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 개정, ‘인술’이 아닌 ‘상술’ 부를 것”
임준 교수 “의료법 개정으로 국민부담 증가”…여야 3당·노동시민단체 ‘공감’
김미영 기자/매일노동뉴스
“병원 내에 산부인과같은 비인기 진료부서를 없애고 그 자리에 스타벅스 커피숍을 임대해주는 것이 의료서비스 육성입니까?”(이학승 전공의노조 위원장)
“보건의료는 산업화의 논리, 규제완화의 논리를 사용해도 무방한 대상이 아닙니다. 상품으로서 보건의료 서비스를 대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반드시 철회돼야 합니다”(임준 가천의대 교수·의료연대회의 정책부위원장)
“이번 의료법 개정안은 소수의 대형병원과 민간보험회사를 위한 법 개정 이상이 아닙니다. 의료법 개정의 초점이 병원 시설과 인력기준 강화와 노동자, 시민이 참여하는 환자 중심의 미래형 병원을 만드는 방향으로 이동되어야 합니다”(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기획실장)
보건복지부는 오는 25일 입법예고기간이 끝나는 대로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로 넘기겠다며 여전히 강공드라이브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의사들은 물론이고 보건의료 노동자, 사회시민단체까지 한 목소리를 이번 의료법 개정안은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국민과 의료공공적 관점에서 바라본 의료법 개정안’ 토론회에서는 이러한 각계 주장이 쏟아져 나왔다. 여야 3당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의료법 개정안이 의료공공성을 강화하기 보다는 영리를 추구하는 형태로 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공감을 표현하기도 했으나 미묘한 입장 차도 있었다.
“의료서비스 공급체계의 전면적 상업화”
이번 토론회의 발제자로 나선 임준 교수는 이번 개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정상적인 의료행위보다 영리추구적인 의료행위가 더욱 성행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보건의료 시장의 특성 상 공급자 유인수요, 즉 의사들이 소비를 부추길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경쟁이 격화될 경우 급격한 의료비 증가를 동반하고, 부적절한 서비스의 과잉공급으로 질마저 떨어지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준 교수는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면서 △주치의 제도에 기초한 1차전문의 자격과 업무를 법률로 규정할 것 △영리적 성격이 강한 개인에게 병원개설 자격을 제한할 것 △병상 증설 및 고가장비 구입 시 허가제를 도입할 것 △의료법인 이사회 구성 시 지역사회 및 내·외부 구성원 참여 보장 등을 주장했다.
여야 모두 “지나친 영리추구는 규제해야”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윤호중 열린우리당 의원은 “의료법 개정안은 단 1차례도 당정협의회를 거치지 않은 채 입법예고됐다”면서 “이번 의료법 개정안이 시장의 효율성을 끌어들여 의료산업을 육성하고 대신 정부는 보장성 강화와 공공의료 확충에 투자를 집중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라면 어떻게 공공의료를 강화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 제시되고 의료소비자인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고경화 한나라당 의원은 부대사업 및 인수합병 허용 조항을 예로 들면서 “우리나라의 의료공급 부분은 사적영역에서 상당부분 담당하고 있음에도 의료가 공공성을 담아야 하는 특수성 때문에 나온 차선책이 아닐까 싶다”면서 “의료공급자의 사적 영역을 보호하면서 의료의 공공성을 절묘하게 조절할 수 있는 지점을 찾기가 무척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 의원은 “이번 개정안을 영리법인 허용으로까지 지나치게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면서 보다 심도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토론회에 참석의사를 밝혔다가 하루 전에 이를 번복한 의사협회는 21일 의료법 개정 반대를 위한 대규모 궐기대회를 벌이겠다는 계획이어서 동네 의원들의 집단휴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환자 편의를 위해? “천만의 말씀”
원내원 개설, 프리랜서 의사 ‘뜨거운 감자’
이번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의원들이 들어서고 프리랜서(비전속) 의사들도 생겨나게 된다는 측면에서 의료시장에 급격한 변화가 예상된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대해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를 대폭적으로 혁파하는데 초점을 뒀다”면서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자율성 확보로 경쟁력을 높이고 의료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의료산업이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를 가장 환영하는 쪽은 당연히 병원협회다. 이날 토론회에서 성익제 병원협회 사무총장은 “개정 의료법에 따르면 병원을 새로 지을 때 1층은 쫙 비워서 의원급에게 임대하고 2층부터 병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면서 “1층에 임대해 들어오는 병원은 수술실이나 장비를 갖출 필요가 없어 병원 개설에 필요한 엄청난 투자비를 절감할 수 있어 의료비 낭비를 막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비전속 의사 허용으로 병원측은 모든 진료부서에 전문의를 둘 필요 없게 되므로 부족한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임준 교수는 “오히려 의료비 낭비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서민들에게 병원 문턱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게 임 교수의 설명이다. 즉, 암에 걸린 환자와 감기 걸린 환자가 가는 의료기관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데 개방형 병원제의 경우 감기환자나 암환자나 똑같이 고가의 장비가 있고 진료비가 비싼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한, 비전속 의사 허용은 의료법인이 법인만 설립한 채 비용절감 차원에서 전속의사는 최소한으로 고용하고 비전속 의사들에게 진료를 전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고경화 의원은 “이럴 경우 비전속의사가 보조 의료인력 또는 의료기기와 손발이 맞지 않으면 곧바로 의료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2007년03월22일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