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청소하다 이렇게 됐는데, 의사가 하는 말이…

[거절된 산재③] 대학 청소노동자들… “잦은 순환 근무, 산재 발생률 높아져”

14.11.18 14:36l최종 업데이트 14.11.19 15:38l

산재보험이 생긴 지 올해로 50년입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일터는 달라진 게 없어 보입니다. 는 와 함께 기획 ‘거절된 산재’를 통해 열악한 노동 현장의 실태를 짚어봅니다. [편집자말]

단풍이 오는가 싶더니, 벌써 잎이 다 떨어진 나무가 보인다. 단풍이 한창이었던 지난 10월 23일,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에 들렀다. 햇살은 따끈하지만 바람은 축축해 낙엽 냄새가 난다. 경비실 유리문에다 대고 “환경미화원분들 찾아왔는데요, 노동조합 사무실 어디있는지 아세요?”라고 물었다.

“민주노총이요?” 저기 OO대 지하로 내려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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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환경미화노동자 노동조합 사무실.
ⓒ 노동건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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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2층 주차장 깊숙한 곳, 가스파이프가 지나는 천장 아래 노동조합 사무실이 있다. 낮 12시의 캠퍼스를 통과해 당도한 땅 밑 공간, 주차장 쪽에서 오는 차 냄새 때문인지, 현기증에 아찔하다. 

빛도 바람도 없는 밀폐의 공간, 바깥 세상과는 다른 활기가 있다. 빨강 티셔츠에 비슷한 머리 길이, 한결같은 뽀글머리 스타일, 20명이 넘는 아주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 점심에 노동조합 사무실에 모인다. 

이날은 짬을 내서 천연비누 만들기를 하는 날이다. 점심시간 한 시간을 알차게 쓰신다. 강사님을 중심으로 서서 설명을 들으며 재료를 섞는 모습이 실험실마냥 진지하다. 

“산재 신청하고 복직… 노조 없었으면 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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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미화노동자들의 점심 밥상
ⓒ 노동건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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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있다가 대학원으로 오니까 좀 편해졌어, 의대 있을 때는 아휴…”
“인문대로 옮기니까 요새 뭔 통폐합인가 대자보가 붙고, 학과 구조조정 한다고 난리야.”

자연대, 미대, 정문… 들리는 단어마다 학교를 아끼는 마음이 묻어난다. 학교 구속구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사랑하는 이들이 왜 학교의 정식 구성원은 될 수 없는 걸까?

“제가 여기 온 건요, 산재신청 하신 분들이 있다고 해서 이야기 듣고 싶어서 왔어요, 노동자분들이 산재 하려고 하면 걸려서 못하는 게 많잖아요.”
“여기, 여기 두 명이 산재했어… 어여 가서 얘기해.”

비누만들기를 마친 분들이 각자의 반찬통을 들고 자리를 뜬다. 오후 일을 하러 갈 시간이다. 최근 산재신청을 하셨다는 미화원 A, B씨 두 분이 내 앞에 바싹 마주 앉았다. 조금 늦게 가셔도 되는 분들도 함께 했다. 

: “지난 봄, 계단을 닦는데 걸레질 하면서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서 새끼발가락에 금이 갔어요. 입원을 6주나 했는데, 처음엔 그렇게 다친 줄도 모르고 저녁까지 일을 했어요, 한의원도 가고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발가락에 금이 갔대요. 사실 조금 아픈 건 참고 일해야지. 옆구리 결린다거나, 감기 같은 건 그냥 참고 일해요. 이거 산재한 것도 노조가 없었으면 잘렸지. 우리 애 잔치도 있고 산재 안 하려고 했는데 42일이나 입원을 하니까(비용이 만만치가 않아서)….”

B : “5월에 출퇴근 지문 찍고 나오는데 돌에 걸려 넘어졌어요. 일어나서 절둑절둑 거리며 차를 타러 나왔지. 지하철 두 정거장 타고 내리는데 다리가 안 움직이는 거야. 정형외과가 보여서 갔더니, 원장이 산재인지도 안 물어봐. 어디서 뭐 하다 다쳤는지도 안 물어보고. 그저 다친 것만 보는 거야. 뼈에 금이 갔대. 소장한테 전화하니까 며칠 쉬다 와서 일할 수 있겠냐고만 물어보더라구. 

처음에 간 그 정형외과는 또 산재 환자는 안 받는 병원이래요. 그래서 인터넷 찾아보고 산재되는 병원으로 옮겨서 산재 신청을 했어요. 근데 내가 퇴근 지문을 찍고 나오다가 넘어졌잖아. 근데 그걸 증명할 수 있는 증인을 세우라는 거야. 그래서 증인을 세워 산재를 했다니까. 한 달 반 동안 병원에 있으면서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속병이 났어요. 지금은 다시 일하러 나와서 이틀 하고 하루 쉬면서 일하고 있어요. 다 노조가 있었기 때문이지. 치료는 더 해야 하니까 내 돈으로 한의원 다니면서. 치료 더 해야 하는데 회사에 미안하니까 나왔지.

다친 자리에서는 경황이 없어 상황이 기억이 잘 안 나요. 일단 다치면 119를 불러야 돼요, 그래야 기록이 남고 증언이 남겠더라고.”

얘기가 마무리돼 가는데 뒤에 앉아 듣고 있던 분이 두 팔을 들어 손을 들어 보여주신다. 

“이거 봐요, 이게 열 손가락이 다 튀어나왔잖아.” 

열 손가락 마디마디가 툭툭 나와 있고 딱 봐도 아프고 딱딱한 뼈의 느낌이 느껴진다. 

“15년 동안 꽃밭 호미질 하고, 교문 밖에 눈치우고 얼음 깨고 하면서 손가락이 이렇게 된 거야. 의사한데 보여줬더니 의사가 ‘부지런히 주무르세요’ 이러더라고. 열손 관절이 아프고 뼈가 튀어나오는데 그때는 엄청 아팠거든, 걸레 쥐어짜고 얼음 깨고 호미질 하고 눈치우고… 무릎에도 물이 차서 2년 동안 물을 네 번이나 뺐는데 퇴행성 관절이래. 

산재에서 뭐가 되는 것이요? 쑤시고 그런 건 뭣도 없고, 팔 부러지면서도 일하는데 뭐. 산재가, 정부에서 돈을 주잖아요. 그래서 산재하면 불이익이 있어요. 나랏돈 먹기가 쉬워요? 글자 하나만 틀려도 못 받는데… 신청서도 내가 직접 써서 내야 하고. 노조에 물어봤더니 ‘관절은 안 돼요’ 이러더라고. 어깨 허리 팔목이야 만날 아픈 거고.”

노동자의 산재신청,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노조가 생기고 나서 왜 그런지 인사 이동을 자주 해요. 그런데 낯선 곳을 가면 자꾸 다쳐요. 노하우가 생기고 파악해야 되는데 근무처가 자꾸 바뀌니까 산재가 자꾸 생겨. 현관에는 일 잘하는 사람이 해야 되는데, 어디가 위험하고 어디는 어떻고 그런 걸 알아야지.”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 일 년에 한 번씩 담당공간을 바꾼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숙련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어느 모퉁이를 돌 때는 부딪치는 걸 조심해야 하고, 어디는 미끄러질 수가 있고, 어디는 넓으니까 힘의 배분을 어떻게 해야 하고, 일하는 순서를 어떻게 짤 것인가 등등을 일하는 사람이 통제해야 하는데 익숙해질만 하면 다른 건물로 가라고 하니 나오는 소리다. 

같은 곳에서 오래 일할 경우, 노조  조합원이 늘어날 게 두려워서 그러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그런데 관리자들은 오히려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 학교 밖에 눈 치우는 일, 꽃밭에 호미질 하는 일도 없애고 대우도 좀 나아졌는데 노조 생기고 나서 왜 자꾸 사고가 나냐?”고 묻는다. 

“이동하면 더 힘들다고, 다친다고 말해줘도 그렇게 그렇게 한다니까.”

산재를 하신 두 분 모두 뼈에 금이 가는 사고였기에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하셨다. 노동자들은 노조가 없었으면 산재를 신청하는 것도, 복직을 한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 그래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오전 4시에 일어나 식구들 밥을 해놓고 출근해서 자연대, 인문대, 의대 할 것 없이 15년간 청소노동을 했어도 열손가락 뼈 마디마디가 튀어나오거나 무릎에 물이 차는 것은 “나이 들어서 그런 거”라는 말 밖에는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하 2층에서 지상으로 올라온다. 저 멀리 집게와 자루를 들고 오후 일을 시작하고 있는 노동자 뒤로 햇살이 눈부시다.

덧붙이는 글 | – 전수경 기자는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