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책임을 묻자
[진보논평] 노동자의 죽음엔 이유가 있다
김인아(진보전략회의) / 2007년04월19일 21시48분
진보전략회의(준)는 한국사회 주요 전략아젠다에 대한 진보적 정책생산을 목표로 모인 연구자, 활동가들의 전략네트워크이다. 사회운동의 통합적 활동이 가능하도록 운동과 운동을 이어주고 지역, 부문, 현장에서 운동기획을 자극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표방하고 있다. 진보전략회의(준) 회원들이 주요한 사안에 대해 발표하는 ‘진보논평’을 민중언론참세상에 게재한다.- [편집자 주]
24살, 사내하청 노동자의 사망
‘어제의 사망 1명, 누적 249명’
우리가 도로를 지날 때 쉽게 볼 수 있는 교통사고 재해 현황판의 이야기가 아니다. 올해 초부터 전국 주요 공단지역 및 유동인구가 많은 40개 지점에 노동부가 설치·운영하고 있는 ‘산업안전 전광판’에 지난 17일 명시되어 있던 현황이다. 전광판에서 나타나 있는 ‘어제의 사망 1명’은 바로 16일 오후 4시 30분경에 굴삭기에 깔려 사망한 만 23살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를 말하는 것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
노동자들의 죽음에 관한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4월 3일에는 경남 김해시의 합성피혁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36세의 한 노동자가 코팅 원단과 부직포를 접착기에 밀어 넣는 일을 해온지 다섯 달 만인 지난 3월 26일 독성 간염을 진단받고, 불과 2주 만에 사망하였다. 이 회사의 사업주는 제조업으로 등록조차 하지 않고 십여 명의 노동자에게 합성피혁 제조와 포장 등의 일을 시켜왔다.
지난 3월 22일에는 창원의 두산메카텍 작업현장에서 교량 상판이 떨어져 작업 중이던 인부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망한 두 명의 노동자는 모두 사내하청이었다.
한편 3월 모 대학병원에서는 청소 일을 하던 청소용역 여성 노동자 한 분이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인력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증축된 건물의 청소까지를 담당하며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다가 결국 심근 경색으로 사망하고 만 것이다. 이 노동자의 사망에 대한 산재 신청을 하러간 노동조합의 담당자는 “당신네 조합원도 아닌데 왜 나서냐?”는 근로복지공단 지사의 망발을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이전인 2월 28일 17시경 선박구조물을 만드는 오리엔탈정공 진해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화장실에서 의식을 잃은 체 발견됐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사망을 한 상태였다. 그는 사내하청업체에 다니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너무나도 뻔(?)한 노동자들의 죽음
며칠째 언론에서는 버지니아 공대의 총기 난사 사건이 보도되고 있고, 오늘 포털사이트의 주요 기사에 슈퍼 주니어라는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가 교통사고로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리고 총격사건의, 교통사고의 원인을 추측하는 기사들이 줄을 잇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줄줄이 비엔나처럼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 원인을 분석한 기사도 또는 그 죽음의 책임을 추궁하는 기사도 찾아볼 수가 없다. 늘어놓기 버거울 정도로, 숨이 막힐 정도로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집회장에서 경찰에 맞아 죽고, 몸에 불을 댕겨 죽고, 열악한 작업 현장에서 사고로 죽어가고 있다. 이런 노동자들의 죽음의 원인이 너무 뻔해서 일까? 너무나 뻔하고도 당연하게 안전장치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조심스럽게 일하기가 힘들 만큼 노동 강도가 세고, 과로사로 사망할 만큼 할 일이 많아서이기 때문일까? 너무나 많이 죽고 너무나 확실한 이유로 죽기 때문에 기사 거리도 되지 않는 거 아닐까?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수출액 10조9215억 원을 기록해 전년보다 2조766억 원이 증가하면서 노사 상생의 길을 통해서 ‘잘’ 나가는 대표 기업으로, 조선업 활황 시대를 이끄는 선두 주자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러나 현대 중공업에서는 2006년 GS 건설에 이어 산재 사망 2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기업은 잘 나가는데 노동자들은 죽어 나간다. 노동부의 발표에 따르면 2006년 2,454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죽음이 줄지 않고 있다.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자
이제는,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이 사업주든, 정부든 간에 노동 현장에서 사라져간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한 원인을 밝히고 책임을 지워야 한다. 안전장치를 충분히 하지 않고 일을 시킨 사업주와 무재해의 신화를 위하여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사망을 은폐하기에 급급한 사업주, 건물을 증축 하면서도 사람은 충원하지 않는 사업주, 제조업으로 허위 신고해서 건강검진조차 받지 않게 만든 사업주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안전 점검을 철저히 하지 않고, 사측을 보호해주기 급급한 정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한해 2,500명의 노동자가 죽어 가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몇 해 전 개봉했던 ‘귀신이 산다’라는 영화는 조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집에 사는 귀신간의 주택 소유를 둘러싼 코미디였다. 영화를 보고 몇 년이 흘러 영화의 자세한 줄거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이 있다. 그건 바로 그 노동자가 일하는 조선소의 모습이었다. 귀신을 볼 수 있게 된 주인공의 눈에 들어오는 조선소의 이곳저곳을 작업복을 입고 왔다 갔다 하는 조선소 노동자 귀신(?)들의 모습……. 그 섬뜩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도,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에도 우리가 입고 있는 옷에도 그리고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에도…. 우리가 누리고 이용하는 모든 곳에 노동자들의 죽음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죽음에 책임을 지우고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과중한 노동강도 속에서 짧은 운명을 다하고 사라져 갈 수 밖에 없는 노동의 현실을 바꿔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화창한 봄날 어느 노동자가 현장에서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은 이제 그만 듣고 싶다. 화창한 봄날 어느 노동자가 일을 쉬고 꽃놀이를 즐겼다는 그런 소식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