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살인 운동 2014
힘 내는 수 밖에 없다


박혜영 / 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
2014년 1월 2일, 우편이 왔다. 발신인은 검찰.
지난 해 5월, 노동건강연대는 ‘현대제철에서 아르곤가스에 5명이 질식사한 사건’에 대해 대표이사를 고발했다. 우편 봉투를 열면서 그 시간을 떠올린다. 현대제철에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다. 이미 그곳은 요주의 사업장이었다. 연이은 사망으로 방송에서 그 죽음을 다루기도 했다.
5월, 아르곤가스 질식사 사건이 언론에 오르내리자, 현대제철 대표이사는 대국민 사과를 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가스가 무독성이라 했다. 유족이 아닌 국민에게 사과를 했다. 대표이사까지 나섰으니 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당연하다는 듯 연말이 되기까지 노동자가 죽고 또 죽었다. 새해가 되어서도 사망소식이 들렸다. 
그럼, 우편물 안에 들어있는 고발의 결과는?
우리는 대표이사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사업장에서의 안전은 비용 문제이기 때문이다. 경영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노동자의 생과 사. 

그러나 검찰은, ‘혐의없음’ 우편을 보내왔다.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라고 7월에 약 7억 원의 벌금을 때렸다. 사고가 계속되자 다시 감독을 했고, 역시 위반사항이 많았다. 1억의 벌금이 나왔다. 그리고 현재 제철소에는 산업안전 근로감독관 5명이 상주하고 있다. 더 이상의 증거가 필요할까. 왜 혐의가 없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 사건만 보자면 특별근로감독 등 정부가 현대제철에 압박을 가하는 듯 보이나, 결국 ‘무혐의’처리와 ‘벌금’으로 적당히 땜빵시킴으로서 기업의 편의를 봐주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 생긴다. 벌금 액수는 하루 매출액수 23억 보다도 적다.
2013년은 유달리 대기업 산재사망이 많이 주목받은 한 해였다. 통계적으로 산재사망노동자가 크게 늘거나 줄지 않음으로 보아 개인적으로는 정부와 대기업의 모종의 신뢰관계를 떠올렸다. 대기업이 사고 쳐도 정부로부터 받을 불이익이 그다지 없을 것이다.
잠깐 보자. 2013년 새해에 일어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사망, 삼성 불산 누출 사고를 비롯, 대림산업 탱크폭발로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상반기가 다 채워지기도 전에 연달아 대기업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통에 3월쯤에 이르러 “기업살인은 정부와 법원의 책임”이라는 의문이 사회에 던져졌다. 4월에는 국회에서 가 열렸다. 4월 23일 MBC PD수첩에서는 “나는 위험을 하청 받았다”를 방송하며, 연이은 산재사망 노동자들이 모두 하청이었음을 지적한다.
5월, 현대제철에서 5명 질식사 사건이 일어나자 조선일보는 “대기업 연쇄 산재 ‘기업살인’으로 처벌해야 정신차릴껀가”라는 사설을 통해 ‘영국은 2007년 ‘기업 과실치사와 기업 살인법’을 만들어 중대한 산재 사고에는 벌금 상한선을 없애고 사업주에 대한 처벌도 강화’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상반기 발생한 모든 대기업 산재사망 피해자들이 모두 하청노동자 였음은 당연하다.
민주노총은 “산재사망 처벌강화 특별법” 과 “하청 산재 원청 책임강화” 법안을 제출하며 전국적으로 특별법 제정운동을 벌였다.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지역에서는 ‘산재사망은 기업에 의한 살인’임을 천명했다. 
하반기가 되어도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6월엔 롯데월드 공사장에서 거푸집이 추락해 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7월엔 노량진 수몰사고로 7명의 소중한 생명을 또 잃게 되었다. 방화대교 상판붕괴 사고로 2명이 압사했다. 이로 인해 대기업 뿐 아니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발주 공사의 안전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8월, 농어촌공사 발주한 저수지 현장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질식사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로봇이 해야 할 위험한 업무를, 안전장비 하나 없이, 심지어 담당자는 들어가기조차 무서워한 곳에 어린 학생을 들여보낸 것이다.
10월, 세명대에서 언론을 전공하는 대학생으로 구성된 기자단이 위험한 현장을 잠입취재하여 위험한 현장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기획기사시리즈를 내보냈다. 읽고 있노라면 노동현장은 위험 그 자체이고 심지어 하청이나 아르바이트로 갈수록 그 위험은 위협 그 이상이다. 위험천만한 하청구조 속에 기자들이 직접 뛰어든 르포 기사는 긴박하고 생생했다. 가장 위험한 곳에 사회적 약자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기획기사에서 제시한 마지막 요구는 ‘기업살인법’이었다.
정부는 어디에 있었을까?
찾을 수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하반기 롯데월드, 노량진, 방화대교 사고가 연이어 터졌던 8월에 딱 한번 산업현장 안전강화 방안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 방법이 획기적이거나, 국민을 걱정하는 마음이 들어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그 뿐이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고 검색을 해봐도 더 이상은 없다. 노동이 있는 현장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최대의 무정부 공간이다. 죽었다는 기사만 있을 뿐, 사고를 일으킨 대기업들이 처벌당했다는 기사는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는다. 대기업 산재사망이 줄었다는 기사도 없다. 대신에 노동자들은 파업을 했다고 하여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받는다. 심야노동을 하지 않겠다고 100일 이상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와 어떤 대화도 하지 않는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기사만이 세상을 덮고 있다. 대기업과 정부의 믿음은 공고해져 간다.
이대로 간다면 남은 일은…. 기업의 편의를 봐주는 정책은 계속 늘어만 가고, 산재사망에 대한 사회적 규제는 줄어든다. 그리고 우리는 대기업에서 발생하는 산재사망기사를 계속해서 접하게 된다. 사법부와 행정부는 ‘무죄판결’과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말 것이다. 죽이고 죽어도 아무런 제재도 없는 세상. 봉건적 행태로 이윤을 만들어내는 기업에 대한 끊임없는 지원. 올 해는 경제성장의 분수령이라던 박근혜 대통령의 말에 오한이 저려온다.
조용하던 현대제철에선 다시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했다. 한 건도 아니었다. 11월, 12월에 걸쳐 한 건씩. 바로 며칠 전 다시 사망소식이 들려왔다. 산재보험료를 27억이나 감면받았다는 기사도 보인다. 지난 한 해, 특별근로감독을 했다던 노동부가 더욱 못미더워지는 순간의 연속이다.
몇 년간 ‘기업살인법’, ‘기업에 의한 살인’, ‘살인기업’의 단어들이 언론을 탔다. 사고가 일어난 현장에서 ‘책임자인 대표자를 처벌하라’ 외쳤다. 국회에선 이에 대한 연구와 법안발의가 이어졌다.
한편, 사망사고는 대기업을 넘어 공기업과 정부기관의 발주공사로 번지고 있다. 올해 초 한빛원전(영광원전) 사망사고와 한울원전 추락사고가 있었다.
우체국 노동자들의 장시간?중노동과 부족한 인력 때문에 계속해서 발생하는 산재사망에 대해선 우정사업본부장과 미래창조과학부를 고발하기도 했다(2014년 1월 21일). 미래창조과학부는 정부기관 최초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고발당한 셈이다. 더 지켜볼 일이지만, 박근혜 정부가 대기업에 규제완화와 성장 정책을 시행함과 동시에 공기업, 정부기관의 노동조건도 질이 낮아질 것이 예상된다.
이 와중에 서울시에서 눈에 띄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 해 노량진 수몰사고 등을 계기로 서울시에서 발주 하는 공사에 대해 노동자 안전 부분을 강화하려는 정책을 개발하고 있다. 이는 서울시에서 발주하는 대규모의 공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공사를 발주하거나 총괄하는 주체가 어떻게 안전에 책임을 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2014년, 여전히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업살인 저지운동’은 여전히 중요해 보인다. 힘내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