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우리에게 건네는 말 중의 하나, 기업살인법
기업살인은 범죄! 기업살인법이 제정되어야
지난 4월 3일 현대제철 인천공장에서 노동자가 1500도가 넘는 용광로에 빠져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믿을 수 없지만, 안전난간이 없었다고 한다. 난간이 없던 것과 함께 작업장 바닥에 깔려 있는 미끄러운 철 분진, 적정 조도 미유지-가 사고 원인이라고 노동조합은 이야기했다. 그럼 공장 안에 조명조차 제대로 없었다는 이야기 아닌가.
이번 사고가 일어나기 3일 전 보도되었던 바에 따르면, 이 회사의 전문경영인이라는 현대제철 박승하 부회장은 퇴직금으로 55억7,600만원을 받아갔다고 한다. 2013년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아르곤가스’에 의한 질식으로 5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박승하 대표이사를 고발한 적이 있다. 그리고는? ‘무혐의’ 통지서가 날아왔다. 사망한 5명의 노동자는 스무 살, 서른 살을 갓 넘은 분들이었다. 가스사고 후 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을 나가고 감독관들이 상주하기도 했지만 2014년 초까지 매달 사망사고가 났다. 박승하 부회장이 받은 55억 7,600만원의 퇴직금에는 그가 대표이사로 일하던 당시 잇따른 사망사고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한 책임이 반영되어 있을까. 법은 ‘무혐의’ 통지를 날렸지만 그는 ‘전문경영인’이었으니 말이다. 현대하이스코 신성재 사장은 급여와 퇴직금을 합쳐 90억9,900만원을 받아갔다. 현대하이스코는 2012년 3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곳이다. 대기업 등기임원의 연봉 공개자료를 보니 노동자를 위험에 빠뜨리고 사망에 이르게 한 다수의 대기업 임원이 수십억 이상의 연봉을 받아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 기업살인의 또 다른 이름
청해진해운 임원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대표이사 1명만 배임 및 횡령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을 뿐, 세월호의 고의적인 과적과 위험한 항해에 대해서 경영자들은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선장과 선원들에게 죄를 덮어씌우고 거대한 책임으로부터 빠져나오려 한다. 기술적 안전의무나 주의의무 같은 것으로는, 기업경영자들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비정규직 선원의 고용부터 사고 당시 구조를 외면한 것까지 모두 기업의 경영행위로 책임이 아닌 것이 없는데도 이들은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2심 선고가 5월 12일 내려진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가. 배는 아직 검은 바닷속에 있고, 이 사회를 검고 깊은 심연으로 끌어내리려는 이들은 너무 많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존엄안전위원회가 ‘기업살인법’ 논의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가을이다. 노동자를 산재로 사망케 하는 기업이, 몇 명이 사망했더라도 기업 그 자체의 권력과 영향력에 별 영향을 받지 않으며, 경영진과 소유주, 실소유주는 성역으로 보호되는 것을 우리는 수십 년간 지켜보아 왔다. 청해진해운 실소유주라는 자의 비현실적 죽음은 그가 재판정에 서고 그의 죄를 증명해야 하는 과정과 가능성을 소거해버렸다. ‘기업살인법’ 운동은 기업경영자, 기업으로부터 이득을 보는 자,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에 대하여 처벌하자는 주장을 지난 10년 넘게 외쳐왔다. 그리고 이에 대한 사회적 토론, 논쟁의 기회가 휘발된 채로 기업살인법 제정논의는 다시 시작되고 있다.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의 사망에 대해서도 경영실패라는 인식이 없거나 책임을 외면하는 현실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복합건축물, 다중이용시설, 선박, 항공, 철도에서 사고와 재난이 발생해도 폭풍처럼 쏟아지는 비난을 견디고 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기업에게 의례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사회책임’, ‘윤리경영’이란 그럴듯한 말을 하며 기업 바깥에서는 시민, 소비자, 이용자를 향해 웃지만, 기업은 말 그대로 기업이 져야 할 ‘책임’에 대해서는 인과관계를 모두 부정한다. 기업경영자들은 위험을 관리하고 사고와 재난을 예방해야 할 경영의 영역과 책임을 분산하기 쉽게 복잡하게 만들고, 아래로 아래로 떠넘겨 결국 말단의 노동자가 표적이 되는 방식으로 구조화해 놓았다. 말단의 노동자는 희생자가 되기도 하고, 사고책임의 가해자로 호명되기도 한다. 그러하기에 현대제철이나 현대하이스코의 저 대표이사들은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지도 않으며, 이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없다.
법의 보호 바깥에 있는 노동자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존엄안전위원회의 기업살인법 논의 참여자들은 이 문제에 집중하며 토론하였다. 노동자 사망을 유발하는 원인과 자신이 운영하는 복합시설, 대형건축, 운송수단에서의 사고 및 재난의 원인은 다르지 않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의 사망에 대하여 1억원의 벌금, 7년 이하의 징역을 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기업이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서 사망했을 때의 얘기다. 법이 정한 안전조치를 지켰다면 해당되지 않는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 사망이라는 결과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또 직접 고용한, 이른바 원청기업 노동자가 아니라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간접고용, 불법파견, 사업자등록까지 직접고용 비용을 줄일 수만 있다면 할 수 있는 최대의 방법을 동원하는 기업 천국인 이 나라에서, 위험을 떠안은 노동자들은 법으로 보호해주는 시늉조차도 해주지 않는 현실이다.
기업이 일으킨 사고 및 재난도 비슷하다. 시설물, 다중이용업소, 초고층 및 지하연계건축물, 선박, 항공, 철도… 대상마다 안전의 의무를 지운 법들이 있다. 안전조치를 법대로 하였다면 시민과 이용자에게 사상사고가 나도 기업경영자는 책임이 없다.
노동자든, 시민이든, 이용자든 기업이 위험을 관리하지 않아 사고, 사망, 재난이 일어난 것이라면 그 결과에 대해 기업의 사업주, 소유주, 경영자가 형법상의 벌을 무겁게 받아야 한다, 기업조직 역시 실효성 있는 법적 제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기업살인법 논의에서 주요하게 이야기되었다.
기업살인은 범죄, 제대로 책임을 묻기 위해
기업살인법 제정을 위한 논의는 여러 법학자들과 변호사, 활동가들이 함께 하였다. 그동안 법이론적 검토부터 시작해 현재 법안 초안 작업까지 한 상태다. 그리고 곧 법 제정을 위한 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다.
법안에서는 사고와 재난을 일으킨 기업의 사업주, 경영책임자, 소유주에 대해서 위험을 막을 의무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 2명 이상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벌금형이 아닌 징역형만을 내리도록 하였다. 나아가 기업 자체에 대해 영업정지, 공계약 배제 등을 가능토록 하면서, 기업이 위험을 방치하거나 방관하고, 안전을 소홀히 다루도록 조장하는 기업 내부문화 등이 있을 경우 그 책임이 가중된다고 보았다.
이 법안이 발표된 이후, 법인으로서 기업조직의 범죄능력, 입증문제, 형벌의 과중함 등에 대하여 대대적인 논쟁이 있길 바란다. 기업은 돈의 힘으로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사회의 성역이 되어 가는데 그 기업이 일으키는 범죄적 행위에 대해서는 기업도 정부도 사법부도 침묵해왔기 때문이다.
미국령 괌에서 대형공사를 하다 노동자 한 명이 사망하여 90억원이 넘는 벌금을 냈던 대기업의 국내 공사현장에는 교과서에서만 보던 안전장치가 있었다고 한다. 안전장치를 발견한 감독관이 찾아본 미국 사고보고서는 기업의 ‘의도성’이 노동자 사망의 결과를 불러온 것으로 보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세월호가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를 사회가 생존해온 방식만큼 알아듣지 않을까 싶다. 형언할 수 없는 거대한 비극 앞에서 그 희생의 연원을 찾아가려는 성찰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부족, 정치와 자본의 결탁, 돈을 숙주로 삼은 기업의 힘이 노동자, 시민을 죽게 했다. 기업살인법이라는 도구가 그 죽음의 권력을 멈추게 하는 데 작은 부싯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4월 28일은 세계산재사망노동자추모의날입니다. 은 2006년 4월부터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개최해 왔습니다. 지난 해 가장 많은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기업을 살인기업으로 선정해 발표하는 행사입니다. 지금 지난 10년간 시민과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간 가장 위험한 기업을 선정 중에 있습니다. 이들을 ‘최악의 살인기업’이라고 부르며, 수많은 시민과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가면서까지 돈벌이에 혈안이 된 기업의 무책임한 행위에 경종을 울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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