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빈민사목위원회가 발행하는 나눔공동체 제259호(2017년 11월 1일)에 실린 원고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빈곤 – 시간도둑과 무료노동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공장에서 핸드폰부품을 만들다 메탄올중독으로 시력을 잃은 20대의 청년들에게 가장 부족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 때문에 앞을 못 보게 된 것인지, 어디서부터 알아보아야 할지 감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도움을 받을 네트워크가 없었습니다. 정보의 빈곤, 관계의 빈곤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보의 빈곤, 관계의 빈곤은 일하는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시간도둑, 교묘하게 배치되어 있는 무료노동의 시간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힘들지 않은 직장생활이 없겠지만,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다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삶의 질을 비교해 본다면 휴가의 사용에서 큰 차이를 보일 것입니다. 시간의 사용에서 선택권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삶에서 추구하는, 자유롭고자 하는 욕구를 채울 가능성이 높다는 말입니다.  

계약서상 명확히 비정규직인 이들, 계약기간을 정하지 않고 일하는 이들, 알바, 일용, 특수고용, 그리고 작은 가게 사장님들까지 휴식시간, 휴일, 휴가를 원하는 만큼 사용할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대기업, 공기업 다니는 분들은 우리들도 풍족하게 휴가를 사용하는 건 아니라고 말씀하실 테지만, 가장 큰 차이는 계획을 세울 수 있느냐, 나의 시간사용을 내가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모두를 들뜨게 했던 지난 추석연휴 기간에 하청 파견 알바 노동자들은 콜센터에서 카페에서 패스트푸드점에서 평소처럼 일했습니다. 연휴가 다가올 때 했던 것은 여행계획이 아니라 근무스케줄을 짜는 것이었습니다. 나오지 못한 동료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일하는 날과 쉬는 날을 예측할 수 없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시간의 빈곤 또는 시간사용 결정권의 빈곤 상태라 하겠습니다.    

시간 빈곤에서 더 깊은 문제는 비정규직, 하청, 알바 노동자들이 시간을 도둑맞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시의 시민들은 쇼핑을 하면서 영화를 보면서 이동을 하면서 온갖 상품광고를 강제적으로 보아야 하기에, 대도시의 삶 자체가 어느 정도는 자본주의에 시간을 자발적으로 헌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파견, 하청, 알바노동자들이 시간을 도둑맞는 모양새를 보면 일하는 시스템을 참으로 얄궂게 만들어 놓았고, 약삭빠르게도 훔쳐간다는 생각이 들어 ‘깊은 빡침’이 솟구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통근 버스는 출근시간보다 훨씬 일찍 노동자들을 공장 앞에 떨구어 놓고, 퇴근시간에는 정리정돈이라는 이름으로 붙잡아 둡니다. ‘무료노동’을 강제로 제공하게 되는 시간들입니다. 식당 문을 닫으면서 청소하는 시간은 근무시간으로 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출근 시간 정각에 오면 지각 처리를 해버리는 콜센터도 있습니다. 미리 와서 업무준비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시간을 도둑질해 갑니다. 노동시간에 포함시키고 급여에 반영하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습니다. 출근시간 전, 퇴근시간 후… 당연한 듯이 미리 오고 늦게 나가도록 일이 짜여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 양보한 것 같은데 계속 조건이 안 좋아 지는 거예요” 

“불면증은 해결 하냐고요? 그냥 사는 거죠, 약을 먹을 여건이 되지 않아요. 병원 찾아갈 시간이 있어야 처방을 받는 거잖아요“    

“바쁘고 정치얘기, 사회얘기 할 시간이 전혀 없어요. 문제를 일으키면 문제가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문제가 될 만할 꺼리를 만들지 않아요”

 

사전에 보면 빈곤은 살림이 어려운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의 빈곤, 화제의 빈곤 같은 식으로도 쓰입니다. 시간을 도둑질하는 것은 일하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의미있는 일을 할 수도 있고, 학습활동을 할 수도 있는 시간들입니다. 아니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시간 사용을 예측할 수 없고, 앞날을 계획할 수 없게 만드는 또 다른 문제는 관리자들이나 사장이 업무의 시간표를 바꾸거나, 규칙을 바꾸는 걸 쉽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주간 조로 들어온 사람에게 야간조를 제안하기도 하고, 출근 시간을 수시로 바꾸면서 길들이기를 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굴욕감을 느끼고, 불만을 제기할 에너지도 빼앗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서 소개한 따옴표 속의 말들을 읽어보세요. 

내 삶의 시간을 예측하고 계획을 세우고 내가 통제하는 시간이 있을 때 사람은 자기 자신과 공동체를 위해서 의미있는 일을 하기도 하고, 역량을 계발할 시간을 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어려워질 때 사람은 상대적인 빈곤, 박탈감, 소외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