날 200개 기업이 세계경제의 1/4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다국적기업은 기업내부거래를 포함해 국제무역과 투자 흐름의 2/3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이 결과 다국적기업의 자율적 의사결정은 해당 기업의 이익(또는 손실)에 끝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종업원, 소비자, 지역사회, 하청기업 등과 커다란 이해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따라서 기업과 관계를 가지는 사회구성원 및 이해당사자 조직들은 이에 상응하는 기업의 책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또한, 글로벌기업에 의한 노동시장 유연화와 생산시설 해외 아웃소싱에 맞선 시민사회와 노동계의 요구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화두를 던진 한 축이다.
노광표 부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경제의 세계화와 다국적기업의 영향력 확대라는 새로운 환경과 이에 맞선 시민사회의 압력에 조응한 기업의 전략에서 출발한 의제”라며 “이 결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한편에서는 기업 주도의 경영전략으로 그 위상이 폄하되기도 하며, 국가 규제를 대신해 기업의 정책을 바꾸는 시민규제라는 적극적 의미로 파악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단체교섭의 보완 또는 의제의 확장

노광표 부소장은 “노동자(노동조합)는 CRS 논의에 있어 1차적 이해당사자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다”며 “법률과 단체협약 등에서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기업의) 핵심 구성원에 대한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단체교섭권을 보완할 수 있는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노동자 대표성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세계화와 결합된 다양한 형태의 경영 전략은 기업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위해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들에 대한 의무를 좀더 쉬운 방법으로 회피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특히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소싱에 따른 공급업체와 하도급 업체에서 발생하고 있는 노동문제에 단체교섭은 아무런 힘을 못 쓰고 있다. 노광표 부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노동조합에 던지는 함의는 ‘기업 활동’에 따른 노동자의 ‘위험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스스로 기업의 핵심 이해당사자로서의 자기 위상을 확립하는 것과 함께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기업 의사결정 구조의 참여 보장을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노동조합운동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새로운 정책 담론으로 형성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노 부소장의 주장이다.
87년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 활동에 주력했던 노동운동은 외환위기 이후 고용안정과 비정규직노동자 차별 철폐에 집중하고 있다. 여전히 작업장(기업)의 테두리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노 부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노동운동의 의제를 사회화하고 확장할 수 있는 유력한 무기로 작용할 수 있다”며 “노동조합 역할이 기업의 ‘법적·경제적·환경적·사회적’ 역할을 감시하는 주도자로 나설 수 있는 계기를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노 부소장에 따르면 기존의 단체교섭에서는 담지 못했던 문제, 즉 간접고용의 차별 금지, 생산 사슬 및 하도급 관계, 지역사회 등 다양한 영역의 문제를 ‘기업의 사회적 책임 논의’를 통해 다룰 수 있다. 또한 이는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이 소통·연대할 수 있는 매개 지점이자 국제노동운동의 연대를 실현할 수 있는 매개고리로도 작용할 수 있다.

법적 책임도 안 지는데 사회적 책임을?

하지만 이날 토론회에서는 우리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을 논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부정적 반응도 높았다.
이주희 교수는 “이미 다국적기업의 글로벌 소싱 과정에서 발생한 부당노동행위에 강제력 없는 조항들로 구성된 국제노동기준들의 한계는 드러났다”며 “그나마 미국과 유럽에서는 소비자보이콧운동 정도로 맞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결국 기업의 책임을 강제하는 실질적 힘은 강한 산별노조로부터 나온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노조가 이를 통해 기업을 좀더 압박할 수 있는 하나의 레토릭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 교수는 “비정규직화, 외주화 등 지금의 기업 경영전략은 브라질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노동운동조차 고전을 면치 못할 정도로 전세계적인 문제”라며 “때문에 국제적 노동단체의 전면적 개입이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홍진관 민주노총 정책국장 역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기업의 지속가능보고서’를 발표한 삼성SDI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업으로 손꼽히고 있지만 지난해 노조결성과 관련한 불법위치추적행위를 저질렀어도 보고서에서 이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없었다”고 지적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기업홍보에 역이용되는 세태를 꼬집었다.
그러나 홍 정책국장은 “산별교섭이 제도화되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 문제는 주요 의제로 등장할 수밖에 없으며, 이에 대한 노동조합의 감시와 규제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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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기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일반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 활동을 통해 이해관계자를 만족시키고 경제, 사회, 환경문제를 기업이 속한 공동체와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위한 책임있는 활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지금까지 여러 학자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개념을 규정해 왔으나 이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여전히 진화 중에 있다. 현재 통용되는 의미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가장 먼저 제기(1953년)한 보웬(Bowan)은 “기업가에 주어진 사회 전체의 목적이나 가치에 알맞게 자신들의 정책을 추구하고 의사결정을 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행동에 옮기는 의무”라고 정의하고 있다. 캐롤(Caroll)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사회적 성과모델의 한 부분으로 포함시켜 경제적·법률적·윤리적·자선적 책임으로 구분한다. 최근에는 Bredgaard에 의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누가, 어떠한 방식으로 추진하느냐에 따라 유형이 구분되기도 한다.<표 참조>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흔히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기업의 사회공헌이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이윤을 사회 환원하는 사회공헌과 사회적 책임의 범주는 다르다. 기업의 자선행위가 사회적 책임의 한 범주는 될 수 있지만 환치될 수 업다. 실제로 미국의 엔론(Enron)은 사회공헌을 강조하는 대표적 기업이었지만 분식회계에 따른 도산으로 엔론 노동자와 국가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