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1 기업살인, 기업에 대해 더 많이 말하기

 

기업이 관행이라고 말하니 법원이 이해해 준다

– 2015년 강남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1심 판결 분석

 

 

정우준/ 노동건강연대

 

 

 

4000만원, 한 명의,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벌금

 

2015829일 강남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한 명의 노동자(이하 A)가 사고(이하 강남역 사고)로 사망했다. 안전조치도 없이 혼자 일을 하다 역사 내부로 진입하는 전동차와 충돌하여 두개골 골절로 사망한 것이다. 2013년 성수역에서 발생한 사고(이하 성수역 사고)와 동일한 사고였지만 2년의 세월과 그간의 대책이 무색하게 똑같은 구조로 노동자가 사망했다. 마찬가지로 9개월 후인 2016년 구의역에서도 동일한 사고(이하 구의역 사고)로 한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2018222, 서울중앙지법에서 강남역 사고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사고가 난 지 2년 반 만에 1심 재판이 마무리 된 것이다. 2013년의 성수역, 2014년의 독산역에 이어 3년 연속 스크린도어 수리 중 노동자가 사망했고, 2016년 구의역 사고로 노동자의 안전문제가 어느 때보다 진지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때라 서울메트로와 A가 일하던 기업에 엄벌이 처해질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재판 결과 그 누구도 노동자가 사망한 것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받지 않았다.

원청업체인 서울메트로와 관계자들은 무죄를 받아 책임이 면제되었다. 사망한 노동자가 일했던 회사의 사장은 벌금 2000만원, 안전관리자와 회사는 각각 1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강남역 사고 재판은 원청의 책임을 경감하는 전통적인 법리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사실상 법원이 기업의 위험의 외주화를 독려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법령에 의하면 도급인에게 수급인의 업무에 관하여 관리 감독의무가 부여되어 있거나 도급인이 공사의 시공이나 개별 작업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지시 감독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도급인에게는 수급인의 업무와 관련하여 사고방지에 필요한 안전조치를 할 주의의무가 없다.

 

2016년 구의역 사고 이후, 노동자의 죽음이 노동자 개인의 탓이 아니라 하청으로 위험을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와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알려지고 있다. 안전을 돌아보기에는 부족한 수의 인력을 고용하는 기업 때문에 사고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죽음에 이른 노동자에 대해서 법원의 무감각은 여전했다. 강남역 사고에 대한 판결은 일하다 죽는 노동자에 대한 책임과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다시 깨닫게 해주었다. 이 글은 강남역 사고와 그 판결을 통해 현재의 법과 제도 속에서,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을 때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관행이 된 위험, 관행은 강력한 알리바이

 

강남역 사고가 있던 2015829, A는 강남역의 연락을 받아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직원들이 3일에 한 번 꼴로 수행하는 스크린도어 장애물검지센서 청소작업을 하기 위해 강남역에 도착한다. A가 했던 청소작업은 스크린도어를 열고 선로 쪽으로 들어가 한손으로 스크린도어를 잡고 다른 손으로 센서에 묻은 먼지 등을 제거하는,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일상적인일이었다. 언젠가부터 혼자 1분 만에 청소를 하는 것이 관행적인 일상적 작업이 되었지만 사실 이 작업은 스크린도어를 잡은 손을 놓쳐 추락하거나 운행 중인 열차와 충돌할 위험이 매우 높은 작업이다. 그 위험성은 2013년 성수역과 2016년의 구의역 사고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처럼 빈발하는 사망사고는 이 작업을 21조 혹은 31조로 수행해야 한다는 작업 매뉴얼을 만들게 한 계기였다. 하지만 21조 혹은 31조로 일하기 위한 인원을 채용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에게 위험한 업무가 계속되고, 또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위험한 업무가 지속되는 상황을 만드는 일이 당연시 되는 이상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되는 작업 속에서 A가 어떻게 사고를 당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재판 기록을 통해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A는 유진트로컴(이하 유진)에 다니는 28살 노동자였다. 유진은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와 협약을 맺고 24개의 역사에 스크린도어를 제작하고 설치해주는 대가로 스크린도어에 대한 광고판매권과 시설운영권을 가진 회사였다. 협약에 따라 유진은 스크린도어 고장에 대한 서울메트로의 요청이 있으면 경미한 상황은 1시간, 중고장은 24시간 내에 조치를 취하는 역할을 해야 했다. A는 유진에서 이 조치를 수행하는 기술본부에 근무하는 노동자였다.

사고가 발생한 날에도 A는 서울메트로의 고장신고를 받고 사고가 난 강남역으로 갔다. 2013년 성수역 사고 이후 서울메트로가 내놓은 안전대책과 201541일 경부터 규정된 절차에 따르면 전동차가 운행하는 시간에 스크린도어를 수리해야 한다면 설비팀 등의 승인을 얻고 난 후 21조 또는 31조로 작업해야 했다. 또 종합관제소와 역무실에 통보하고 별도의 안전 요원을 배치해야 했다. 그러나 A는 혼자 강남역에 방문해 역무실에서 유진에서 나왔다고 이야기한 후 고장난 스크린도어를 CCTV로 확인하는 절차만 거친 뒤 사고가 난 10-2 스크린도어로 향했다.

유진의 사장은 A와 같은 일을 혼자하다 사망한 성수역 사고를 알고 있었지만 스크린도어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기술본부장이 알아서 잘 할 것이라 생각하고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했다. 기술본부장과 원청인 서울메트로의 직원 역시 성수역 사고 이후 제정된 매뉴얼이 있음에도 위험한 업무를 관행적으로 하청업체 직원 개인에게 맡겨둔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A는 고장난 지 1시간 안에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에 서둘러 강남역으로 달려왔고, 강남역에서 홀로 작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열차가 들어왔다. A는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사망했다. 피 묻은 스크린도어 사진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