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건강진단기관 모두 ‘엉터리’
노동부 120곳 중 119곳 법위반…지정취소 3곳 등 무더기 행정처분

연윤정 기자/매일노동뉴스

“솔직히 자격 의사 이름만 걸어놓고 무자격 의사가 검진하는 경우는 병원마다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있습니다.”

한 특수건강검진기관에서 직접 검진을 해왔던 한 산업의학 전문의의 말이다.

당초 산업의학 전문의 또는 산업의학과 레지던트 4년 이상 수련의나 해당분야나 사업장에서 4년 이상 실무·연구에 종사한 의사만이 특수건강진단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특수건강검진기관에서는 자격 미달의 레지던트가 하거나 임시직(파트타임) 의사들이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산업의학 면허를 가진 70대 고령자 의사의 이름만 걸어놓은 검진기관도 많다는 게 일선 전문의의 증언이다.

120개 중 119개 부실기관 적발

노동부는 지난해 9~12월 전국 120개 특수건강진단기관 일제점검을 실시한 결과 1곳을 제외한 119곳(99.2%)에 대해 무더기 행정처분을 내렸다고 21일 발표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노동부가 지정한 전국 120개 특수건강진단기관 중 지정취소 3개, 업무정지 93개(3개월 이상 48개, 3개월 미만 45개), 시정조치 23개 등 119개에 대해 행정처분을 내렸다.

특수건강진단기관이란 DMF, 톨루엔, TCE 등 117개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노동자 건강진단을 위해 노동부가 지정한 의료기관(대학병원 36개, 대한산업보건협회15개, 산재의료관리원 7개, 일반 병·의원 등 62개)을 말한다.

지정취소 기관은 안동 성소병원, 광주 한국연합의원, 수원 한국의원이다. 성소병원은 전담의사 없이 대행의사를 사용했으며, 한국연합의원은 지정의사 이름만 걸고 무자격자가 검진을 했으며, 한국의원은 산업의사가 명의만 걸어놓고 실제 근무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노동부는 이외에는 일체의 부실기관 명단과 행정처분 사유를 공개하지 않아 ‘껍데기’ 조사결과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이와 관련, 노동부는 행정처분을 받은 검진기관들의 반발 때문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무자격 의사가 노동자 생명 좌우

노동부가 이날 발표한 법위반 사례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무자격 의사의 건강진단 = 노동부는 특수건강진단을 실시하는 유해물질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의사나 수련의·전공의가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기관이 다수 확인됐고, 일부 기관은 의사가 출근하지 않거나 전담의사가 없는 사례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번에 지정취소 된 3개 병원이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건강진단 실시방법 미준수 = 노동부는 많은 기관이 노동자에 대한 문진 및 진찰 등을 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 실시하고 작업종료시 시료를 채취해야 하는 생물학적 노출지표의 시료 채취시기 미준수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고 밝혔다. 생물학적 노출지표검사란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의 신체에 유해물질이 흡수돼 체내에 축적된 정도를 확인하는 검사다. 물질에 따라 몸 밖으로 배출되는 시간이 달라서 작업종료 등 시료채취 시기를 지켜야 검사의 실효성이 있는데도 의사의 편의에 의해 작업 중 시료채취를 하는 등 방법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

◇건강진단 결과의 부실판정 = 직업병자를 일반질병자로 구분한다든지, 건강상태가 유해물질 취급이 곤란한데 작업이 가능하다고 하는 사례다. 또 생물학적 노출지표가 높아 유해물질에 과도하게 노출돼 노동자의 건강장해가 우려됨에도 ‘정상’이라고 판정한 사례 등 다수라고 노동부는 밝혔다. 이와 관련, 대표적인 것이 이번 일제점검 계기가 된 부산백병원 사례다. 부산백병원은 간기능이 현저히 악화돼 간기능에 치명적인 DMF를 취급해서는 안되는 노동자에게 근무가능 판정을 하는 바람에 해당노동자가 80일만에 사망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같은 사례 역시 노동부가 부실기관별로 적발사유를 전혀 공개하지 않아 기관별로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기가 힘들다는 맹점이 있다.

엉터리 검진에 경종 울려야

이번 결과는 부산백병원 사건을 계기로 노동부가 최초로 전국 특수건강검진기관을 조사해서 그 결과를 발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정부의 관리로부터 사실상 방치돼왔던 특수건강검진기관에 메스를 가하면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특수건강검진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도 됐다는 평가다.

그동안 노동부가 특수건강검진기관에 제대로 손을 못 댔던 것은 자체적인 의학분야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지난해 3명의 의사출신 사무관을 채용한 뒤 이들을 일제점검에 투입하면서 이번에 부실기관을 무더기로 적발할 수 있었던 것.

하지만 단순히 부실한 특수건강검진기관을 적발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번 기회에 근본적인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이와 관련, 노동부는 이날 표적장기별 검사제 도입, 주기적 점검 실시, 재적발 기관 지정취소 등의 제도개선을 밝혔다. 표적장기별 검사제란 유해물질로 인해 건강장해가 발생하는 신체기관(간장, 신경계, 피부, 호흡기, 신장 등)별로 이상 유무를 검사하는 제도를 말한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제도개선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특수건강검진 과정에 노동자(노조)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근본적인 제도개선을 위한 논의가 즉각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솜방망이 처벌’ 지적도

이와 함께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행정처분 수위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본지가 별도로 입수한 노동부 특수건강검진 일제점검 부실기관 명단에 따르면 업무정지를 받은 93개 기관 중 1개월 미만 이하 23개, 2개월 이하 기관은 19개 등 2개월 이하 기관이 42개 기관으로 절반에 가까운 45.2%를 차지했다.

일반적으로 특수건강검진 시기가 4월 초부터 시작되는 점을 감안할 때 개점휴업 중인 검진기관에 1~2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으니 효과가 있겠냐는 지적이다.

특수건강검진제도 개선 목소리 높아
직업병 예방 취지 무색…진폐·소음성난청 이외 직업병 못잡아내

이번 노동부 점검을 계기로 근본적인 특수건강검진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검진제도라는 게 노동자들의 질병을 조기발견해 예방을 하자는 취지이나 실제 이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수건강검진제도 역시 ‘돈벌이 수단’으로만 전락해 이 같은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음이 이번 노동부 일제점검 결과 명백히 드러났다는 것.

이같은 문제의식은 이는 노동계뿐만 아니라 산업의학계 역시 마찬가지 입장.

임상혁 원진노동환경연구소 소장은 “지난해 부산백병원 사태가 터져나오면서 노동부 특수건강검진기관 일제점검은 해당 기관들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며 “이제는 기술적 점검에만 머물 게 아니라 노동자 건강을 위한 근본적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임 소장은 “우리나라 특수건강진단 결과를 보면 취지가 무색하게 직업병 조기발견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며 “직업병 발견도 진폐증이나 소음성난청 등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2005년도 특수건강진단 결과를 보면 직업병유소견자(만인률)의 경우 소음성난청이 62.9명으로 가장 많았고 진폐증 8.2%로 두 직업병이 70%를 넘어섰으나 금속·중금속중독이 4.6명, 특정화학물질중독 0.5명, 유지용제중독 0.1명으로 나머지는 미미했다.

임 소장은 “그 많은 직업병이 특수건강진단에서 제대로 발견되지 못하는 데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며 “사업장마다 특성을 살려 건강진단 조사방식을 전환해야 하며 (사업주가 검진기관을 선정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가 자유롭게 찾아가서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개선안을 제시했다.

노동계도 적극적인 특수건강검진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보건부장은 “이번 노동부 점검결과는 어마어마한 수치로 특수건강검진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는 걸 드러냈다”며 “특수건강진단제도가 직업병 예방과 노동자 생명을 지키는 유용한 제도가 될 수 있도록 근본적인 개선과 질 관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TFT 구성을 통해 산업현장의 노동자 목소리가 반영하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은기 민주노총 노동안전부장은 “그동안 민주노총이 참여할 수 있는 특수건강검진제도 개선을 위한 협의체를 마련할 것을 요구해왔다”며 “협의테이블을 통해 근본적 제도개선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07년02월22일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