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1  기업살인, 기업에 대해 더 많이 말하기

영국과 미국은 기업주를 처벌하고 있다

박진욱 / 계명대학교

영국 : 기업살인법 유죄판결 세 가지 사건


영국의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은 2007년 7월에 통과되어, 2008년 4월에 발효되었다. 기업살인법 위반 시 벌금액에 상한선은 없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벌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2016년 이후 선고 사례들을 살펴보면 가장 낮게 선고된 금액이 30만 파운드, 한화로 약 4억 5천만 원이다. 기업살인법에 의한 첫 번째 유죄 판결은 2011년 2월에 있었고, 많은 기소 사건들 중 현재까지 선고가 이루어진 사건은 20여 건이 약간 넘는다. 기업살인법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여러 사례들 중 회사에 대한 벌금형과 책임자에 대한 징역형이 함께 선고된 최근 선고 사례 세 가지를 소개한다. 

 

사례1] 중량물 운반 작업 중 노동자 두 명 사망, 벌금 18억 원과 관리자의 징역형
(2017년 5월 선고)


2014년 11월, 영국 런던 서부 나이트브리지의 고급아파트 리노베이션 작업 중 20대 노동자 두 명(토마스 프로코, 키롤 시만스키)이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다섯 명의 노동자가 115kg 짜리 소파를 약 7미터 높이의 건물 상층부로 올리는 작업 중에 벌어진 일이다. 애초에 이 작업에는 운반용 승강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를 설치하려면 848파운드, 한화로 약 126만 원의 설치비가 들게 된다. 리노베이션 작업을 담당한 마티니제이션 사의 임원 마틴 구타즈는 비용 절감을 위해 승강기 설치 요청을 거절하고 사람들이 옮기라고 했다. 이에 다섯 명의 노동자가 발코니 난간에 의지해 보도에 있던 소파를 건물 위로 끌어올리던 중 발코니 난간이 무너지면서 두 명이 추락한 것이다. 이 사고로 마티니제이션 사는 기업살인법 위반으로 120만 파운드, 약 18억 원의 벌금을 선고 받았다. 승강기 설치 요청을 거절한 마틴 구타즈 역시 기업살인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14개월의 징역형과 임원자격정지 4년을 선고받았다.     

 

사례2] 지붕수리 작업 중 노동자의 추락사, 벌금 12억 원과 임원 세 명의 징역형
(2017년 5월 선고)


2015년 4월, 영국 에섹스 할로우 지역 오즈딜 투자회사가 소유한 창고에서 지붕 수리 작업을 하던 63세 노동자 니콜라이 발코프가 추락사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오즈딜 투자회사 임원이었던 피랏 오즈딜과 오즈구르 오즈딜은 지붕 수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코세오글루 금속가공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친구 코세에게 지붕 수리작업을 맡겼다. 그러나 코세오글루 사는 지붕 수리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던 곳이다. 지역 안전보건위원회 등에서 지붕 수리 작업의 위험성이나 안전망 설치 같은 안전 조치의 필요성을 경고했지만, 이들은 이를 무시한 채 수리를 진행했다. 작업현장에 대한 위험 평가나 작업할 노동자에 대한 훈련도 없이 수리 작업을 하던 중 니콜라이 발코프가 지붕의 채광창을 밟아 추락했고 사망한다. 이 사고로 피랏 오즈딜은 징역 1년, 오즈구르 오즈딜은 징역 10개월, 코세는 징역 8개월 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그리고 오즈딜 투자회사에는 벌금 50만 파운드 (약 7억 5천만 원), 코세오글루 사에는 벌금 30만 파운드 (약 4억 5천만 원)가 각각 선고되었다. 

사례3] 악천후 속에서 작업하던 노동자의 추락사와 책임 은폐 시도, 벌금 6억 7천만 원과 관계자 네 명의 징역형 (2017년 3월 선고)


2014년 12월, 영국 맨체스터 램스바텀에 위치한 플렛처 뱅크 쿼리사 창고의 철거 작업을 하던 25세 노동자 벤자민 엣지가 건물 지붕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작업 현장에는 비계도 설치되지 않았고 그물망이나 추락방지 벨트도 없었다. 이렇게 안전설비가 전혀 없는 가운데 비바람이 부는 악천후 속에서 지붕 위를 오가며 작업을 하던 벤자민 엣지는 추락하여 사망하게 된다. 원래 플렛처 뱅크 쿼리사로부터 건물 철거 작업을 수주한 곳은 MA 익스카베이션이라는 토목회사였다. 그런데  이들은 SR and RJ 브라운이라는 건설회사에 다시 하청을 주었다. 벤자민 엣지는 SR and RJ 브라운 사에서 6년 동안 일해 왔다. 사건이 발생하자 MA 익스카베이션 대표 마크 아스핀과 SR and RJ 브라운사 대표 로버트 제임스 브라운, 크리스토퍼 브라운은 안전보건 위반을 감추기 위해 사건 현장을 조작한다. 사고 당시 벤자민 엣지와 함께 지붕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던 피터 힙을 매수하여, 사고 직전에 벤자민 엣지가 추락방지 벨트를 벗었고 피해자가 안전관리 지침을 무시한 것처럼 공모했다. 하지만 조사를 통해 결국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다. MA 익스카베이션의 마크 아스핀은 징역 12개월, SR and RJ 브라운의 대표 로버트제임스 브라운과 크리스토퍼 브라운은 각각 징역 20개월, 사건 은폐에 가담한 피터 힙에게도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다. 이와 별도로 MA 익스카베이션 사에는 벌금 15만 파운드 (약 2억 2천만 원), SR and RJ 브라운 사에는 벌금 30만 파운드 (약 4억 5천만 원)가 각각 선고되었다.

              

미국 : 소유주와 관리책임자를 징역에 처하다 


미국은 기업살인법이 제정되어 있지 않다. 작업 중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자에 대한 기소가 진행되기도 하는데, 연방법이 아닌 주법에 의해 사법 절차가 진행되고, 경범죄로 기소되는 경우가 많았다. 주별로 차이는 있지만, 많은 경우 처벌의 수위가 높지 않아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징역형이 선고된다 하더라도 6개월 이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2015년 12월 미국산업안전보건국과 법무부는 고용주가 노동자 사망사고에 책임이 있는 경우 고용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양해각서를 맺었다. 이 양해각서의 영향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최근 미국에서도 노동자의 작업 중 사망에 대해 소유주와 관리 책임자를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하고 각각에게 2년의 징역형을 선고한 사례가 있어서 소개해 본다. 

사망 사건은 2012년 1월에 발생했다. 라울 자파타는 시노 인베스트먼트 사에 고용되어 캘리포니아 주 주택 건설 현장에서 콘크리트 기초 작업을 하는 일용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사고가 발생하기 이틀 전, 밀피타스 시 건물검사관이 공사 현장을 방문했고, 현장의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고 있던 단 루오에게 현장의 굴착 작업 등이 부적절하게 수행되었음을 지적하며 작업 중단 통지서를 발급했다. 그러나 단 루오는 노동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작업을 중단하지도 않았다. 작업 중단 통지서 발급 이틀 후, 단 루오는 노동자들에게 복도 굴착 작업을 지시했다. 그러나 굴착 작업 중 벽이 무너지면서 라울 자파타가 그대로 매몰되었고, 이틀 간의 구조작업 끝에 발견했을 때에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법원은 시노 인베스트먼트, 시노 인베스트먼트의 소유주인 리차드 리우, 사고 작업장의 프로젝트 매니저였던 단 루오 모두에게 이 사고의 책임을 물었다. 시노 인베스트먼트 사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16만 8,175달러(약 1억 8천만 원)의 벌금을, 리차드 리우와 단 루오는 과실치사혐의로 각각 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리차드 리우의 항소는 기각되었고, 단 루오는 2017년 항소심 재판에서도 2년형을 선고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