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동자 노동강도 안중에 없었다
은행 마감시간 단축 관련 ‘집단이기주의’ 비판 일색

2007년 04월 18일 (수) 15:28:52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

“아이들이 보고 싶습니다. 결과 없는 오랜 야근으로 아이 얼굴도 거의 보지 못하고 살아왔네요. 지금도 마치 무슨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지만 아무리 꼬집어도 깨어나질 않네요.”

2004년 3월29일 모 시중은행의 모바일뱅킹 서비스 책임자인 김모 차장(당시 35세)은 이 유서를 남기고 자신의 근무지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그는 죽기 전 2개월간 서비스 시행에 맞춰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하며 심리적 중압감에 시달리다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3년 뒤인 8일, 전국금융산업노조가 ‘은행마감 시간 3시반 단축안’을 내놓자 언론과 국민들의 반대가 쏟아졌다. 금융노조의 방침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들은 국민의 불편을 우려하며 ‘집단이기주의’라며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경향신문이 사설 ‘은행 영업시간 단축 움직임, 본분을 잊고 있다’ 등을 내는 등 진보·보수 언론의 차이도 없었다. 국민의 91%가 마감시간 단축을 반대한다는 여론조사도 나왔다. 그러나 은행노동자들의 노동강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부족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금융노조는 시중은행 영업시간 단축에 대해 “영업시간 이후에도 창구 마감업무와 함께 고객관리, 마케팅 활동 등 영업시간 외 연장 근로가 이뤄지고 있다”며 “창구영업시간을 단축시켜 실제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다소나마 완화시켜보자는 취지”라고 주장했다.

금융노조는 “은행간 과당 경쟁으로 은행원들의 노동강도가 살인적일 정도로 극심하고 과로사의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대주주를 위한 단기 업적위주의 실적강요를 동반한 성과주의 문화의 확산, 여기에 더해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스톡옵션도 노동강도를 부채질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은 대규모 구조조정과 감원으로 직원수가 크게 줄었으나 은행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업무는 급증했다는 것이다.

금융노조에 따르면 최근 한 은행에서 1년에 10명 이상 과로사로 숨지는 사례도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부의 자료에 의하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5년간 금융권에서 산업재해를 입은 재해자수는 3천2명이며, 산업재해로 사망한 경우는 1백82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은행간 인수합병 등 구조조정이 극심하던 2002년과 2003년에는 각각 49명, 42명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4년 모 시중은행의 경우 7개월 사이에 7명 안팎의 직원들이 심근경색이나 심장마비, 뇌출혈, 자살 등으로 사망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금융노조 측은 전국 금융 사업장의 과로사 및 재해 실태를 조사해 26일 이후 발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