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주관적인 서평

20년 전의 성찰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김동춘 『사회학자 시대에 응답하다』

전수경 / 읽는 사람

 

김동춘 교수에게 노동건강연대의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을 부탁한 적이 있다. 토론회 관객은 열 명 남짓이었던 것 같다. 아주 오래전 일인데도 가끔 생각난다.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김동춘 교수는 전문성이 없는 분야라고 고사하다가 기꺼이 와 주었다. 김동춘 교수는 노동자의 건강문제를 집합적 계급적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노동운동과, 노동자 내부의 건강의 격차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했다.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이고 풀지 못한 숙제다.

시대의 요구가 있다면 그에 답하는 학자. 책 한권 읽었다고 서평을 쓸 실력은 안 된다. 그냥 생생하고 깊이 있는 그의 글, 작은 논문들을 읽는 재미가 좋다.

<시사IN> 주간지 517호(2017.8. 9 발행)에 ‘‘삼성 장충기 문자’ 전문을 공개합니다‘ 라는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에서 이런 문자들을 보았다.

 

사장님, 식사는 맛있게 하셨는지요?… 삼성도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혹시 여지가 없을지 사장님께서 관심갖고지켜봐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앞으로 좋은 기사, 좋은 지면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복많이받으셨습니까? 지난해는 사장님회사의지원으로우리나라가안정되지않았나 생각합니다.감사드립니다. 또한 자료는 아주 유용하게활용되고있습니다.이또한감사합니다.올해도변합없는성원부탁드리며,회사와더불어국가의발전을기원합니다.행운과행복을듬뿍담아인사드립니다^_^

언론사 간부가, 국가정보원 간부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장충기라는 자에게 보낸 문자들이다. 장충기라는 자는 삼성에서 정보와 대관업무(정부상대 업무를 지칭한다고 함) 를 총괄했다고 한다. 언론사, 국가기관의 고위직들이 재벌기업 사장들과 저리 배려심 많고 애교 넘치는 문자를 주고 받는구나, 빤스만 입고 있는 모습을 훔쳐본 본 듯 민망하다.

김동춘 교수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내가 말하는 사회의 기업화는 그동안 학자들이 많이 이야기해온 바, 단순한 법인체의 영향력 확대와는 다르며, 사회구성원의 기업의 종업원화라는 의미에 가깝다. 과거에는 기업이 음성적 로비 등을 통해 정치권, 정부, 언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다면, 기업사회에서는 정치, 정부, 언론의 활동이 사실상 기업들이 외주 용역을 준 것과 같은 양상을 띠게 된다. 즉 기업의 정치부서, 기업의 행정·사법 담당부서, 기업의 홍보부서 일들을 기업조직 내에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중립성의 외양을 띤 별개의 조직이 수행하도록 하되, 그 방향은 기업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정부의 조직과 인원, 기능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부에 남아 있는 인력도 낮에는 공익적인 일을 수행하지만 밤에는 기업의 직원으로 역할하도록 하고, 언론과 대학을 최대한 사유화하여 기업의 원리에 따라 작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2007년에 쓴 글이라고 한다. 한국사회를 ‘기업사회’라 명명한다. 기업의 CEO가 사회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을 넘어서 사회조직이 기업조직처럼 되었다는 의미에서다.
저 문자들은 ‘기업사회’의 꼭대기에서 누가 권력을 쥐고 있으며, 어떻게 작동되었는지 원초적으로 보여준다. 저 문자를 입수 공개한 시사주간지 <시사IN> 기사에는 진짜 권력자는 이재용 같았고, 박근혜 최순실은 들러리 같았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꼭대기만 욕하고 시원하다 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이미 뼈 속까지 기업사회가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가족, 학교, 공공기관, NGO 등 돈벌이와 관계없는 사회조직도 기업조직의 원리와 운영방식을 채택하여 인간 사이의 수고와 노력이 금전 보상으로 대체되고, 우리는 기업에 고용되기를 원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김동춘 교수의 책은 글 쓰는 자신을 미화하는 글쓰기와 다르다. 어떤 학자들의 글은 글을 쓰는 자신에 대한 사랑을 주체하지 못한다. 교수들이 왜 그렇게 자주 신문의 독자투고 란에 짧은 글들을 투고하는지 모르겠지만, 사회문제에 막 눈뜨는 흥분 같은 감상이, 여과되지 않은 글을 볼 때가 제법 있다.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 이해관계의 갈등과 혼란, 통계와 숫자 등을 섞어서 현상의 거죽을 핥는 글을 언론사에 보낸다. 본인이 취재한 것이 아니라 언론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소재를 얻어 짜깁기한 것처럼 보이는, 신문사들은 이런 글에 왜 그렇게 관대한지.
『사회학자 시대에 응답하다』 는 주로 잡지에 시평형식으로 기고한 글 중에서 해마다 한편씩을 모아서 책으로 묶어냈다. 주제들은 무거운 편이고, 여전히 답을 기다리는 질문들이다.
책의 맨 뒤에 ‘책을 기획하며’ 라는 짧은 글이 실려 있다.

1990년대, 2000년대 한국 사회의 흐름을 특정 지식의 글을 따라가며 경험하는 책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어떤 사회적 의제에 관한 당시 여러 논자의 글들을 묶어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보기로 했다. 그 자가 시대 속에서 남긴 사고의 편린들을 지금 시점에서 모아 유산화한다.

이런 기획으로 찾은 첫 번째 학자. 당대에 개입하려는 평론의 색채가 짙고, 집요하게 자신의 현재와 비평적 관계를 맺어온 사회학자를 찾으니 그가 김동춘 교수였다고 한다. 자신의 목소리로 쓰되 연민도 미화도 아닌 글을 쓰는 학자.
동시대의 현상들에 대하여 소재만 끌어다 쓰면서 동어반복의 해결책을 내는 학자들 글이 많다. 『사회학자 시대에 응답하다』 는 우리가 겪는 현상의 근원, 우리 사회가 존재하는 시공간의 구조물은 어떤 역사와 정신으로 건축되어 온 것인지 그 기원을 찾고자 하는 지적인 성실함, 지적인 집요함을 담았다. 집요함은 겸손에서 오는 것 같다. 공부해야 할 것이 아직 많다는 것을 아는 것. 충분히 알기 전에는 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그는 『역사비평』 편집위원을 할 때 역사학자들로부터 팩트를 추궁하는 연구태도를 많이 배웠다고 한다. ‘사회과학자들이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고, 정확한 근거없이 이야기하는 안 좋은 점을 교정하는데 엄밀함을 추구하는 역사학의 방법론이 도움이 되었’ 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용역 폭력이 활개치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를 읽을 때는 이렇게 좁은(?) 문제까지 다루는 거야, 짐짓 시시하다고 생각했으나, 길지 않은 글인데도, 읽은 후에는 현대사에서 국가와, 국가가 용인하는 폭력의 관계가 눈에 들어왔다. 해방 후 좌익을 때려잡는 서북청년단과 1970년대의 구사대, 1980년대 이후 등장한 철거현장에 나타난 용역깡패, 이명박 정부에서 노조를 파괴하던 사설폭력집단은 국가의 비호, 묵인을 넘어서 ‘폭력행사의 보조적 역할을 하였다. 해방 직후 북에서 내려와 깡패가 된 서북청년단과 검은 헬멧을 쓰고 파업현장에 나타난 사설경비업체 직원들의 시대는 다르지만 계급적으로 동일하다. 한국의 자본주의 형성과 폭력은 씨줄 날줄로 직조되어 있다.

해방정국의 우익 테러 세력은 먹고 살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가난한 사람들,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가했고, 이승만이나 극우 세력은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중략)사실 폭력의 횡행 그 자체가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실업과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원수로 만들고, 이들 모두를 쓰레기로 만드는 자본주의 자체가 쓰레기 자본주의다.

탄핵 이후 새 대통령이 흰 셔츠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주간지 표지를 본다. 상쾌한 느낌이다. 노골적이고 원초적인 폭력을 이용하여 국가권력, 기업권력을 작동시키는 시대는 이제 간 것일까. 군에서 일어난 노예병사 사건을 본다. 전자팔찌를 찬 채 장군의 사택에서 전을 부치고 떡국을 끓이는 군인. 장군의 냉장고를 청소하는 군인, 동료군인을 잔혹하게 괴롭히는 군인. 군대 내 폭력과 김동춘 교수가 말하는 쓰레기 자본주의는 겹쳐 보인다, ‘똥파리’ 자본주의는 군대라는 서식환경 속에서 온존한다. 그리고 사회로 나와 ‘갑질’과 순응의 전근대적 직장문화, 조직문화로 양분을 공급한다.

그의 박사논문 제목이 「한국노동자의 사회적 고립」 이라고 한다. 1993년이니 노동자대투쟁이 있던 1987년으로부터 멀지 않고, 현장의 노동운동이 활발하던 시기다. 그 때 인천, 마산 등 현장을 다니면서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하는데, 이미 노동운동의 후퇴가 시작되었다고 진단하였다. 1990년대 초반 이미 한국의 노동운동은 기업별 노조로 정착하고 있었으며, 이후 계속 심화되어 왔다는 것이다. 2004년에 쓴 ‘왜 전태일 기념관이 필요한가’를 펼쳐본다.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의 창립선언문, 1996년 민주노총의 창립선언문에는 전태일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한다. 70년대 노조운동에 대한 일반적 언급 정도만 있을 뿐이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하의 지배적 담론이 ‘경제 성장’이었다면, 전태일은 그 ‘성장’의 그늘이었다. 그는 성장주의의 비인간화에 맞선 민주화 그리고 인간화운동의 상징으로 부각되었다…(중략) 그런데 전태일의 노선은 자본과의 적극적인 대결 투쟁을 요구하는 1980년대 후반 이후 노동운동의 한 전사前史로만 다루어졌으며…현재 전태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열악한 사업장이나 극히 부당한 노동조건에서 고통받는 주변부의 노동자들, 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하청업체 노동자들이다.     

노동운동이 기업별노조로 빠르게 성장하는 사이 전태일을 기억하고 지표로 삼았던 영세사업장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잊혀졌다. 노동운동은 전태일과 그 친구들을 잊었는가.
1997년에 쓴 ‘노동자대투쟁과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보자.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 노동자들은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노동법개정 문제에 대단히 소극적이었다. 그러니 이들이 자신의 생활과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제반 사회입법의 개혁에 무관심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1987년 이후 지난 10년은 소수의 교섭력 있는 노조가 임금인상과 복지혜택을 누리면서 점차 정부가 용인한 기업별 노조체제의 포로가 된 대가로 사실상 노동자 전체의 사회적 역량을 제자리걸음이었다. 

1997년에 쓰인 이 글을 2017년의 현장 활동가가 구어체 버전으로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지금 이 책에 실린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남신 소장의 인터뷰를 보라. 탄식, 한탄 같은 것. 20년 전에 출발한 성찰은 아직 우리 노동운동에 도착하지 않은 것인가.

지식인은 통상 냉엄한 권력투쟁이나 자본 축적의 세계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되어 있기 때문에, 이념과 원칙의 관점에서 노동 문제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이때 노동문제는 실천의 대상이라기보다 유토피아 실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당장의 현실에서 약간의 진전이라도 수용해야 하는 보통 노동자의 입장과는 크게 다르다.

지식인도 아닌 나는 활동하면서 늘 저런 종류의 내면의 갈등을 겪는다.
그가 박사논문을 쓸 당시 사회변혁의 방법론에 대하여 운동진영간의 논쟁이 치열했는데 레닌이 이 구절은 이렇게 주장했고, 마르크스가 이 구절은 이렇게 주장했고, 이렇게 논쟁하는 게 어이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레닌이나 마르크스의 문건으로 자기 입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엄청 짜증이 나 있었어요’ 이런 문제 인식을 기반으로 노동운동의 현장을 조사한 박사논문이 나왔다는 것이다.
지나간 시대의 회고담이 아니다. 쓰인지 오래된 글도 동시대의 질문을 품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김동춘 교수의 숨가쁜 분석에선 분노와 슬픔의 기운을 감출 수가 없고, 박근혜 게이트와 촛불혁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촛불을 들었던, 들지 못했던 시민 모두를 살핀다.

아 글을 마치기 전에, 왜 그렇게 많은 학자들이 신문에 투고를 하는가, 나의 불평에 대하여 김동춘 교수가 답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저도 칼럼을 쓰는 사람이지만 미디어가 학자들에게 저널리스트 역할을 요구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참 웃기는 현상인데, 학문적으로 천착하는 사람보다 미디어에 알려진 사람들이 마치 대단한 학자인 것처럼 보이는 경향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에서 학문의 체계가 아직 안 잡혀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