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2.20 한겨레 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21세기 송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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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부재중 전화가 여섯통, 문자가 오고 또 오고. 답장은 안 보낸다. 그래도 우리는 만날 것이다. 송년회 날짜는 이미 두달 전에 잡아놓았다. 추석이 지나고 서울 구로역과 남구로역 사이 허름한 삼겹살집에서 모였었다. 봄에 갈게요, 여름에 갈게요… 유난히 길었던 추석 연휴까지 흘려보내고 찾아간 구로동 반지하 작업장. 손에 든 한과상자가 뻘쭘하다. 철 지난 명절선물세트는 생색을 내기에 적절치 않다. 그러나 이십년 지기 사회단체의 활동가는 이들에게 중요하다. 내가 건성건성 전화를 받아도 구로에 언제 올 거냐고 열정적으로 전화를 한다. 만날 때까지 연락을 하면 되기 때문에 성공률은 언제나 백프로.

‘산재노동자 자활공동체’ 작업장은 언제나 건물의 반지하에 세를 든다. 이번에 이사 온 공간은 널찍하고 마감도 깨끗하다. 계단도 깊지 않다. 그저 사각일 뿐인데 구석구석 구경시켜 준다. 작업장 사람들의 고향은 남쪽, 구로는 제2의 고향, 어릴 적에 서울로 올라와 공장일을 시작하고 손, 손목, 팔 같은 곳을 기계에서 빼내지 못했거나 기계가 눌러버렸다. 산업역군이라 불리던 노동자가 장애 노동자가 되었다.

노동상담소도 만나고 대학생들도 만났다. 노동운동이 깃발을 펄럭이던 시절, 깃발이 모이는 곳이면 따라다녔다. 손가락이 남아 있지 않아 주먹 쥐어져 있는 이들. 후유증이 깊은 이의 주먹은 재수술로 간혹 모양이 달라지기도 했다. 11월의 노동자대회 깃발이 모이는 대학교의 깊숙한 운동장, 노천극장의 전야제. ‘다라이’에 싸 간 주먹밥을 먹으며 따라하기도 어려운 구호들을 입만 벙긋거리며 흉내도 내고 팔도 휘둘렀었다. 따라다닐 깃발이 마땅치 않아지고, 끼어들어 앉을 빈자리가 촘촘해져 갔다. 노동운동을 한다고 생각을 해왔지만, 어느새 11월의 노동자대회에 가지 않게 되었다.

우편발송대행업으로 작업장을 꾸린 지 스무해가 되어간다. 큰 노조들이 신문을 만들어 전국으로 배포할 때에는 일이 많았다. 신문 발행이 뜸해지더니 온라인신문으로 대체되었다. 단체들이 내는 기관지나 노동조합이 간혹 보내는 우편물이 지금 일거리의 전부다. 십수명이 탁구대 여러개를 붙여놓고 일하던 작업장에 이제는 4명이 남았다. 북적거리며 모여 있을 적에는 일거리가 많아 활기찼던 만큼, 큰 싸움 작은 싸움 다툼도 많았다. 술은 왜 그렇게들 드시는지. 작업량은 줄어드는데 월급 나누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지.

몇해 전 어느 날 간식봉지를 안고 들른 작업장. 나는 충격을 받았다. 더 이상 밥을 같이 해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는 밥을 싸 오고 누구는 밖에 나가서 먹고 온다는 것이었다. 기름때 앉은 낡은 가스레인지와 플라스틱 밥그릇이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얀 쌀밥, 장아찌들, 가끔 큰맘 먹고 해내는 ‘닭도리탕’. 거기서 처음 먹어보았고, 그 후로도 못 먹어본 김국. 배 안 고픈데 하고 앉아서는 먹고 또 먹고, 구박받으면서도 왁자하게 웃던, 내 마음에만 담고 있던 이상향의 공동체는 남구로역 6번 출구에서 좌초하였다.

이것은 21세기의 이야기인가. 2017년 12월15일 금요일, 구로역과 남구로역 사이 돼지갈빗집에서 우리는 마주 앉았다. 4명 가운데 3명과 사이가 안 좋은 한분은 나오지 않았다. 소주 세병이 순식간에 비워진다. “수경아 나는 이렇게 세상과 연결돼 있는 게 참 좋아. 더 연락해서 모아볼게, 내년 봄에 꽃구경 가자.”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24415.html#csidx8a517f20868018fbbe31b6f5683e5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