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월호 에 실린 원고입니다. 



인터넷에 ‘산재’ 라고 쳐 보세요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산재는 그냥 일하는 사람들 노동하는 사람들의 일상에 씨줄날줄 엮여있는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법’, ‘심사’, ‘진단서’, ‘유해물질’, ‘의사’, ‘노무사’, ‘변호사’ 이런 딱딱한 말들은 사실은 산재의 진실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산재 보상을 둘러싼 법제도가 어찌나 산재를 밀어내려고 하고 안 해주려고 하는지, 산재보험을 받기가 너무 어려우니까 ‘산재보험 받는 방법’ 이 무엇이냐 아우성이거든요. 그래서 저런 어려운 말이 산재의 전부인 것처럼 굳어져 버렸습니다. 의사 찾아가서 진단서 받는 방법부터 서류 쓰는 방법, 무슨 필름 찍고, 증거 확보하고, 증인 세우고 하는 방법을 돈 받고 상담해주는 직업이 생긴 겁니다. 인터넷에서 산재라고 쳐보세요. ‘상담’, ‘보상’, ‘등급’ 같은 말이 주루룩 올라옵니다. 일하다 아프고 월급 안  나오고 마음 약해진 사람들 등쳐먹는 공무원, 브로커도 해마다 단골 뉴스로 나오고요.


그러나 산재보험은 사회보험이라는 사회 복지 제도의 하나고, 유럽같은 선진국에서는 산재보험을 받으려고 하면 우리들처럼 복잡한 절차가 없습니다.

지난 10월에 이런 사고가 있었어요. 경주에 있는 잠시 쉬고 있는 낡은 월성 원자력 발전소가 있습니다. 여기서 바닷물 들어오는 펌프에 뻘 제거 작업을 하려고 잠수사가 물속에 들어갔는데 5분만에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펌프가 네 대가 있었는데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좀 멀리 있는 펌프를 켜고, 바로 앞에 있는 펌프는 “꺼 달라”고 했습니다. 발전소 직원은 “원래 다 켜놓고 일했다”면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잠수사는 일을 시작하신지 5분만에 가동 중인 펌프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흔적만 좀 남아있을뿐 시신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고 후에 보니 멀리 있는 펌프를 켰으면 되었고, 잠수사 바로 앞의 펌프는 바로 끌 수 있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30년 넘게 일해 온 국가공인자격증을 가진 잠수 전문가, 대학 스쿠버다이빙 동아리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후배 잠수사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던, 중2, 고3 두 아이의 아버지가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가슴 아픈 사고였기에 기사를 읽고 놀란 분들이 많았고 며칠 사이에 계속 언론에 나왔습니다. 고3아들과 후배 잠수사들이 부산에서 서울 강남의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건물 앞에 올라왔다고 해서 만나러 갔습니다.

외진 바닷가,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어난 사고의 진실을 알린 것은 운동조직이나 언론사 기자가 아니라 동료 잠수사들입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찰나에 사라졌는데 사과도 책임도 지지 않고, 그저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며 사고를 덮으려는 원자력발전소 관리자들에게 화가 나 자료를 만들고 사고 개요를 정리해서 방송국, 신문사, 인터넷에 보냈습니다. 큰 방송국들은 연락이 오지 않았고 라는 인터넷 방송국이 연락을 해 오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 사고는 ‘월성 원전 하청노동자 사망’ 이라는 제목을 달고 언론에 나왔습니다. 산재사고, 직업병이라는 사회 현상은, 사람 좋게 웃던 옆집 다이버 아저씨의 죽음을 ‘노동자 사망’ 이라는 익명의 사건으로 무정하게 표현합니다. 원자력 발전소의 하청구조,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는 비정규직, 책임지지 않고 덮으려는 원청 공기업… …. 노동자의 사망이나 직업병은, 사회적 배경을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긴 합니다. 그런데 사고가 나는 사회구조를 강조하다 보니 사람의 일이라는 것, 이웃의 어느 가족에게 일어난 갑작스런 슬픔이라는 것을 잊게 만듭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곳에서 험한 일을 하던 익명의 가난하거나 운 없는 ‘인부’, ‘작업자’, ‘근로자’에게 일어나는 일로 여기도록 만들죠. 

들은지 좀 오래된 얘기입니다. ‘영국의 어느 신문은 사고로 노동자가 죽으면 “오늘 열 살, 여덟 살 두 아이의 아빠이자 다정한 남편이었던 마이클이 죽었다” 이런 식으로 기사를 쓴다 는 겁니다.


산재로 치료받기가 어려운 이유는 산재보험을 주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안 주려고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얼마 안돼서 산재보험이 시작됐습니다. 탄광 매몰 사고 같은 큰 사고가 일어나면 기업도 사회도 힘들어지니까 500명이 넘는 기업은 산재보험에 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50년 동안 건설 공사 현장, 조선소, 제철소 같은 위험한 일은 물론이고 지금은 백화점 화장품 판매 노동자, 카페 알바까지 일하고 급여 받아서 생활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산재보험에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일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단순 부상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에 입는 병도 늘어가는데 산재로 치료한 사람의 수는 제자리이거나 줄어듭니다. 정부는 이걸 산재가 줄었다고, 해마다 무슨 목표를 달성했다고 자랑해요. 해마다 8~9만 명의 일하는 사람들이 산재로 치료한다는 산재보상 통계가 나오는데 그 뒤에 100만 명 정도의 일하다 다친 사람들이 산재보험이 아니라 그냥 건강보험으로 산재를 치료했다고 나옵니다. 

일단 노동자만 1천5백만 명이라고 했을 때 3백만 명 정도는 아파서 산재로 치료받는 게 정상이라고 하더라고요. 산재보상금 덜 주면 근로복지공단은 실적이 좋아지고 기업들이 좋아하겠죠. 아까 유럽이야기 잠깐 했잖아요,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산재보험이냐 건강보험이냐 잘 안 따집니다. 아픈 이유가 무엇이든 공공의료에서 아주 싸게 또는 무료로 치료해주고 입원을 하게 되면 공공의료에서 휴업수당도 줍니다.


아파서 일을 못하면 그 자신이나 가족에게 돈이 필요할 것은 당연하니까요. 직업 재활이 필요하거나 직업병 조사를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때 별도의 직업건강시스템으로 갑니다. 우리나라는 산재보험으로 인정을 받으면 치료비 휴업 급여가 나오지만 인정을 못 받으면 아픈 사람이 치료비 생계비 재취업 다 해결해야 하니까 2~3년씩 재판까지 하면서 산재보험 통과하려고 정부랑 싸웁니다.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으면 그럴 일이 없습니다. 산재보험을 쉽게 만들어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프면 치료비 휴업수당 같은 보장을 잘 해주면 그게 사회복지이기도 하죠.


산재를 의학 과학으로 따져서 심사하고 통과시킨다는 생각은 바보같은 생각입니다. 사람의 몸이 정해진 기준대로 병이 나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감기에 걸렸을 때 어디까지가 체력 탓이고, 차가운 날씨 때문인가요. 아프고 힘들면 그 사람을 사회보험료로 치료해주고 생활비도 보존해주자고 사회구성원들이 약속하면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