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2 환경 지역 건강이 만나는 현장을 찾아

 

 

산업단지 주변 주민들이 생각하는 환경과 건강

 

임지애 / 단국대학교

 

 

 

2017년 겨울, 산업단지(산단) 인근 주민들의 건강피해를 연구하는 과제를 수행하느라 찬바람맞으며 돌아다닌 적이 있다. 새벽같이 SRTKTX를 타고 이동하여 택시나 버스를 타고 3~40분을 달려 도착한 산업단지 모습은, 이른 아침의 찬 공기 때문인지 참 낯설게 느껴졌다.

한국의 산업단지는 경제발전의 상징이다. 1965년 구로공단을 시작으로 70년대 중화학 산업단지가 크게 늘어났고, 2017년 현재 전국적으로 약 1천여 개의 산업단지가 운영되고 있다.

 

우리가 했던 작업은 2003년부터 산업단지 주변 주민의 환경오염 노출과 건강영향을 조사한 연구들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과제는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전 조사 연구들을 통해 수집된 자료들을 통합하고 건강보험공단 자료 등 2차 자료를 연계하여 각 산업단지 별로 환경오염 물질 노출과 이로 인한 건강영향을 분석하는 것이 첫 번째였다. 다른 한 가지는 지역 주민과 기업, 환경단체 등 이해 관계자들을 만나며 산업단지 현황과 기존 연구들에 대한 의견을 듣고 정리하는 것이었다. 나는 후자의 과제를 담당했다.

우리 연구가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전국 8개의 산단이었다. 산단 주변 주민들을 만나기 위해 산단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 이장님들의 연락처를 파악하고 설득과 읍소를 통해 산단 별로 대여섯 명의 이장님이나 마을 대표들을 만나 초점집단 면접을 수행했다. 산단에 대한 인식, 환경오염 노출, 주민 건강영향, 이해관계자 소통, 주민지원 내용 등에 관한 면접임을 미리 안내한 다음, 두 시간 내외의 면접을 시행했다. 연구 과정에서 총 33 분의 주민대표들을 만났다. 해당 지역에서 태어났거나 수십 년 동안 살고 계신 분들이었다.

 

주민들은 대부분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산단 때문에 공기가 안 좋고 냄새가 난다는 지적이 많았다. 마을 주변에 산단 외에도 폐기물 처리장, 비행장, 소각장 등 오염시설들이 모여 있는 지역들도 있었다. 산단을 오가는 대형차량 으로 인해 대기오염은 물론이고 사고 위험도 컸다. 인도 확보나 횡단보도와 육교 같은 보행자 안전을 위한 조치가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상수도 시설이 최근에서야 구비된 지역도 있었다. 산단을 건설하면서 주변에 기본적인 보건 위생 인프라도 갖추지 않았던 것이다.

주민들이 호소하는 환경 피해는 주로 대기오염과 악취, 비산 먼지 등이었고, 해양오염과 수질오염에 대한 의견도 있었다. 특히 악취는 지역별 미세 기후 조건에 따라 심한 경우가 있었다.

건강영향에 대해서는 피부질환 등 알레르기 질환, 호흡기 질환 등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동네에 암 환자가 다수 발생했다’ ‘환경오염 노출로 인해 조기에 사망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산단이 들어오면 기업은 주민들을 위해 목욕탕, 마을회관, 문화시설 등을 건축하거나 지원해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을행사비나 장학금 같은 금전적 지원, 11촌 협력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부분 기업과 환경단체, 주민이 같이 하는 정기적인 환경감시 활동이 이루어지고 협의체가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환경오염 노출과 개선을 위해 충분한 의사소통이 되고 있다고 답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환경이 이전보다 개선되었는지에 대해서 물었을 때, 전보다 관리기준 등이 강화되기는 했지만, 산단 규모가 커진 만큼 환경오염 총량도 커졌다는 의견이 있었다. 산단 규모가 커지면서 산단과 주민 거주공간을 분리해주던 녹지 공간이 계속 줄어들어 이격 거리가 더 짧아졌다는 의견도 있었다.

산단과 바로 인접해서 살아야 하는 주민들은 이주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인근 지역에 아파트가 신축되는 등 산단과 거주 지역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산단 밀접 지역 주민들이 이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은 주민과 환경단체 뿐 아니라 일부의 기업 측 참여자들도 제시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민들은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이 고향이거나 수십 년 간 살아왔던 곳이라 쉽게 이주를 결정하기 어렵고, 이주비를 고려한다면 특히 어려운 문제이다.

한편 산단으로 인한 건강 문제에 대해서는 보건소 등을 통해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고 환경 관리에 대해서는 수도권 대기특별법처럼 특별 관리 계획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국가 산단 관리에서 중앙정부 만이 아니라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산단은 한국 경제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그 발전을 위한 대가가 산단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부당하게 전가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산단을 통해 생산된 가치는 많은 이들이 누리면서 그로 인한 환경오염의 부담은 온전히 그 지역 주민들에게만 전가된다면 이는 정의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상수도 시설 같은 공중보건 인프라 구축이 오히려 다른 지역보다 더 늦어지거나 취약한 점, 산단 이외에 다른 오염 시설까지 집중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해보면 특히 그렇다.

산단의 환경관리가 이전에 비해 개선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만큼 환경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문제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산단의 규모가 커지는 만큼, 환경오염 부담에 대해 주변 지역 주민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시민단체가 환경관리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것은, 현재 산단 주변지역 오염 노출이 대부분 규제 이하로 관리되고 있으나 누적된 노출 피해를 고려하여 총량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기업의 환경관리와 주민이 느끼는 환경오염 노출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 간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주민들이 생각하는 환경오염과 건강피해 우려에 대한 충분한 소통과 설명이 절실하다. 중앙 정부나 지자체, 기업이 열심히 환경관리를 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소통이 없다면 이를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다. 주민들의 목소리는 처리해야 할, 번거로운 민원이 아니다.

산업단지의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해서는, 인근지역 주민의 환경오염 노출과 건강영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에 따른 환경보건 조치가 취해져야 마땅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목소리를 내고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보장되어야 한다.