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13 실태조사에 비친 노동자의 오늘

 

 

비정규노동의 최전선 안산시흥, 파견노동의 생얼


 

정현철 / 금속노조 안산·시흥 일반분회 분회장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20135~6600여명의 파견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파견노동자, 파견업주, 파견 사용사업주를 대상으로 한 면접조사, 현장취업을 통한 체험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9월에는 조사결과를 발표하였고, 안산?시흥지역 파견노동자들의 사연은 2013년 겨울을 넘어서는 지금까지도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안산시흥은 파견업체기준 10%가 모여 있고 전국 파견노동자기준 16.6%가 모여 있다고 합니다.


안산?시흥지역의 파견 대부분이 제조업 생산공정에 대한 단기파견이며, 노동시간은 평균보다 긴데도, 임금수준은 월 133만원수준입니다. 제조업 파견의 경우 일시적 사유로 인한 파견허용기간이 6개월인데 이를 넘기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단기파견을 남발하고 있고 파견법의 적용을 피하기 위한 위장하도급(사내하청) 의심사업장이 다수라고 합니다. 전국 어느 곳보다도 심각한 저임금과 불안한 고용에 놓여있는 안산시흥 파견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만나보겠습니다. 아래는 이번 조사에서 파견업체를 통해 공장에 취업한 경험을 보고서로 정리한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노동과건강> 은 파견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조건이 하염없이 추락하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노동현장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일부를 발췌하였습니다. 앞부분 노동자의 수기는 보고서의 일부분입니다. / 편집자

 

 

20111018일부터 117,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다. 하지만 난 세상이 얼마나 냉혹한지, 힘 없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가치 없이 여겨지고 있는지 너무도 아리게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직원들의 휴게실이라 하는 곳은 이른 아침마다 피로와 낯선 환경에 경직된 사람들로 가득하다. 여러 업체들을 통해 들어온 비정규직들이다. 도장반 남자 3, 용접반 남자 5어이, 이리로 오슈이름도 없는 이들이 손짓에 이끌려 여기저기로 흩어져간다.


작업장에서는 느린 듯, 하지만 멈추지 않는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앞을 지나는 물건을 놓칠까 바쁘게 손을 움직인다. 서로 이름은 묻지 않는다. 개인 사물함도, 작업복도 주어지지 않는다. 며칠 일하다 나가도 전혀 눈 깜짝 안 할 듯 한 기운이다. 때문에 일을 하면서도 이곳이 내 직장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본다. 모양도 색도 다른 작업복들, 각자 이전의 회사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모습이 꽤 기괴하다. 한 곳에 모여 있기는 하나, 한 회사에서 일하는 직장동료라기 보다 여기저기서 아무렇게나 짜깁기해 놓은 듯한 모습이다. 이 회사의 이름이 박힌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내가 정말 정직원이 될 수 있을까. 오래 일하다보면 정직원이 될 수 있단 업체 이사의 말은 내 불안감에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오늘도 3공정 아저씨는 12시간어치 허리를 팔아 어린 딸아이의 학원비를 벌어간다. 하루 종일 앉아 붙이는 라벨만 1,400개인 조선족 언니는 중국에 있는 가족들의 끼니를 책임진다. 천천히 구르는 컨베이어를 따라 한 가정의 하루가 피고 진다. 겨울 밤 방을 따뜻하게 해줄 가스비가,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뜨거운 국물 한 사발이 될 수도세가, 내 아이의 꿈이, 못 다 이룬 그 옛날 나의 꿈이 컨베이어를 따라 무덤덤하게 흘러간다. 아차, 하면 저 멀리 가버린다.


잔업을 마친 시간은 9. 피곤한 월요일이었지만 3주를 채운 날이었기 때문에 나름의 뿌듯함에 빠져있었다. 몇몇 얼굴을 트고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도 생겼다. 모두가 외로웠기 때문인가, 예상외로 먼저 말을 건네니 기다리던 친구를 만난 듯 반갑게 맞아주었다. 업체 이사에게 전화가 온 건 집 앞에 섰을 때였다. 길지도 않은 통화시간, 내용도 간단했다. 내가 일하던 라인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하여, 비정규직들은 출근을 못하게 됐다고. 당장 내일부터 나오지 말란 말에 뭐라고 답을 해야할지 몰라 연신 내일이요?’라며 되물었다. 한참을 집 앞에 서 있었다. 내일 출근을 위해 난 집에 들어가 잠을 잘 계획이었다. 그런데 내일 출근을 하지 말란다. 집에 들어갈 필요가 없어졌다. 잠을 잘 필요가 없어졌다. 내 일이 없어졌다. 내일이 없어졌다.

 

3주 전만 해도 나는 필요했다. 하지만 3주 뒤에 나는 필요가 없었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라는 것인가. 내가 살아가는 하루는 이 회사 주문량처럼 있다가 없다가 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다른 회사를 알아볼 시간도 주지 않고 이렇게 바로 내쳐버려도 되는 것인가. 알고 보니 나만이 아니라 같이 일하던 언니, 아저씨들도 잔뜩 잘렸더라. 117일 밤, 칼부림이 난 것이다. 한 달을 가득 채워 벌어도 마이너스를 면치 못하던 그 언니는 내일 당장 일을 알아본다 해도 최소한 하루 이틀은 비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