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1 기업살인, 기업에 대해 더 많이 말하기
노동자의 죽음에 계몽의 슬로건으로 답하다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1. 노동부인가 선전부인가
<개그맨 정태호의 안전벨소리>
구 분 |
카 피 |
작업 시작 전 (보호구 착용) |
잠깐! 일하러 나가시기 전에 안전모랑 안전화는 잘 챙겼나요? 작업 전에 개인보호구를 착용하고 꼼꼼히 복장을 확인해야 한다구요~ 어제 아무 일 없었다고, 귀찮다고 소홀히 했다가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작업 전 보호구 착용 잊지 마세요! |
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은 표를 그대로 옮겨보았다.
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에는 홍보자료가 넘쳐난다.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지속적으로 자료들을 올리고 있다. 안전 동요, 안전 노래, 벨소리 다운받기, 웹툰, 애니, 안전공단 캠페인송, 로고송, 안전연극, 안전 동화… 장르별로 있을 건 다 있다. 출연진들은 초등학교 합창단, 중창단, 대중가수, 개그맨, 연극배우, 유명 웹툰작가 다양하다.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낸 콘텐츠의 제목들은 이러하다. 안전의 참견, 가우스 임파서블, 딸바보가 그렸어, 동화로 배워보는 산재예방, 무사고 패밀리, 산재예방 달인, 위기탈출 넘버원, 제로의 약속, 나안전 PD의 산업재해 제로, 안전 1박2일, 바람의 작업자…이건 시리즈물이다.
번개맨보다 안전맨, 안전은 나의 수호천사, 무재해는 좋아, 안전이 최고야, 별일 없겠지… 는 노래 제목들, 흥이 넘치는 제목들이다. 가사를 한 번 들여다보자.
<1절>
얼른얼른 급하다 급해 빨리빨리 해! (아 빨리 하자구)
안전은 무슨 그런 건 대충 대충 하자구 (대충 하자구)
하지만 안전모를 안 쓰면 (아악~)
안전수칙 안 지키면 (염라대왕이다~)
그러다 사고 나면 인생 꽝! 집안도 꽝! 회사도 꽝! 모두 꽝이야!
<2절>
사고 없는 안전한 현장 함께 만들어요! (함께 만들자고)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 사랑을 함께 나눠요! (함께 나누자고)
사랑하는 가족 위해 지켜요 (아빠~)
안전수칙 잘 지켜요 (여보 꼭 지키세요~)
보호 장구 착용하면 인생 짱! 집안도 짱! 회사도 짱! 모두 짱이야
오늘도 산만하고 부주의한 노동자들을 향한 공익광고가 텔레비전에서 라디오에서 인터넷에서 흘러나오고 있을 것이다. 안전수칙을 지키라고, 보호구를 챙기라고.
2018년 3월, 안전보건공단은 신문사와 함께 “가족사랑 안전엽서 쓰기 캠페인“을 진행했다고 한다. YTN 라디오에는 ‘안전극장’이 방송 중이라고 한다. ‘무재해운동’은 없어진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2018년 3월에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정부인증제도는 없어졌지만 자율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생수병에 담겨있다고 다 같은 물이 아니다.” 꽤나 인상적인 제목이다. 공사현장에서 유독물질을 마시고 사망한 노동자의 사고 사례를 스토리텔링으로 소개하고 있다. 생수병에 왜 유독물질이 담겨 있는지 원인을 짚지 않은 채, 전날 마신 술로 인한 숙취가 갈증을 불러왔고 그 때문에 노동자가 죽었다는 결론이다. 조롱인가. 위로인가. 안전보건공단 웹진에는 이렇게 위로인지 조롱인지 모를 ‘흥미진진한 사연’ 끝에 사망한 노동자 사례들이 나열되어 있다. 제목들이 이렇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반전을 노린 잔혹극인가, 교훈을 주고자 하는 냉혹한 관찰기인가?
2. 노동자의 머릿속이 문제다
무지한 노동자들을 꾸짖는 목소리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이른바 전문가들과 기업경영자들의 발언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2018년 3월 경총 간부가 산업안전보건법개정 토론회에 나와서 말한다. ‘산업재해의 대부분이 불안전한 행동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불안전한 행동을 근절시키기 위한 안전의식 제고 방안을 법에 어떻게 담을지 고민해 봐야 한다’. 대한산업안전협회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처벌만 강화한다고 산업재해가 예방되는 것이 아니다, 안전의식 수준을 높여야 한다’. 대형 산재사망사고를 언급하면서 노동조합 대표가 답한다. ‘안전교육이 활성화되고, 안전문화가 정착될 수 있는 모델을 모색해 나가자’
정부와 안전협회라는 조직은 안전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 사진과 그림, 포스터 등 대규모 공모전을 열고 있다. 이를 통해 안전의식을 높이고 안전문화를 확산해 왔다는 것이다.
노동자 사망사고가 일어난 대기업 공장 앞으로 달려갔을 때, ‘무재해 O만 시간 달성’ 전광판과 ‘무재해’ 기가 날리는 풍경을 많이 보아왔다. 정부가 주도해서 1979년부터 시작했다는 무재해운동은 무재해 목표달성 인증을 받기 위해 기업이 산재를 감추는 요인이 되었다는 혐의를 받아왔다. 2018년부터 정부인증제는 폐지되었지만 기업자율운동이 진행 중이다. 정부는 섭섭한 것인지, 이제 ‘안전문화 인증제’를 만든다고 한다. 안전문화 인증을 받으려면 앞서 말한 콘텐츠를 적극 활용해야 하는 것인지, 난감하다.
교육, 문화, 의식, ‘무재해’ 라는 조어가 공통적으로 손가락질 하는 곳은 결국 노동자의 머릿속. 자신의 생명과 가족의 행복 따위는 관심이 없는, 게으르고 산만한 노동자의 머릿속이라는 것인가.
3. ‘노동자혐오’로 먹고 살다
2009년 6월 24일자 경향신문은 이명박 정부가 ‘민생안전, 갈등조정, 양성평등, 차별요소 제거’를 위해 ‘사회통합위원회’를 만든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그동안 통합이 안 된 이유를 국민에게 돌리거나, 계몽운동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갈등의 원인이 사회경제구조에 있는데 구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사회통합‘을 하고 싶다니 방법은 의식전환, 계몽, 선전밖에 없다. 노동 과정에서 벌어지는 노동자의 죽음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경제정책을 버리지 않는 한 막기 어려운 것인데, 이 구조를 개혁하거나 기업규제를 강화할 의지가 없으니 노동자 탓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갈등은 국민 탓, 산업재해는 노동자 탓을 하면서 계몽과 교육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것은 유구한 역사를 갖는다. 무지한 국민을 가르치기 위해 ‘새마을 노래’를 틀어대던 국가권력은 2018년에 ‘안전이 최고야’를 보급하고 있다. 물론 2018년의 시민과 노동자는 정부가 만드는 캠페인송 따위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공장마다 확성기로 틀어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찜찜한 것은 산재, 안전에 대해서는 유독 노동자의 의식, 교육, 문화 같은 정치적 공격이 난무하고 이것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노동자 개인의 목소리, 노동조합 조직의 목소리는 정부와 기업에 비해 드러나지 않는다. 노동자의 사망이 사회적 죽음이고 구조적 요인에 의해 일어난다는 주장이 우리가 ‘기업 살인’ 운동을 시작했을 때에 비해서는 늘어났다. 그러나 부족하다. 생산이 이루어지는 지점에서 노동자가 죽고 다쳐온 것인데, 생산의 지점에서 노동자는 권력이 약하거나 없다. 국가와 기업, 전문가들은 각자의 이해관계를 걸고 노동자 부주의론, 노동자책임론을 설파할 수 있는 힘과 미디어를 갖고 있다.
노동자의 의식이나 교육, 문화 탓을 하고 이것을 개선하는데 예산을 들이면 정부는 편하다. 양적 성과를 측정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사고가 줄어들면 노동자 의식과 문화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하면 된다. 사고가 줄어들지 않으면 더 많은 교육과 선전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만이다. 기업은 ‘워라밸’ ‘욜로’를 설파하며 가치 있는 삶을 꾸려가는 현명한 소비자로 개인을 칭송하지만, 사고로 죽고 직업병에 걸리는 노동자는 의식과 문화가 모자란 집단으로 치부하고 혐오한다.
이른바 안전 전문가들은 성과측정이 애매한 안전교육, 안전문화 일거리가 많을수록 좋다. 교육이나 문화는 많아도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되기에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가장 쉬운 것이 노동자에게 문제가 있기에 이들을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과 전문가권력의 필요에 의해 끊임없이 새로운 슬로건이 걸리고, 공모전을 하고, 방송과 인터넷에서 반복적으로 틀어댄다.
재미를 가장해 경계 없이 수용되고, 유머를 가장해 개인을 탓하는 언어들. 이 속에 숨어있는 나쁜 의도를 폭로하고 공공의 장에서 추방해버리고 싶은가.
애석하게도 공공의 장에서 슬로건을 걸고 떼는 권력은 저들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