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기록하고 되짚다
메탄올 세 가지 키워드1 – 제도운영과 정부 
              왜 막지 못한 것일까?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

메탄올 사건을 바라보는 네 가지 관점
메탄올 중독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함에 있어 몇몇 서로 다른 관점이 존재한다. 
먼저 예외적인 사건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안타깝고 불행한 사건이긴 하지만, 핸드폰 부품 생산의 수요가 과밀해진 특정 시기에, 안전보건 문제에 무감했던 일부 영세 제조업체의 관리체계 부실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 사건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면, 아무런 대책이 필요 없게 된다. 그저 무책임한 영세 사업장 사업주만 처벌하면 그만이다. 가장 문제가 많은 시각이다.
두 번째 접근방식은 이를 한국의 영세 제조업 사업장 일반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다. 한국의 영세 제조업 사업장 일반이 거의 모두 생산성 저하와 비용 절감 압력에 시달려 안전보건 예방관리 시스템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 그러다 보니 언제든 심각한 안전보건 사고나 집단 발병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번 사건은 그러한 문제가 곪아 있다 터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사고 재발을 위해서는 영세 제조업 사업장 안전보건 시스템 구축 문제가 핵심적인 사안이 된다.
세 번째 접근방식은 이를 사업장 화학물질 관리 체계 부실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다. 한국의 제조업 사업장에서 화학물질 관리 체계는 부실 그 자체인 것이 사실이다. 자신의 사업장에서 어떤 화학물질을 쓰는지, 그 물질의 독성이나 유해성은 어떠한지 알고 있는 이들이 거의 없으며, 그러다보니 당연히 관련 예방관리 체계도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화학물질 중독 사고는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 같은 것인데, 그게 이번에 터졌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한국 제조업 사업장의 화학물질 관리체계를 재정비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된다. 
네 번째 접근방식은 이를 사업장 안전보건 책임 관계의 불분명함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다. 파견 노동이라는 고용 관계의 특수성상 사용사업주, 파견사업주가 다름에 따라 법적으로 각각의 사업주의 의무가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가와 별개로, 실재 현장에서는 어떤 사업주도 노동자 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복잡한 안전보건 채임 소재를 단순화하고 실제 책임을 지워야 할 이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문제가 핵심적인 사안이 된다.
시스템의 실패는 맞다-그러나 어떤 시스템?
첫 번째의 관점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가지 관점은 이번 사건을 시스템 실패의 결과로 본다는 점에서 모두 일말의 진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건 초기부터 이 사건의 핵심은 네 번째 문제에 있음을 분명히 해 왔다. 물론 영세 사업장 일반의 문제, 화학물질 관리 체계 부실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수준에서 이는 한국의 고용 문제, 비정규직 문제의 한 반영이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동건강연대의 입장은 제조업 불법 파견 문제 해결이 요원해 보이는 현실 속에서 너무 근본적인 문제 제기이고,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해결 방식 제안을 가로막는다는 비판이 없지 않았다. 주구장창 파견 문제만 얘기하면 어떻게 하냐고, 삼성과 LG의 사회적 책임 문제만 제기하면 뭐가 하나라도 바뀌냐는 문제 제기도 없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아주 조그마한 거라도 하나 바꿀 수 있게 구체적인 정책을 얘기해야 하지 않냐는 주장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 제기 모두는 새겨들을 만한 것이었지만 우리는 메탄올 중독 사고 문제가 불법 파견 문제, 원청 사업장의 책임 문제이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는 노동건강연대가 노동자 안전과 건강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 태도, 존재조건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건강연대는 노동자 안전과 건강문제를 정치경제학적으로 접근하는 사회운동 단체이다.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분석 및 접근 방식과 운동 방식이 보다 근본적일 뿐 아니라 실용적으로도 노동자 안전과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핸드폰 생산 주기와 맞물려 핸드폰 생산에 필요한 알루미늄 부품 물량 수요가 많아지면서 이를 생산하는 인천, 부평 인근의 영세 공장들은 불법인줄 알면서도 파견 노동자를 공급받아 일을 시켰다. 공장 사업주들은 이들의 이름도 잘 모른 채 업무와 관련된 교육이나 지시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바로 현장에 투입했다. 안전이나 건강상의 주의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사실 제조업 공장에서 불법으로 파견 노동자를 쓴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공단 지역 사람들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이들을 이 공장에 소개한 파견업체도 노동자들을 개인적으로 파악하거나 교육하지 않는다. 인터넷 사이트만 열어놓고 노동자들을 가입시켜 해당업체에 소개해 주고 수수료만 받아 챙긴다. 파견법상으로는 이 업체가 4대 보험 등을 가입하고 인력 관리도 해야 하지만 그런 건 안한다. 불법업체니까.
삼성, LG의 책임과 불법파견의 책임
영세 공장 사업주는 상대적으로 독성이 덜한 에탄올을 써야 하는 작업 과정에 메탄올을 썼다. 에탄올이 2배 이상 비싸기 때문이다. 메탄올을 썼으면 노동자들이 그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환기 시설을 잘 갖추고, 장갑, 마스크, 보안경 등을 지급했어야 했는데 그도 안 했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기겠냐 싶었다. 불법 파견으로 온 노동자들이니 존재도 없는 노동자들이라 교육이나 정보 제공은 신경도 안 썼다. 법적으로는 이 사업주의 책임임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LG전자 등 핸드폰 생산 대기업은 1차 하청기업에 알루미늄 케이스와 부품을 납품하라고 하고 계약을 맺은 뒤, 그게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생산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최근 핸드폰 배터리에 들어가는 코발트라는 물질을 생산하기 위해 아프리카 콩고에서 아동 노동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국제앰네스티 등에 의해 밝혀졌다. 전자산업 부품의 공급사슬(supply chain)에서 대기업의 인권 보호 책임 혹은 의무가 점차 강조되고 있는 추세다. 삼성전자 등 해당 기업은 핸드폰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 원료를 생산하는 광산은 전세계에 걸쳐 있고 몇 천개가 넘는데 이를 어떻게 다 신경쓰냐고 항변한다. 그러나 국제규범상 대기업의 ‘상당한 주의 의무(due diligence requirements)’는 기업의 가치 사슬에 있는 모든 당사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확인하고, 예방하며, 경감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삼성전자, LG전자 공급망 사업장에서 발생한 직업안전보건 문제 및 불법 파견 문제에 대해 삼성전자, LG전자에게 사회적 책임이 있다.
메탄올 중독 사건이 한국의 고용문제, 비정규직 문제, 원청의 책임 문제와 보다 깊숙이 관련되어 있는 문제라는 데 동의하는 이들 중에서도 불법 파견 문제를 보다 전면에 내세우고 논의를 진행할 것이냐, 원청 사업주의 책임 문제를 보다 강조할 것이냐를 두고 이견이 있었다. 그리고 일부는 노동건강연대가 이 사건과 관련하여 삼성과 LG의 책임 문제를 거론하는 데에 경도되어 불법파견 문제를 제기하는 데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문제 제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오해이거나 부당한 비판이다. 노동건강연대는 이 두 가지 문제는 서로 나뉘어져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에 상황적이거나 계기적인 이유로 어느 한쪽을 어느 시기에 보다 강조한 적은 있으나 의식적으로 두 가지 문제 중에 우선순위를 정한 적은 없다. 한국에서 대기업의 불공정 하도급 거래, 위험의 외주화 문제와 그게 하도급이든 파견이든 불안정 고용 노동자 증가의 문제는 서로 연관되어 있는 문제이다.
이러한 논의와 별개로 메탄올 중독 사건은 또 다른 측면에서 고민해 볼 거리들을 많이 던져주었다.
시스템의 후진성과 노동자공급기술의 첨단성(?) 
과연 이번 사건이 한국의 안전보건 시스템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것인가. 아니면 변화하고 있는 노동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메탄올이라는 화학물질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인류가 사용해 오던 물질이고, 이러한 물질을 사용하는데 있어 주의해야 할 수칙은 아주 상식적인 것이며, 메탄올 중독 사고가 났다는 보고가 제3세계에서조차 확인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번 사고가 한국의 안전보건 시스템이 얼마나 후진적이고 불균등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는 한국의 안전보건 시스템이 GDP로 대표되는 경제 규모에 맞지 않게 뒤떨어져 있고, 어느 부분은 매우 선진적인데 반해 어느 부분은 제3세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현실을 말한다는 점에서는 진실이다.
하지만 이번 문제는 아주 잘 알려진 오래된 문제도 적절히 잘 해결하지 못한 후진적 시스템 문제만은 아니다. 파견 노동자를 모집하고 업체를 배당하여 파견하는데 개입된 새로운 기술 문제도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거 오프라인 구인, 구직 광고와 모집, 인력 배치되던 시대와 핸드폰, 인터넷 등 전자통신기술을 이용한 온라인 구인, 구직 광고와 모입, 인력 배치가 진행되는 시대의 변화도 분석의 시야에 넣을 필요가 있다.
알바 모집 어플리케이션이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손쉽게 구인, 구직, 인력 배치가 되는 상황 속에서 인력의 관리나 교육, 소통, 네트워크 등이 깨지거나 사라졌기에 새롭게 발생하는 문제도 존재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크기와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조사와 연구를 통해 확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 가져다 준 현장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심층적인 접근이 필요한 문제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사고가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한 시스템 부재에 대한 논의와 별개로 보다 조기에 문제의 일단이 발견되어 조기 대책이 세워졌더라면 피해의 규모를 줄일 수 있었을텐데 그게 되지 못한 측면에 대해서도 언급이 필요하다.
정부는 2016년 1월 최초 환자 확인 후 빠른 대처로 추가 환자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그 이후 환자 발생을 예방할 수 있었다고 하며, 이번 사고 대처에 있어 초기 대응이 잘 되었던 것처럼 얘기하고 있지만 이것은 아주 일부분에 불과한 사실을 과장한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초기 환자 발생 후 9개월이나 지난 2016년 10월, 우연하게 확인된 환자가 그로부터 자그마치 1년 전인 2015년 2월에 메탄올 중독 사고를 겪었다는 점이었다. 이 환자가 2016년 10월이 아니라 사고 발생 직후인 2015년 2월에 확인되고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더라면 그 이후 피해자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환자는 왜 공식 산재 발생 보고 체계에 포함되지 못했고, 그 후로도 오랜 기간 개인적으로 산재 보상을 받을 기회도 잃은 채 지냈어야 했을까? 물론 산재 보상도 하지 않고, 돈 몇 푼 쥐어주고 개인적 합의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려 했던 해당 공장 사업주의 문제가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이 비일비재함을 고려할 때 이는 이 사업주 개인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한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사업주가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정부에 보고를 하고 산재보험으로 처리하기 보다는, 사고를 숨기고 개인적 합의로 해결하려는 문화가 뿌리 깊게 내재화된 이유를 밝히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산재 사고 보고 시스템과 통계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를 이 사건을 되돌아보며 반추할 수 있어야 한다. 
청년, 일자리, 계급
청년 고용 문제, 청년 일자리 문제가 화두가 되어 있는 현실 속에서 다수의 청년들이 손쉽게 구하는 일자리가 대부분 저임금이거나 위험하거나 건강을 해치는 일자리라는 사실도 지적되어야 한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문제도 시급하지만 어떠한 일자리에서 일하게 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메탄올 중독으로 시각과 뇌 손상을 입은 청년들은 자신이 선택한 일자리에서 이와 같은 사고를 당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이들이다. 다수의 청년 일자리들에, 특히 소위 ‘알바’ 일자리들에, 해당 일자리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 제공이나 직무 교육, 안전 교육도 없이 많은 청년 노동자들이 ‘투입’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러한 청년 노동자 일자리를 고위험 일자리로 파악하고 이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정책적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메탄올 중독 사건을 안전보건 제도 측면에서만 돌아보더라도 많은 분석 과제와 고민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의 논의를 벗어나는 내용이라 논의하지 않았지만, 메탄올 중독 사고 문제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계층 단절 문제와 특성화고 졸업생 혹은 전문대 졸업생 청년 노동자들의 신산한 삶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사회의 노동, 건강, 안전, 교육, 계층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이들에게 이 사건은, 지금 여기의 문제점을 그 어떤 교과서나 텍스트보다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텍스트이자 컨텍스트이다.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해 보다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그 이야기가 널리 전파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