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서치경 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

제목 : “건강하고 안전한 노동에서 배제된 여성 비정규직”

(본문)—

얼마 전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에서 내놓은 ‘10년 후 한국사회의 양극화’ 10개의 가상사건 중에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있다.

“모든 여성은 비정규직”

이미 여성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율이 70%를 훌쩍 넘어선 지금, 이런 전망은 숨이 막힐 정도로 피부에 와 닿는다. 오히려 10년까지나 갈까, 당장 내년에라도 저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여성노동자의 비정규직화는 결국 여성노동자의 빈곤으로 귀결된다. 이미 여성가구 중 39%가 월 50만원 이하의 소득으로 살고 있으며 이중 20%는 여성가장이고 상당수가 빈곤가구를 형성하고 있다. 이 수치는 남성의 3배에 달하고 있다. 국제연합개발기구(UNDP)는 “빈곤이 여성의 얼굴을 가졌다”고 말한다. 여성의 가난, 여성노동자의 가난은 그만큼 심각하다.
게다가 여성노동자는 임시직, 일용직이 82%를 차지하는 만큼 고용조건이 매우 불안정하고 구직, 저임금, 해고, 실업의 악순환을 반복하기 일쑤이다.
이러한 여성노동자의 저임금과 고용불안은 결국 여성의 불건강으로 연결된다. 얼마 전 발표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망률이 정규직보다 3배가 높으며, 두통, 소화성궤양, 관절염, 요통, 사고, 중독의 만성질환도 더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체상의 불건강도 문제이지만 정신건강상의 불건강도 심각하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회, 심리적 건강상태’는 정규직보다 열악하다. 자살충동을 느낀 비정규직노동자의 수는 정규직 노동자의 1.6배였다. 특히 여성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더 심각하여 스스로 건강하지 못하다고 대답한 비정규직 여성은 정규직의 2배, 또 최근 1년간 자살충동을 느낀 비정규직여성노동자는 33%에 달하였다.
현재 일하는 여성은 600만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70%인 4백20만 명 정도가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어떠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휴식을 취해야 할 가정은 여성노동자들에겐 또 하나의 전쟁터이다. 일을 하는 여성들은 일주일에 20시간이 넘게 가사 일을 하고 있으며 남편들이 가사노동을 4시간하는 것에 비하여 5배의 노동을 하고 있다. 직장에서 일하고, 다시 집에서도 일하는 ‘하루종일노동’이 수십 년 동안 반복되면서 여성노동자들에게 건강관리는 멀고도 먼 이야기가 된다.
이들은 출산과 양육, 재생산의 요구에 응하여 일하기 때문에 늘 피곤하고 쇠약해지지만 자신의 몸을 돌볼 여유는 없다.
‘난 아침에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나는 내 몸을 이끌고 일터로 간다. 하루종일 기운이 다 떨어진 기분으로 로봇처럼 앉아서 일한다. 그리고 난 남편과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버스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이렇든 여성노동자들은 고용불안, 저임금, 휴식부재 등의 문제를 갖고 있지만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할 점은 ‘건강하고 안전한 노동’으로부터의 배제이다. 모든 노동자는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노동자’라는 영역 안에 영세사업장,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 여성, 이주, 비정규직 노동자는 아직 포함되기 힘든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4대 보험가입이 어렵다는 것은 곧 건강한 노동자로 살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시장 안에서 노동력으로 먹고살아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좀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는 없는 것인가? 노동건강연대에서 여성노동자를 위한 교육매뉴얼을 생산한 것은 이를 위해서이다. ‘일하는 여성의 건강이야기’는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의 의미를 이해하고 노동의 형태에 따른 질환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일차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정보를 담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이 많이 종사하는 대형마트의 계산원(캐셔)·급식조리노동자·간병인노동자·의류제조업노동자 등의 4개 직종을 우선적으로 제작하였으며 직종별로 자주 발생하는 질환과 사고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 마지막엔 법적 권리와 상담 받을 수 있는 곳의 명단 등을 함께 실었다. 현재 노동조합과 노동단체들을 통하여 배포중이며 올해 2차 작업을 통해 또다른 4개직종을 선택, 매뉴얼을 개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