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해성활동가의 희망노가리 

반말이 존댓말이 되게 한 힘, 기승전 노동조합

 

하해성 /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부 조직부장

 

드라마 송곳이 생각보다 일찍 막을 내렸다. 까루프 투쟁을 넘어 이랜드 투쟁 과정까지 다뤄 주길 바랐지만 까루프 투쟁의 본격적 과정도 축약되며 막을 내렸다. 아쉽다. 하지만 원작자 최규석에 의해 깊이 있게 다뤄진 노동조합의 정당성과 속살 같은 에피소드들은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노동조합을 소개한 성과가 있었다. 직장과 노사관계에 대한 성찰적 대사들이 노동조합에 대해 많은 것을 함축적으로 설명해줬다.

그래서 고민이 생겼다. 노동조합을 소개하려는 희망노가리입장에서는 소재나 밑천이 다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본격적인 작가들처럼 같은 이야기를 다른 시각과 언어로 풀어내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라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노가리는 노가리 일뿐 누구나 각자의 인생이 있듯이 노동조합이 경험하는 수많은 상황들을 풀어가다 보면 누군가에겐 즐거움이 될 수 있으리라 믿으며 글을 시작한다.

 

날씨가 갑자기 차가워 졌다. 추워지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농성장의 투쟁하는 동지들과 새벽에 나와 일하는 우리 조합원들이다. 특히 2013년 겨울에 만난 한 조합원의 모습이 잊혀 지지 않는다. 신생분회가 있는 대학의 미화 소장이 부당노동행위를 한다는 말을 듣고 아침 일찍 현장 순회를 하는 중이었다. 그곳에서 청소를 하고 있던 한 조합원을 만났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한 겨울이었는데도 반팔 티에 땀을 엄청 흘리고 있었다.

 

웬 땀을 이렇게 흘리세요? 어디 편찮으세요?

아뇨, 어제 행사가 있어서 오늘 유난히 치울게 많아서 그래요. 하신다. 한 겨울에 난방도 아직 켜지 않은 아침 7시에 땀을 비 오듯 흘리는 것이 안쓰러워. 다시 말을 건넸다.

아유, 조금 쉬어 가면서 하세요.

쉬엄쉬엄 하면 저도 좋죠, 하지만 그러면 학생들 오기 전에 일을 다 못 끝내요. 첫 차를 타고와도 시간 내에 끝내려면 뛰어다녀야해

대화를 하느라 잠시 멈춰서 땀을 훔치시며 하시는 말씀에 내가 쉬는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 더 말을 건네지 못했다. 한 겨울에도 땀을 흘리던 그분을 보며 더운 날씨에는 얼마나 힘드실까 생각했었다. 그날 이후 날이 추워지면 농성하는 동지들과 함께 새벽에 나와 일하시는 조합원들이 먼저 생각난다.

 

그런데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의 고단한 노동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청소노동자들이 유급으로 계산되는 시간보다 1~2시간 일찍 출근 한다. 일찍 오지 않으면 자신의 할당 구역을 제대로 청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찍 출근해서도 정신없이 강도 높은 노동을 하고 나면 파김치가 되고 만다. 땀에 전 옷으로 일하기 힘들어 여벌 티를 갖고 와서 옷을 갈아 입어가며 일을 하시는 분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보통의 청소노동자들은 정규직들이 업무를 시작하거나 학교의 경우 수업이 시작되면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늦은 아침 식사를 한다.

 

그런데 용역회사들은 그런 청소노동자들이 아침 청소를 마치고 쉬는 시간을 무급으로 계산하기 일쑤다. 점심시간을 무급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처럼 아침식사 시간도 무급이라는 논리다. 정시보다 일찍 출근해서 노동한 것에 대해서는 임금을 주지 않고, 다음 노동을 위해 필요한 회복 시간도 무급으로 계산한다. 시간 안에 감당할 수 없는 업무량을 준 자신들의 잘못은 철저히 외면한다. 노동부도 마찬가지다. 청소노동자들이 교통카드 이용기록, 카드 출입기의 기록으로 정시 출근시간 보다 1시간 이상 조기출근하고 있음을 입증해도 노동부는 번번이 사용자의 강제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며 노동시간이라고 볼 수 없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노동시간을 제대로 계산하도록 만드는 것은 결국 노동조합의 몫이다. 단체협약으로 노동시간에 맞게 임금을 계산하도록 만들어야 정상적인 임금이 지급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단체협약으로 노동시간을 바로잡는 과정도 쉽지 않다.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의 무료노동으로 누리고 있던 이익을 결코 내놓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필요할 경우 준법투쟁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의 준법투쟁은 정해진 출근시간을 지키는 것이다. 문제는 조합원들도 쉽게 바뀌지 않는데 있다. 준법투쟁을 조합원 총회를 통해 결정해도 조합원들이 쉽게 따라주지 못한다. 일단 정시출근은 가능하다. 하지만 정시 출근하고서도 담당구역 청소는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신없이 뛰어 다니신다. 너무 서두르다가 다치는 분들도 나온다. 그리고 며칠 지나면 힘들어서 못하겠다는 원성이 나온다. 청소를 다 못해도 되니 평상시 하시던 속도로 일을 하시라고 말씀드리면 대답은 그렇게 하겠다고 하시지만 행동은 다르게 나타난다. 열심히 일하던 습관, 맡은 일을 다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래도 돈 받고 일을 하는데 맡은 일은 잘 해야죠.’라는 공자님 말씀이 돌아온다. 그래서 노동시간 정상화를 위한 단체협약이 쉽지 않다.

 

그래도 결국 원하는 단협을 하나씩 쟁취해 나가고 있다. 꾸준한 교양과 타 노동조합의 사례들을 보면서 조합원들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하면 하나 둘 성취할 수 있는 힘이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알고,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권리 위에 잠자고 있어서는 안 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권리를 배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권리를 자신이 직접 누리기 위해서는 권리의 맛을 보아야 한다. 일상 활동, 교육 그리고 실천투쟁으로 만들어진 조합원의 권리의식 수준이 그 단위 조합의 실력을 결정한다. 그리고 조합의 실력이 교섭력으로 이어져 좋은 단체협약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좋은 단체협약은 조합의 건강한 발전의 토대가 된다. 선순환이 진행되는 것이다.

 

 

임금 등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시작하지만 선순환이 진행되면 자기 권리를 인식하고 누리는 길로 나아가게 된다. 최근에는 서울신문사와 언론진흥재단이 있는 건물의 청소노동자들이 수년간 중간착취를 해오던 소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쟁에 나섰다. 투쟁을 하는 동안 청소노동자들은 소장이 일상적으로 해오던 반말도 고칠 수 있게 되었다.

어제는 퇴근할 때 반말하지 말라고 한마디 해줬어요.

라고 말씀하시는 조합원의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묻어난다. 두려워하며 눈 마주치기도 싫었던 상대에게 당당하게 반말하지 말라고 요구할 때 얼마나 떨리면서도 짜릿했을지 상상이 간다. 이렇게 자신을 존중해 줄 것을 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근로조건 변화 이상으로 중요한 노동조합이 만드는 변화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는 청소, 경비 노동자가 대부분이라 모두 새벽같이 일을 시작하는 분들이다. 그래서 낮에 하는 집회는 참가가 가능해도 저녁에 시작하는 촛불집회나 문화제는 조직이 어려운 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3달 넘게 매주 금요일 저녁 한 분회씩 돌아가며 연대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기아자동차 노동자 고공농성 승리를 위한 금요문화제에 매주 참석하기로 결의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투쟁 사업장 모두와 연대하면 좋겠지만 최소한 한 곳이라도 꾸준히 연대하자고 결의한 것이 8월 말이었다. 11월 중순이 넘어가자 추위가 닥쳐왔다. 게다가 한번은 문화제가 있는 날 낮부터 계속 비가 내렸다. 처음 문화제를 시작할 때는 정말 사람이 너무 적어 고공농성 중인 한규협, 최정명 동지가 힘 빠지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였다. 다행히 문화제를 마칠 때는 제법 많은 참가자가 모였다. 문화제를 마친 후 한 조합원의 말이 인상적이다.

비가 오니까 오늘 가지 말자는 말을 했는데, 누가 저 위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