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국물에 데이고, 솥단지 나르다 삐끗
생리불순에 하혈까지…”해고 당할까봐, 산재 처리 말도 못 꺼내”
소득이 적은 사람이 소득이 많은 사람보다 건강하지 않다. 학력수준이 낮은 사람도 학력수준이 높은 사람보다 건강하지 않다. 우리 사회는 건강 불평등 심각하다. 이 가운데 여성이 가장 많이 종사하는 서비스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 상태는 매우 심각하다. 산업재해 예방의 사각지대에 처해있다. <매일노동뉴스>는 3회에 걸쳐 ‘건강은 곧 사치’라고 인식하며 살아온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봤다. -편집자-
<연재 순서>
1회-서서 일하다 골병든 계산원
2회-화상위험에 노출된 조리사
3회-간호하다 병에 걸리는 간병인
인천에 위치한 한 종합병원 식당에서 조리사로 근무하는 황정옥(50)씨. 출근시간인 새벽5시30분보다 늘 30분 먼저 출근해야만 조리와 배식 시간을 맞출 수 있다는 그녀는 퇴근시간인 오후 2시30분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 병원에서 황씨를 포함한 조리사 수는 모두 16명. 평균 320명에 달하는 입원 환자들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점심에는 250명분의 직원식사를 별도로 준비한다. 저녁식사와 야식은 교대조의 몫.
수백인분의 식사를 준비하다보니, 화장실 갈 시간도 모자란다는 그녀. 근무 중 쉬는 시간이라고는 15분 남짓의 식당 직원 식사시간이 전부다.
“아무래도 무거운 식기나 국솥, 밥솥을 수시로 나르다 보니 허리나 어깨가 많이 아프죠. 식당 바닥에 물기가 많아 종종 미끄러지기도 하고, 뜨거운 국을 쏟거나 튀김용 기름이 튀어 화상을 입기도 하죠. 칼처럼 날카로운 도구에 베이는 사고도 많이 발생하고요.
황씨와 함께 근무하는 조리사들은 보통 40~50대 여성. 대부분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 가장들이다. 식당 업무가 워낙 중노동이다보니 몸에 이상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 생리불순과 하혈이 번갈아 찾아오기도 한다. 이 병원 조리사 중 10명 이상이 이 같은 증상으로 고생하다가 자궁 적출 수술을 받았다.
“의사 말로는 피곤해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하는데, 업무와 증상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더라고요. 이 일을 그만두면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해지니까, 아파도 참고 일하는 수밖에요.”
황씨는 “환자가 발생해도 병원측이 공상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치료비만 겨우 보상 받는다”며 “해고 당할까봐 두려워, 병원에 산재로 처리해달라고 요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원으로 일하는 하영숙(51)씨는 최근 관절염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다. 겨울방학 기간을 이용해 병원에 찾아가 엑스레이를 찍어본 결과, 목 밑에 있는 쇄골에 관절염이 생겼다는 진단이 나왔다.
“보통 관절염이라는 게 손목이나 무릎 같은 데 생기잖아요. 의사 하는 말이, 너무 힘든 일을 해서 남들이 잘 안 걸리는 부위에 관절염이 생겼다더라고요. 식당 일 계속하면 더 아플 거라는데, 일을 그만둘 수도 없고…. 병원에서 처방 받아온 약 먹으면서 참아봐야지 어쩌겠어요.”
하씨는 학교식당 조리원들이 ‘골병’이라고 불리는 ‘근골격계질환’ 질환을 달고 산다고 말했다. 재료를 손질하고, 음식을 조리하고, 배식대에 나르기까지 손목과 팔의 근육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씨는 조리원들에게 나타나는 골병 증상이 ‘직업병’이라고 생각하지만, 산재 보상을 받을 길을 거의 막혀 있다고 말했다. 산재 심사를 청구해도, “40~50대 여성들에게 나타는 ‘퇴행성 질환’으로 직업병이라고 인정하기 힘들다”는 답변이 되돌아오기 일쑤. ‘일하기 힘들면 그만두라’는 학교 측의 강압적 태도도 산재 신청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그녀는 “‘식당일 힘든 거 모르고 들어왔냐?’는 학교 관계자들의 노골적인 핀잔이 듣기 싫어 아파도 그냥 참고 만다”며 “내 돈 들여 침 맞고, 파스 붙이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 “중노동 하지만, 쉬는 시간 없어”
학교나 병원 내 대형식당에서 근무하는 조리종사자는 직업 관련성 사고 및 질환의 발생 위험이 높은 직종에 속한다. 높은 온도와 습도, 가공 세척제 및 조리화학물질에 노출되면서 각종 피부질환이 생기기도 하고, 화상을 입거나 칼 같은 조리기구가 베이는 사고도 자주 발생한다. 또한 손목과 어깨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무거운 조리기구와 배식대를 운반하면서 단순반복 작업으로 인해 주로 근육과 신경, 관절 부위의 통증을 동반하는 근골격계질환이 나타나기도 한다.
직업과 관련된 사고 및 질환의 발생 원인은 ‘일은 많고 쉬는 시간은 거의 없는’ 조리종사자들의 노동조건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학교급식의 경우 학생 200명당 1명의 조리원을 확보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비용 등의 이유로 이 같은 규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는 음식의 질 저하로 이어지기도 하고, 해당 조리원의 휴게시간 박탈로도 나타난다.
열악한 작업환경도 사고 및 질환의 발생을 높이는 요인이다.<표1~3> 지난 2004년 노동건강연대와 전국여성노조가 학교급식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 한 결과에 따르면, 조리노동자들의 75% 이상이 “소음, 고열, 다습한 환경이 종사자들의 건강을 해칠 정도로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또한 응답자의 37.5%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안전장갑을 지급받지 못했고, 응답자의 56.7%는 “최근 3년 간 4일 이상 치료를 요하는(산재 보상의 대상이 되는) 사고나 질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그런가하면, 응답자의 98.8%가 ‘산재 보험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나, 실제 ‘산재 보험을 이용했다’는 응답은 9.9%에 그쳤다.
조리종사들의 노동조건과 작업환경은 이들의 직무스트레스를 높이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조리종사자들은 ‘직무재량도는 낮으면서 직무요구도는 높은’ 군으로 평가된다. ‘자신의 의지대로 일의 진행 여부를 결정할 수 없는 반면, 해야 할 일은 많은’ 직업이 조리종사자다.
관련 조사에 따르면, 조리종사자들은 서비스 관련 단순노무자, 고객서비스 사무 종사자, 운전원 및 관련 종사자보다 직무재량도는 낮으면서, 컴퓨터 관련 준전문가 등에 비해 직무요구도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직무불안정성’은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직무불안정성 평균 점수보다 높게 나타났다.
* 전업주부 보다 근골격계질환 다섯배
조리종사자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는 매우 다양하다. 조리홈으로부터의 자극물질, 알레르기 유발물질, 소음, 연기 극단적인 온도, 혼잡, 스트레스, 전자파 등이다. 이 같은 위해요소들은 사고성 재해, 피부염, 천식, 요통 및 직업 관련성 상지 장애 등 근골격계질환, 사회심리적 장애, 구강 및 후두암 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노동건강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학교급식 조리종사자의 34.2%가 사고를 경험했고, 54.3%가 근골격계 질환의 자각증상를 호소했다. 또한 근골격계 질환 의심자는 26.2%, 피부질환은 47.2%가 호소했다.
그런가하면, 조리종사자가 전업주부에 비해 사고 및 각종 질환에 얼마나 많이 노출돼 있는지 비교 분석한 결과, 조리종사자는 전업주부에 비해 사고는 7.86배, 근골격계 질환은 4.89배, 피부질환은 3.22배 발생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한편, 화상, 삐끗함, 베임, 절단, 끼임 등 사고를 당했을 경우, 산재보험을 통해 치료비를 부담한 경우는 9.1%에 그쳤다.<그림1·표4> 그 이유를 묻자 응답자의 32.3%가 ‘산재 신청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워서’라고 답했고, 응답자의 11.3%는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라고 답했다.
* “산재 요구하면 해고당하기 십상”
정채경희 산업의학전문의(건국대 충주병원)는 “주부들이 김장 한번 하고 나면 몸살 나듯이, 하루종일 습한 주방에서 위험한 기구를 다루며 반복 작업을 하는 조리종사원들은 온 몸에 병을 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들어 병원 등의 대형 식당이 외주화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종사자들의 근무여건이 점점 열악해지고 있고, 몸이 아파 산재 신청하려다가 자칫 해고당하기 십상”이라며 “중노동으로 병들어가는 여성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구조적 개선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력 충원을 통해 조리종사자 1인당 급식인원을 조정해야하며, 적절한 휴게시간이 보장돼야 하고, 근골격계질환 등이 나타날 경우 초기에 치료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이 정비돼야 할 것”이라며 “그에 앞서 ‘어차피 집에서 다 하는 일인데, 주방 일이 힘들면 얼마나 힘들다고’하는 식의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